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쪽으로 튀어! 1 오늘의 일본문학 3
오쿠다 히데오 지음, 양윤옥 옮김 / 은행나무 / 2006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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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중그네>의 오쿠다 히데오의 또다른 걸작!이라고 불리는 <남쪽으로 튀어!>
너무너무 재미있게 보았던 <공중그네>의 작가라는 후광과 책을 읽은 사람들의 강추의 압박에 힘입어, 또한 밑도끝도 없이 '남쪽으로 튀어!'라고 독자를 선동하는(?) 강렬한 제목과, 범상치 않은 눈빛에 깍두기(형님~하는 그~ 깍두기; ^ ^;)의 기운을 솔솔~ 풍기는 인상파 아저씨가 턱~하니 버티고 있는 표지 또한 나의 호기심을 자극하는 터라 이 책을 읽지 않고 견딜 수가 없었다. 이렇게 흘러넘치는 기대감을 주체할 수 없어 책을 펼쳐든 나는 곧 급진파 무정부주의자인 지로의 아버지 '우에하라 이치로'의 감당못할 매력에 빠져 허우적거릴 수 밖에 없었다. 조용하게 강한 엄마에게도. ^ ^;


<남쪽으로 튀어>는 지로의 시선으로 진행된다. 친구 준과 헌책방에서 만화책을 보며 키득거리기를 즐기는 평범한 초등학생인 지로에겐 전~혀 평범치 않은 아버지가 있다. 프리라이터라고는 하지만 매일 집에서 데굴데굴 구르고, 지로가 반항을 시도하면 어김없이 헤드락을 걸어 힘으로 제압하며, 콜라는 미제국주의의 산물이니 금지품목이라고 외쳐대는 것으로도 부족해 구청에서 나온 공무원에게 눈썹 하나 까딱않고 '국민연금을 납부하느니 차라리 국민을 관두겠다'는 말을 서슴지않고 내뱉는,, 185cm의 거구에 짙은 눈썹과 부리부리하게 큰 눈, 기차화통을 삶아먹은 듯 큰 목소리를 가진 지로의 아버지 우에하라 이치로는 과거 이름을 날리던 과격파 운동권 출신이며 무정부주의자다. 공무원이나 경찰 등을 벌레보다 싫어하며 국가란 개인을 속박하는 불필요한 굴레라고 여기는 다소 위험한(?) 사상을 가졌을 뿐만 아니라 지나치게 대담하고 극단적이어서 가는 곳마다 문제를 일으키고, 어머니는 매번 그걸 수습하느라 바쁘다.

그런 말썽쟁이 사회부적응자 백수로만 비쳐졌던 '아버지'가 점점 변신을 시도한다. 처음엔 마룻바닥을 데굴데굴 구르는 백수에서 아들의 수학여행비를 따지는 극성스런 부모의 모습을 보이더니, 아키라 아저씨의 사건을 계기로 참고 있던 본연의 화려한(?) 모습을 드러낸다. 아키라 아저씨를 자기 조직의 희생양으로 삼은 좌익사람들을 향해 '집단이 되면 부르조아나 프롤레탈리아나 모두 권력을 탐하고 그것을 지키기위해 안달한다'고 분노하는 아버지, 남쪽섬으로 가서 더 크게 벌어지는 거대기업과의 한 판 승부에서 기존의 모습보다 한층 화려한 액션과 멋드러진 대사로 강력한 포스를 남발하며 아버지! 오! 진정 멋지다!

- 혁명은 운동으로는 안 일어나. 한 사람 한 사람 마음속으로 일으키는 것이라고!
- 집단은 어차피 집단이라고. 부르주아지도 프롤레타리아도 집단이 되면 다 똑같아. 권력을 탐하고 그것을 못 지켜서 안달이지!
- 개인 단위로 생각할 줄 아는 사람만이 참된 행복과 자유를 손에 넣는 거얏! (1권 327~8쪽)


처음엔 학교 수학여행비의 비리, 그 다음엔 집단의 이기주의, 마지막엔 기업과 국가라는 거대 권력으로 이어지는 아버지의 투쟁은, 국가란(또는 집단이란) 개인의 행복을 위해 꼭 필요한 것인가, 우리들이 느끼는 행복이란 과연 진정한 행복인가..라는 질문을 던진다. 국가란 꼭 필요한 것일까?라는 의문은 남쪽섬 이리오모테로 온 지로가족과 섬사람들의 생활을 보면서 점점 더 짙어진다. 어떤 통제나 구속없이도 자급자족하여 서로 돕고살며 행복을 느끼는 섬사람들, 그들에게 개발이라는 이름으로 섬에 들어온 기업과 그 편을 들어주는 국가는 오히려 조용한 행복을 깨는 방해자일 뿐이다.

- 도쿄에서 살 때, 아버지는 항상 "국가 같은 건 필요  없다"고 했었는데, 그 말 뜻을 어렴풋이 이해하게 되었어. 욕심을 부리지 않으면 법률도 무기도 필요없다고 생각해. 이것은 유치한 이상론인지도 모르지만, 여기 섬사람들을 보고 있으면 그런 감이 들어. 만일 지구상에 이런 섬만 존재한다면 전쟁은 한 번도 일어나지 않았을 거야. (2권 294쪽)

- 지로는 큰 격려를 받은 것 같았다. 자신 역시 아버지만이 정의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어느 누구에게도 지배받으려 하지 않고 혼자 국가에서 튀어나와 살아가겠다니, 그건 너무 자기 멋대로인게 틀림없었다. 하지만 국가가 정의라고도 할 수 없었다. 튀어나갈 자유를 허락하지 않는다는 것은 지배자의 생각이었다. (2권 248쪽)


<남쪽으로 튀어>는 아버지의 투쟁이 주를 이루지만 그 속엔 중학교 불량배에게 괴롭힘을 당하다 스스로 그 굴레를 벗어던지며 한층 성숙해지는 지로의 사춘기 성장통과, 차분한 모습과 달리 그 뒤엔 격동의 과거를 품고 있어 끝까지 궁금증을 자아냈던 엄마(그 비밀들은 책의 마지막에 누나에 의해 풀린다!)의 비밀과, 젊음의 혼란기에서 벗어나 진정한 행복을 찾아가는 누나의 이야기가 어울어지며 한층 풍부하고 다양한 감동을 엮어낸다. 지로가족을 통해 가족에 대한 의미를 다시 생각해 보게 만들기도 한다.

또한 1권은 도쿄에서의 이야기가, 2권은 섬에서의 이야기가 펼쳐지는데, 개인적으로 2권이 훨~씬 재밌었다. 집에서 데굴거리는 아버지보다 야성의 맛을 알아 밭을 가는 아버지가 더 멋졌고, 숫자는 적지만 아이들에게 삥~을 뜯는 불량학생이 없는 아이들이 좋았고, 한가하고 조용한 섬의 느림의 미학이 즐거웠다. 이것들과는 별도로 아버지의 포스를 유감없이 발휘하는 마지막 한 판에서는 잠시 잊었던 우리의 현실을 생각했고, 권력자들에 대한 울분과 이치로의 행동에 대한 가슴 찡한 감동이 교차했다.

- 지로, 이 세상에는 끝까지 저항해야 비로소 서서히 변화하는 것들이 있어. 노예제도나 공민권운동 같은 게 그렇지. 평등은 어느 선량한 권력자가 어느 날 아침에 거저 내준 것이 아니야. 민중이 한 발 한 발 나아가며 어렵사리 쟁취해낸 것이지. 누군가가 나서서 싸우지 않는 한, 사회는 변하지 않아. 아버지는 그중 한 사람이다. 알겠냐? (2권 245쪽)

- 지로, 전에도 말했지만 아버지를 따라하지 마라. 아버지는 약간 극단적이거든. 하지만 비겁한 어른은 되지 마. 제 이익으로만 살아가는 그런 사람은 되지 말라고. (2권 288쪽)


<남쪽으로 튀어>의 웃음은 <공중그네>만큼 강하진 않다. 그러나 좀 더 깊어지고 진지해진 삶의 질문을 품고 있다. 그렇다고 이 책이 안 웃기냐? 절대 그렇지 않다. 아버지와 지로의 이어지는 만담, 애늙은이 무카이, 생존을 위해 비굴모드도 서슴지 않는 외국인 체류자 베니씨 등은 이 책의 강력한 웃음코드다. ('자급자족이 우리의 목표야!'라고 외치는 아버지에게 '그럼 칫솔도 만드시지, 왜?'라고 응수해 아버지를 침묵케하는 자, 바로 지로다!ㅋㅋ)

오쿠다 히데오는 <공중그네>에서도 그랬듯이 무거운 주제를 무겁지 않고 경쾌하게 풀어내는 재주가 탁월한 작가가 아닌가 싶다. 현대인들의 모습을 웃음으로 담아낸 <공중그네>처럼, <남쪽으로 튀어>에서도 국가와 개인이라는 진지하고 다소 쉽지않은 주제를 그만의 웃음으로 녹여낸다. 못말리는 고집쟁이 우에하라 이치로라는 특이한 캐릭터를 통해 부담없이, 그러나 너무 가볍지 않게 적절한 진지함을 유지하는 그의 솜씨에 다시 한 번 감탄할 뿐이다. 그래서 이 책은 참 웃기고, 참 재미있으면서도 참말로 많은 생각을 하게 만든다. 그래서 그의 작품들이 좋다. ^ ^


웃음과 감동을 멋지게 버무린 책, <남쪽으로 튀어!>
망설임없이 강추다!

더불어.. 우리도 그와 함께 남쪽으로 튀어보자! ㅎㅎㅎ




- 오늘의 농성은 틀림없이 큰 뉴스가 되었을 것이다. 아버지는 국민의 눈에 어떻게 비쳤을까. 미움까지야 사지 않겠지만 동정도 받지 못했을 것 같다. 지로는 어디까지나 냉담한 시선으로 바라보았다. 경찰과 기억에 창끝을 들이댄 사람을 통쾌하다며 재미있어 하면서도, 그것을 막상 내 일처럼 생각해줄 사람은 없다. 텔레비전을 지켜본 어른들은 단 한 번도 싸운 일이 없고 앞으로도 싸울 마음이 없는 사람들이다. 대항하고 투쟁하는 사람을 안전한 장소에서 구경하고 그럴싸한 얼굴로 논평할 뿐이다. 그리고 마지막에는 냉소를 던지리라. 그것이 바로 아버지를 제외한 대다수의 어른들이었다. (2권 26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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