길리아드 - 에임스 목사의 마지막 편지
마릴린 로빈슨 지음, 공경희 옮김 / 지식의날개(방송대출판문화원) / 2006년 9월
평점 :
품절


삶의 황혼기에 접어들어 이제 자신의 인생을 정리할 시점이라는 것을 느낀다면 우리는 무엇이 하고 싶을까. 수많은 일들이 있겠지만 그 중에서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나의 마음을 남기는 일은 빼놓을 수 없을 것이다. 그들이 내게 얼마나 소중한 존재였는지, 그들로 인해 내가 얼마나 행복했는지, 그리고 내가 얼마나 그들을 사랑하는지.. 마지막 눈을 감기 전에 그동안 표현하지 못했던 것들을 모두 표현하고 싶지 않을까 싶다.

 이 책의 서술자인 존 에임스 목사의 마음도 그러하다. 젊은 아내와 어린 아들이 있는 76세의 에임스 목사는, 심장병으로 나날이 약해지는 자신의 건강을 느끼며 늙어가는 아내의 모습과 장성하는 아들의 모습을 곁에서 내내 지켜보지 못할 것을 안타까워한다. 어린 아들이 커가면서 아버지로서 해줄 수 있는 것들을 하지 못함을 대신에 나중에 아들이 보기를 바라면서 편지를 쓰기 시작하는데 <길리아드>는 그러한 에임스 목사의 편지의 내용으로 구성되어 있다.

 바쁘게 살아온 인생의 종착역에 다다라 이제는 한결 느긋하고 넓어진 마음으로 나직하게 차근차근 들려주는 인생의 이야기들. 삼 대째 목사를 지낸 자신의 집안 이야기를 시작으로 주변인에 대한 이야기가 이어지면서 그 속에 다툼과 치유, 용서와 화해의 이야기가 묻어난다. 그리하여 길리아드 속의 이야기는 평생을 길리아드에서 살아온 존 에임스 목사의 가족과 주변 친구들의 이야기이지만 그들이 겪어온 미국의 역사와 여러 상황이 녹아든 미국인들의 이야기가 되고, 삶을 살아가는 우리들의 보편적인 이야기가 된다.

 이미지가 각광받는 요즘 시대엔 문학도 그런 속도와 이미지에 충실해지는 추세다. 또한 젊은 세대들이 즐기는 가벼움의 미학 또한 많이 반영된다. 그런 가벼운 이야기들, 특히 요즘 많이 나오는 일본소설들에 질릴 때쯤, 찬찬히 조용하게 삶의 진중함을 이야기하고 있는 이런 책을 만나 반갑다. 따뜻한 시선으로 바라보는 삶의 이야기를 담아낸 <길리아드>는 책표지에 반짝반짝 빛을 내며 붙어있는 '2005년 퓰리처상'을 수상한 명성에 걸맞는 작품수준을 선보인다. 또한 이 책의 주인공이 목사인 까닭에 전반적으로 기독교적 관점으로 진행되며 곳곳에 그 색채가 풍겨난다. 그러나 그 종교적 신념을 독자에게 강요하지는 않는다. (최소한 내가 보기엔 그렇다;;)

 어떤 특별한 사건을 중심으로 이야기가 펼쳐지는게 아니라 조곤조곤 자신의 일상과 생각, 기억들을 정리하는 형식으로 진행되는 터라 읽는 이에 따라 살짝 지루하게 느껴질지도 모르겠다. 그렇지만 깊어가는 가을, 어느 조용한 시간에 찬찬히 이 책을 읽으며 노목사의 삶의 이야기를 음미해보자. 그 순간동안 그의 아들이 되어 그의 편지를 읽고 음미한다면 내 삶에 필요한 소중한 조언들을 들을 수 있을 것이다. ^ ^

 

- 네가 용감한 곳에서 용감한 사람으로 성장하기를 기도하마. 네가 쓸모있는 삶을 살 길을 찾도록 기도하련다. 기도하고, 그런 다음에는 잠들어야지. (30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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