플라이, 대디, 플라이 더 좀비스 시리즈
가네시로 카즈키 지음, 양억관 옮김 / 북폴리오 / 2006년 2월
평점 :
구판절판


fly, daddy, fly
영화, <왕의 남자>로 단박에 스타대열에 합류한 이준기의 차기작인 영화 <플라이 대디>의 원작이라 하여 알게 된 책, <플라이, 대디, 플라이>
명의 일본영화도 있단다.

중년의 평범한 가장이 어떤 사건을 계기로 쌈짱고수인 고딩에게 싸움의 기술을 전수받는다는 꽤나 황당하고 어이없는 소재로 출발하는 이야기지만. 책장을 넘길수록 그 황당함속에서 인생의 맛을 느껴보게 된다.


딸이 억울하게 폭행당했지만 제대로 한 번 따져보지도 못하고 무릎꿇고 마는 소심가장, 하지메.
자신이 복수할 수 있는 방법을 찾다가. 극단적으로 식칼을 빼어들고 달려가는 그를 볼 때.
나약하고 무력한 모습이, 힘 없는 우리의 소시민적 초상화인듯 하여 살짝 서글퍼졌다.

없는 자의 억울함이란 시작은 무거우나. 이야기의 전개는 밝고 경쾌하다.
특훈을 받는 하지메의 불평불만과 그에 맞대응하는 절대냉정 박순신의 대화도 잼나지만.
무엇보다 순신의 귀여운 친구들- 그 중에서도 야마자키 ^ ^ -이 유쾌지수를 한껏 올려준다.
(그들이 카즈키의 <레볼루션 No.3에 '더 좀비스'로 나온다고 하니 이 작품도 냉큼 찾아봐야겠다. ^ 0^)


이야기는, 처음의 사건과 마지막의 결투를 제외하면
대부분 특훈과정에서의 하지메와 박순신의 대화로 이루어져 있는데. 절대고수인 박순신은 입만 떼면 줄줄이 명대사를 흩뿌린다. (고딩 맞냐? 너무 완벽하자나! ㅎㅎ)

여기서 잠깐!
말 나온 김에 그의 입에서 흘러나온 명대사 몇 가지를 살펴 보자.
갠적으로 와닿았던 글귀 몇 가지를 적어 보련다. ^ ^ 

- 그만둬도 상관없어. 자신을 위해 하는 일이니까, 다른 사람 눈치 볼 필요도 없잖아.

- 아무 것도 부수지 않고 뭘 이룰 수 있다고 생각하는 건 오산이야

- 힘은 머리에서 태어나서 자란다는 걸 알아야지. 머리로 안 된다고 생각하는 순간, 힘은 죽어 버려.

- 어떤 사람이라도 싸울 때는 고독해. 그래서 고독마저도 상상을 해 봐. 그리고 불안이나 고뇌가 없는 인간은 노력하지 않는 인간일 뿐이야. 정말 강해지고 싶으면 고독이나 불안, 고뇌를 물리치는 방법을 상상하고, 배워보는 거야. 자기 힘으로.

 

얼핏 냉정하고 싸가지도 없어 보이지만, 중간중간 수줍은 미소와 인간적인 면을 보여주는 박순신.
그는 이름부터 재일교포임을 드러내고 있다. (근데. 이름이 좀 컨츄리하다; 쿨럭;; ^ ^;;)
일본에서 재일교포의 위치란. 누가봐도 주류는 아니다.
수많은 편견과 차별속에서 살아가는 그들의 모습이 박순신의 입을 통해 흘러나오기도 한다.
알고보니 이 작가, 재일교포였다.
그의 전작 <GO>도 한일합작 영화로 들어본 적이 있다. (책보다 영화제목으로 먼저 아는;; ^ ^;;)
일본 문학에서 만나는 재일교포의 모습. 반갑고도 서글프다;;
물론. 이 책에선 무거움보단 적당한 가벼움을 택하고 있지만 말이다. ^ ^


이 책의 주인공인 소심가장 하지메도, 재일교포 박순신도, 그리고 삼류고딩인 그의 친구들도.
모두 약자이며 비주류의 힘없는 자들이지만.
그들은 분노하거나 슬퍼하지 않고, 거기에서 자신의 방식으로 세상을 향해 K.O 승을 날린다.
그런 그들의 발칙함이 더욱 사랑스럽다!

 

하지메의 복수대상은 표본적으론 잘나가는 고딩 권투선수이지만.
진정한 싸움 대상은 나약한 '자신의 모습'이 아니었을까.
마지막 결투의 날도 인상적이었지만. 갠적으론 그가 버스를 이기던 그 날이 가장 인상적이었다.
어깨를 짓누르던 패배자의 옷을 벗고, 좀 더 강한 자신을 만나게 되는 축복의 날이었으니!

온 몸 여기저기서 일어나는 통증이 머리로 몰려들어 자신이 달리고 있는지 아파서 멈춰 서 있는 지도 모를 지경이었다. 그러나 그와 동시에 나는 어렴풋한 환희를 맛보고 있었다. 다리를 앞으로 앞으로 내디딜 때마다 몸 속의 낡은 것들이 '아야!'하고 비명을 지르면서 죽어가는 것이 느껴졌다. 아니, 이그것은 비명이 아니라 새로운 세포가 탄생하는 울음소리일 지도 모른다. 나는 그 힘찬 울음소리에 귀를 기울이면서 앞으로 나아갔다. - 버스와 달리기하는 도중의 하지메의 생각 中

 

 
황당하고 약간은 어이없는 소재를 바탕으로 한 가벼운 소설로 넘길 수도 있지만.
찾아내면 찾아낼수록 수많은 함축적인 모습을 품고 있는 <플라이, 대디, 플라이>
단숨에 읽을 수 있는 두께도 딱! 마음에 들었다. ^ ^;
이 작품에 이끌려 가네시로 카즈키의 다른 작품도 찾아보리라 마음 먹었다.
특히. 위에서 말한대로, 박순신의 친구들이 나온다는 <레볼루션 넘버3>가 아주 땡긴다.. ㅎㅎㅎ

 

" 마음을 풀어헤쳐. 입구까지는 안내해 주겠지만, 거기서부터는 스스로 뚫고 나가야 해. "
                                                                  - 매트릭스 中: 박순신의 인용문구

 
그렇다. 결국엔 내가 해야 할 일. 그 누구도, 도와줄 수는 있으나 해줄 수는 없는 일.
바로 나 자신과의 싸움이다.
터널의 입구까지 친절히 안내해준 이 책에 고마움을 느끼며.
나도.. 기존의 나약한 나를 깨고, 새로운 '나'를 만드는 작업을 놓지 않으려 한다.
모든 싸움은 나 혼자 해야 할테니 말이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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