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티스타 수술 팀의 영광 가이도 다케루의 메디컬 엔터테인먼트 1
가이도 다케루 지음, 권일영 옮김 / 예담 / 2007년 1월
평점 :
품절


<바티스타 수술팀의 영광>, 제목만으론 그 정체가 모호한 이 책에 흥미를 가진건 인터넷 서핑중 우연히 본 예고편을 통해서였다. 영화도 아닌 책 예고편이라니.. 이게 요새 새로운 유행인가보다. 책표지 일러스트처럼 다소 음침하면서도 독특한 캐릭터들과 드라마 'X-파일'의 배경음악이 묘하게 잘 어울리며 궁금증을 자아내던 그 플래시 예고편을 보고 있노라니 문득 읽고 싶은 마음이 솟구쳐 바로 주문해 버렸다. 그리고 책이 도착하자마자 440페이지의 압박에도 굴하지 않고, 할 일도 모두 제끼고, 화장실도 참아가며 앉은 자리에서 다 읽어버렸다! 오! 신나는 미스터리 소설이여! ㅎㅎㅎ

일본에서 '이 미스터리가 대단하다'의 대상을 수상했다는 이 작품은 진중하고 무거운 미스터리 대신 가볍고 톡톡튀는 본격 '메디컬 엔터테인먼트 소설'을 표방하고 있다. 과연 읽어내려가는데 거침이 없다. 초반에 열거되는 병원 상황에 대한 설명과 각종 의학전문용어들의 압박만 잘 견뎌낸다면 누구나 부담없는 속도로 읽을 수 있다. 특히 문제의 웃음 핵폭탄 시라토리가 등장하는 중반 이후는 읽는 속도에 더더욱 가속도가 붙는다.



병원내 권력다툼에는 도통 관심없어 도조 대학병원의 신선으로 불리는 신경내과 의사 다구치는 어느날 다카시나 병원장의 호출을 받는다. 병원장은, 어려운 바티스타 수술을 연거푸 성공시켜 도조 대학병원 뿐만 아니라 일본내에서 유명세를 떨치고 있는 닥터 기류가 이끄는 수술팀이 최근 갑자기 잇달아 수술실패로 인한 사망자를 내고 있다는 이야기를 들려주며 다구치에게 그 원인을 조사해 달라고 특명을 내린다. 외과에 문외한인 다구치가 어떻게 수사를 하냐고 저항하지만 병원장과 닥터 기류까지 가세해 부탁을 하고, 다구치가 그 의뢰를 받아들이면서 이야기가 시작된다.

조사를 맡은 다구치는 기류의 수술팀원들에 대한 개인 면담과 직접 수술현장을 견학함으로써 이 사건에 대한 실마리를 찾아내려고 하지만 별다른 성과를 얻지 못하고, 그 와중에 또다시 수술실패가 발생한다. 이 때 미궁에 빠진 이 사건을 위해 혜성처럼(?) 나타난 한 사나이가 있었으니~ 그 이름은 시라토리. '후생노동성 장관 관방 비서과 부속 기술관'이란 정체불명의 직함을 달고 나타난 그는, 다구치를 앞세워 도조 대학병원을 조사한다며 여기저기 들쑤셔 파란을 일으키며 기피대상으로 낙인 찍힌다. 과격하고 직설적이며 엉뚱한 말과 행동으로 주변 사람들을 수시로 당황하게 만드는 괴짜 시라토리지만, 로지컬 몬스터라는 별명답게 논리적인 추론과 재빠른 분석으로 미궁에 빠진 이 사건의 해결사로 떠오른다.

참고로 이 책의 제목으로도 쓰인 '바티스타 수술'이란, 정확한 학술용어로는 '좌심실 축소 성형술'로 이 수술의 창시자인 R.바티스타 박사의 이름을 따서 그렇게 부른단다. 비대해진 심장을 잘라내 작게 만드는 수술이라고 하는데 수술이 어려운 만큼 리스크도 크다고. (평균성공률 60%)



기존에 많은 미스터리물이 다소 무겁고 암울한 반면 <바티스타 수술팀의 영광>은 가벼움의 미학을 추구한다. 그러나 마냥 가볍지만은 않다. 현직의사라는 독특한 이력을 지닌 작가는, 책 중간중간에 현재 의료현실에 대한 문제점을 제기하고 그에 대한 자신의 생각을 주인공 다구치의 입을 통해 들려준다. 의료계에 대한 날카로운 비판의 목소리를 읽다보니 어느 나라나 이런 의료문제가 있구나 싶어 다소 씁쓸한 생각이 들기도 했다.

<바티스타 수술팀의 영광>은 사건의 주요무대인 대학병원을 높으신 의사양반들이 있는 신성구역이 아니라 수많은 조직사회 중의 하나로 묘사해 현실감을 더한다. 권력을 향해 물불 가리지 않는 구로사키 교수나 닥터 효도, 권력으로부터 멀어진 비주류 의사 다구치, 모든 상황을 파악하고 적절히 조절하는 다카시나 병원장, 마취의사, 간호사, 임상 공학사, 병리의 등등 병원이라는 조직내에서 만날 수 있는 다양하고 인간군상들을 생생하게 표현해낸다.

또한 책의 카피처럼, 괴짜 수사관 시라토리의 못말리는 매력이 '공중그네'의 이라부의 포스를 능가하진 못하지만 시라토리만의 독특함과 개성이 책의 곳곳에서 흘러넘친다. 그가 나오는 중반 이후부터 책읽기가 더욱 재밌어지는건 그런 이유 때문일 것이다. 또한 폭소는 아니지만 시종 웃음을 머금으며 읽을 수 있는 것도 이 책의 미덕이다. 웃음을 전해주는 시라토리는 이 책의 '완소남'캐릭터라고나 할까. (물론 외모와는 상관없다;;) ㅎㅎㅎ



간결하고 깔끔한 문체, 암시와 복선을 적절히 사용한 탄탄한 구성, 톡톡 튀는 캐릭터들의 등장, 흥미진진한 사건 전개와 예상치 못한 반전, 경쾌한 유머, 리얼한 의료현장의 묘사 등.. 이 책은 독자들이 좋아할만한 요소를 골고루 갖춘, 부담없이 즐기며 읽을 수 있는 의학추리물이다. 읽는내내 누가 범인일지 추리해가는 과정이 너무 재밌었다. 나처럼 신나는 미스터리를 기다렸던 분들이라면 아마 너무나 반가운 책이 아닐까 싶다. 더불어 괴짜 수사관이지만 더할나위없이 매력적인 캐릭터 '시라토리'가 등장하는 후속작품이 두 권이나 더 있다고 하니 벌써부터 그 내용이 궁금해진다.

<바티스타 수술팀의 영광>, 미스터리 팬이라면 추천한다! ^ -^



 

 

+ 나 홀로 뒷담화 +

많은 미스터리물이 그러하듯 이 책도 놀라운 반전 뒤에 잡힌 범인은 너무나 순순히 자신의 범행을 인정하는 것만으로도 부족해 살짝만 물어도 범행동기에 대해 샅샅이 알려준다. 오! 친절한 범죄자씨! 물론 그동안 궁금해했던 독자들에 대한 배려차원에서 모든 사건을 정리해주는 것이긴 하지만 너무 한순간 힘이 빠진터라 그 뒤에 또다른 반전이 도사리고 있는게 아닐까 의심하고 의심했지만 이야기는 그냥 끝나버렸다;; 마지막 그 2%의 아쉬움;; ㅎㅎ;; 근데 지금 생각해 보니.. 사건의 뒷 수습을 위해 병원측이 벌이는 일련의 '쇼'가 어쩌면 또 다른 반전이자 작가가 말하고 싶었던 내용일런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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