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라보 마이 라이프
은행나무 편집부 엮음 / 은행나무 / 2007년 1월
평점 :
품절


2007년이 밝았다. 새해가 밝아오면 그와 함께 내 나이도 새롭게 업그레이드 된다. 매년 한 살씩 늘어가는 나이가 이젠 반갑기 보단 살짝 부담스러운 걸 보면 나도 제법 나이가 들었나 보다. 특히 나이로 많은 부분을 규정지어 버리는 우리나라의 문화적 특성상 일정한 선을 지나 한 살씩 더해지는 나이는 어느 순간 적지 않은 부담으로 다가온다. 어쩌면 그건 사회가 요구하는 '나이값'에 뒤따른 미션들을 제대로 수행하지 못하는 나의 불안감에서 기인한 것인지도 모르겠다.

생각해 보니 나이 먹는게 마냥 신났던 때는 초딩 전후였던 것 같다. 빨리 나이 먹고 싶어 동짓날 팥죽과 설날 떡국을 마구 비워대던 기억이 난다. 그때가 엊그제 같은데 벌써 난 대학교 마저 졸업해 버린 어른이 되어 있다. 그와 함께 끝나지 않을 것 같던 지긋지긋한 보충수업과 야간자율학습의 압박에서 헤어나기만 고대하던 고3 시절도 이젠 추억의 한 장이 되어 버렸다. 지난날을 떠올리다 보니 저절로 이런 말이 흘러나온다. 시간 참 빠르다, 빨라...
 
누군가를 나타내고 판단하는 보편적 기준 중에 빼놓을 수 없는 것이 바로 '나이'다. 그럼 나이란 무엇일까. 지금의 나를 만든, 내 삶의 길이를 가늠하는 척도가 나이 아닐까. 한 살이라는 나이가 내게 준 시간 동안 나는 어떤 모습으로건 성장했을 것이고, 그것들이 차곡차곡 쌓여 지금의 나를 만들었을 것이다. 그러니 자꾸만 늘어나는 나이의 무게를 마냥 미워할 수 만은 없는 노릇이다. 아니, 미워하긴 커녕 더더욱 사랑해야 할 터다. 정말 내 나이 이거.. 거저 먹은게 아니니깐 말이다.
 
 
광활한 인터넷 바다에서 수많은 누리꾼들이 '나이'에 대한 이야기꽃을 피웠다. 그들이 지나온 과거의, 지금 거닐고 있는 현재의, 그리고 곧 마주 할 미래의 '나이'에 대한 각각의 생각과 감상, 희망 등을 피력한 그 한 줄 이야기들이 모이고 모여 한 권의 책에 담겨졌다. 이 책 <브라보 마이 라이프>는 그렇게 만들어졌다. 책의 저자란에 '네티즌 글­ㆍ그림'이란 글자가 또렷이 박혀있는 이 책은, 1세부터 100세에 이르는 100가지의 나이와 삶에 대한 34012명의 누리꾼들의 감성어린 정의와 그 글들을 더욱 빛나게 만들어주는 아름다운 사진들이 어우러져 멋진 조화를 이루어내고 있다.
 
일기장 만한 앙증맞은 크기의 책을 펼치니 1부터 100까지 나열되는 숫자에 맞춰 한 편엔 글이 다른 한 편엔 사진이 자리잡고 있다. 다양한 나이만큼 저마다의 독특하고 다양한 정의들이 꿈틀대고 있는데, 때론 재기발랄하게 때론 심각하게 자신의 느낌을 담아낸 그 글들을 읽다 보면 얼굴도 모르는 아이디의 주인공들에게 괜시리 친근감을 느끼게 된다. 아마 그건 그 나이를 대표하는 공통된 감정이 그 글 속에 담겨있기 때문일 것이다. 한 장 한 장 넘기며 그렇게 그들의 글에 나의 추억을 더해 본다.
 
 
 
- 3 : 불현듯 엄마의 배가 터질 것 같아 보였다. 어느 날 홀쭉해진 배와 함께 나타난 건 동생이다.
나는 셋째 딸이다. 세 번째 딸이라는 이유만으로 어린날에 경험했던 나름의 굴곡의 주요원인은 조부모님들이었다. 할아버지는 또! 딸이라며 이름조차 지어주지 않았고(그래서 내 이름은 남매 중 유일하게 아빠가 지어주신 이름이다. 엄마 말씀처럼 그래서 내 이름이 가장 예쁘긴 하지만! ㅎㅎ!), 할머니는 딸 낳은 며느리라고 산후조리도 제대로 돌봐주지 않았다. 물론, 내 뒤에 남동생이 태어났을 땐 모든 상황이 달라졌음은 안봐도 비디오다. 그나마 그런 억울함 따위를 느낄 나이가 아니여서 다행이지만.
 
- 4 : 미운 네 살이라는 말이 부끄럽지 않게 행동한다.
지금 조카들을 보면 정말 누가 지은 말인지 '미운 네 살'이란 말이 명언이라는 생각이 든다. 가끔 보는 나도 저럴진데 같이 사는 언니들은 어떠할까. 그래도 미운 행동 틈틈이 천사같은 모습을 보여주니 키우는 맛이 난다고 한다. 4살 때 나는, 고추잠자리 안 잡아준다고 혼자 삐쳐서 어디론가 사라지고, 초등학교 입학한 언니네 교실에 찾아가 같이 앉아 수업 듣고(^ ^;), 걷기 싫어서 엄마한테 업어달라고 떼쓰던 그런 조그만 계집아이였었다. 미운 네 살도 지나고 나면 모두 추억으로 변한다. ㅎㅎ
 
- 12 : 방학숙제도 하루 만에 다 할 수 있다. 한 달 일기도 2시간이면 충분하다.
와~ 이걸 쓴 누리꾼은 정말 대단하다는 생각을 했다. 나는 개학을 앞두고 미뤄둔 방학숙제를 하는데 최소 사흘, 한 달 일기를 다 쓰는데 하루는 족히 걸렸다. 초등학교때 일기를 몰아 쓸 때 마다 가장 큰 장애물이 바로 날씨였는데, 일기 내용은 상상력을 동원할 수 있어도 날씨는 그럴 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매번 일기 내용을 꾸며내기에도 지친 나는 언제부턴가 나름의 꾀를 내었는데,  일기장에 매일의 날씨와 그날의 포인트가 되는 사건을 한두 개 정도 적어두는 것이다. 기억력이 반짝이던 때라 몇 가지 단어만으로도 그날의 일을 모두 떠올릴 수 있었기에 그 이후부터 일기 몰아쓰기는 한층 수월해졌다. ㅎㅎ (그러면서도 결코 일기를 매일 쓰지는 않았던;; ^ ^;;)
 
- 16 : 낮에는 아무리 무서운 선생님 얼굴을 봐도 졸리고, 밤에는 심야방송을 다 보고도 눈이 초롱초롱해진다.
누가 쓴 건지 완전공감이다! 심야 라디오 프로그램을 들으며 밤 늦게까지 킥킥대다가, 아침이면 비몽사몽~ 수업시간에 수시로 졸기를 즐겨(?)했던 학창시절이여~! 졸음이 쏟아지던 수업시간을 견디기란 얼마나 힘든지 겪어보지 않은 사람은 모르리라. 한 번은 호랑이 수학 선생님 시간에 맨 앞 줄에 앉아서 마구 고개를 끄덕이며 졸았던 적이 있는데 그 생각을 하면 아직도 등에 식은 땀이 흐른다. ㅎㅎ (그러나~ 선생님의 시야는 중간줄 이후를 향하므로 맨 앞 줄이 의외로 들킬 염려가 적다;;)
 
- 24 : 제대하고 복학해서 이십 대의 내 청춘을 즐기리라 생각했는데 갑자기 후배들이 아저씨란다.
이 글을 보곤 대학 시절이 생각나 절로 웃음이 났다. 파릇파릇 대학 새내기 시절, 복학하는 선배들의 모습은 영락없는 아저씨들이었다. 외모도, 하는 행동도, 풍기는 분위기도 모두 아저씨라 불리기에 부족함이 없어 보였다. 그러다 내 동기들이 군대를 가고, 내 동생이 군대 갈 나이가 되어버린 쯔음, '군인 아저씨'는 더이상 '아저씨'가 아닌 '군인 아그들'이었다;; 지나고 보니 정말 피어나는 젊음들인데 그 당시엔 왜 그렇게 아저씨 냄새 풀풀~ 풍기는 노땅들로 보였었는지. 그들의 입장에서 보면 억울할 만 하다. ㅎㅎ;;
 
- 26 : 신분증을 요구하는 술집 직원에게 팁을 주고 싶어진다.
아마 이 땅의 많은 사람들이 공감하는 말이 아닐까. 그 절박한 심정이 느껴지는 것 같아 입꼬리가 절로 올라갔다. 나는 작고 마른 편에 화장이나 사치를 거의 하지 않는 편이라 사람들이 내 나이보다 어리게 본다. 한 때는 그게 좋았는데 어느 순간 나의 추레함을 느끼고는 '제 나이에 맞게' 보이는 것이 가장 좋다는 생각을 했다. 그러나 내 나이를 넘겨 보는 것보단 어리게 봐주는 게 당근 좋다!
 
- 31 : 세상을 뒤엎지는 못하더라도 남은 인생은 뒤엎을 수 있다.
서른, 잔치는 끝났다라는 말이 있다. 그러나 서른은 또 다른 새로운 잔치의 시작이 아닐까. 좀 더 성숙하고 좀 더 풍성한 멋진 잔치의 시작. 살아온 서른 해를 기반으로 앞으로 다가올 많은 날들을 잔칫날로 만들 수 있으니까 말이다.
 
- 35 : 도전을 겁낸다면 꿈을 이룰 수 없다.
이건 어느 나이를 막론하고 모두에게 해당되는 이야기일 것이다. '나이는 숫자에 불과하다'란 모 통신사 광고 카피가 더더욱 힘을 북돋워줄 것이다.
 
- 40 : 나이 물어보면 '만 나이'로 대답한다. "어, 아직 30대야!!"
하핫. 나는 25 넘어가면서부터 만 나이를 고집했는데.. 그럼 나는;;;;; 땀삐질;;;;;
 
- 50 : 요즘 애들의 추세에 도저히 따라갈 수 없는 나이. 그들의 언어조차 알아듣기 힘들어 인터넷을 뒤져본다.
허걱; 나는 요즘도 모르는 인터넷 용어가 눈에 들어오면 살며시 네이버 지식인을 애용한다. 즐~, OTL, 안습, 된장녀, 훈남, 끌녀에 이르기까지 도대체 어디서 시작된 말인지 알 수 없는 이 오묘한 용어들이 인터넷 바다에 넘쳐나 그 뜻이 사뭇 궁금해지면 누군가에게 묻기보다 조용히 검색창을 띄우는게 편하다. 그럼 나도 50대? ;;; 자자~ 솔직히 고백해 보자. 나 말고도 검색창을 전전하는 청춘들, 많지 않은가? ㅎㅎㅎ (이 글의 오른쪽에 'OTL'에 관한 지식검색 사진이 나란히 배치되어 있어 어찌나 웃었던지.. ^ ^;;)
 
- 62 : 지미 카터 전 미국 대통령은 처음 스키를 배웠다. 그는 "후회가 꿈을 대신하는 순간부터 우리는 늙기 시작한다"고 했다.
올해 부모님은 진갑을 맞으셨다. 자식들 키우느라 젊음을 모두 저당잡힌 그 분들의 머리엔 이젠 제법 서리가 내려앉았다. 한 번도 제대로 생각해 보지 않았던 부모님의 꿈, 자식 걱정 말고 온전히 자신들을 위한 꿈을 아직 품고 계실런지.. 죄송한 마음에 고개가 숙여진다.
 
- 67 : 어릴 때는 할머니를 보며 나한테도 저런 날이 올까 했는데, 지금 손녀를 보면 나에게도 저런 시절이 있었는가 싶다.
요즘도 엄마는 틈틈이 어린 시절의 이야기를 하신다. 몸도 가볍고 마음도 솜털같던 그 시절, 산과 들을 누비며 걱정이라고는 없었던 엄마의 어린 시절 이야기를 듣다 보면 우리 엄마에게도 저런 때가 있었구나 싶다. 엄마도 처음부터 엄마는 아니었던 거였다. 이제 곧 나도 그렇게 되겠지?
 
- 70 : 드디어 신문에 난 오늘의 운세에 맨 마지막을 장식한다. 12년 후의 나는 운세도 없는 건가.
신문의 '오늘의 운세'에 처음으로 자리잡은 내 출생년도를 보고 기분이 묘했던 기억이 난다. 내 나이가 적지 않다는 것을 느끼게 해주는 지표 중의 하나였던 오늘의 운세. 그런데 거기서 내 운세가 사라질 그날은 미처 생각해 보지 못했다. 아마 처음 나타났을 때보다 사라질 때가 더욱 서글프겠지..
 
- 92 : 안 그런 척 하지만 죽음이 두렵다. 언제 그렇게 세월은 갔을까.
할머니 연세가 올해가 92세다. 호호백발에 약간 굽어진 허리를 가졌지만 아직도 직접 방청소를 하시고 자신의 옷가지는 손수 빨아입으실 만큼 기력이 좋으시고 자식들 생일을 모두 기억하실 만큼 정신도 맑으시다. 80세부터 이제 얼마 안 남은 것 같다고 하셨지만 올해 92세를 맞으셨다. 내가 얼른 죽어야지~라며 입버릇처럼 말씀하시지만 조금만 편찮으셔도 바로 병원을 찾으시는 걸 보면 그 마음이 진짜는 아닌 모양이다. 하긴, 누구나 그렇지 않을까. 삶이란 그런 것이다. 안 그런 척 하지만 막상 죽음이 목전에 다가오면 두려운.. 그런 것.
 
- 100 : (중략) 나이를 먹는다는 걸 두려워할 필요는 없는 것이다. 인생은 그 자체로 아름다운 여행이었다.
내가 과연 몇 살까지 살다가 이 세상을 뜰 지는 모르겠으나 매 순간 인생은 그 자체로 아름다운 여정임은 틀림없는 듯 하다. 그걸 매 순간 기억하고 있다면 삶을 조금은 더 신나게 보낼 수 있지 않을까!
 
 
 
 
백 가지 나이에 부여된 백 가지의 생각들을 읽으며 나의 과거와 현재, 미래를 다시금 떠올려 본다. 책장을 한 장 넘길 때 마다 내 추억의 페이지를 한 장씩 넘기고, 책의 뒷 부분 지긋한 나이로 달려갈 때면 나는 과거에서 현재를 거쳐 미래로 향해 간다. 내가 마흔이 되고, 환갑을 맞고, 여든을 바라보게 되면 그때 내 마음은 이 책의 글들과 얼만큼 비슷할지 혼자 상상도 해 본다. '이 책을 읽는 모든 독자들이 지나간 어제를 통해 추억을 함께 하고 다가올 내일에 대한 꿈과 희망을 나눌 수 있기를 바랐기 때문'에 이 책을 기획하게 되었다는 편집자의 말처럼, <브라보 마이 라이프>는 한 줄의 짧은 글로 우리의 삶을 다시 되짚고 미래의 삶의 밑그림을 그리게 만드는 책이다. 
 
이 책은 짧은 글과 사진으로 채워져 있기에 금방 다 볼 수 있다. (이 점 때문에 이런 류의 책을 싫어하는 분들도 적잖으리라 생각된다;;) 그러나 책 속의 여백에서 자신의 이야기를 끄집어내게 된다면 책장을 넘기는 속도가 훨씬 더뎌진다. 꼭 처음부터 읽지 않아도 좋다. 내가 기억하고 싶고 생각하고 싶은 나이를 찾아 들춰보며 다른 사람은 이 나이에 이런 생각을 했구나~라며 나와 비교해 보는 것도 신나는 일이다. 오른쪽에 자리잡은 사진들을 보는 것도 재미있다. 어떨 땐 열 마디의 말보다 한 장의 사진이 더 많은 메시지를 전하기도 하니까. 때론 생각날 때 마다 한 번씩 펼쳐보며 사색에 잠기는 것도 이 책을 즐기는 좋은 방법이다. 
 
나는 이 책을 즐기는 나만의 방법으로 '나이 일기장'을 선택했다. 새해를 맞을 때 마다 그해를 함께 할 내 나이를 찾아 그 안에 업그레이드 될 내 삶을 축하하는 글을 적을 것이다. 때론 이제 떠나보내야 할 지난 나이의 한 귀퉁이에 이별의 아쉬움을 토로할 지도 모른다. 그렇게 기존의 글들에 내 감상을 더하며 내 '나이 일기장'을 채워나가려 한다. 앞으로 내가 만나게 될 나이에 어떤 이야기들이 채워질런지 벌써부터 신나고 설렌다. 나중에 펼쳐든 이 책 속에서 누리꾼들과 나의 속내를 비교하는 재미도 쏠쏠하리라.
 
 
- 86 : 내가 포기하지 않는 한 아무도 나를 멈추게 할 수는 없다.
 
지금 주어진 나이가 좋든 싫든 간에 우리는 우리에게 주어진 나이만큼의 삶을 살아왔고, 그만큼의 추억을 갖고 있다. 삶의 여행길에서 기쁘고 즐거웠던 기억 뿐만 아니라 슬프고 괴로웠던 시간들도 적지 않았을 것이다. 그렇지만 그런 조각조각들이 모여 지금의 우리를 만들었다. 그리고 미래의 우리를 만들어 갈 것이다.
 
지금까지 열심히 살아온 당신의 '아름다운 삶'을 향해 소리높여 외쳐 보자. 
Bravo~! Bravo my life~! 라고!
 





 


 
- 20 : (나 만의 정의) 내 마음의 나이는 언제나 '스물(=청춘)'이다. ^ -^*
(다르게 해석하면 아직 철이 없다고 볼 수도; 쿨럭;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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