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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 위의 가족
권태현 지음 / 문이당 / 2007년 1월
평점 :
품절
학교 사회시간에 배운 'IMF'는 단순히 '국제통화기금'의 약자로, 책속에 언급된 수많은 국제기구들 중의 하나일 뿐이었다. 그것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던 그 IMF가 어느날 우리사회를 강타했다. 현실에선 책에서 보다 수만 배 더 강력하게 말이다. 불현듯 다가온 국가금융위기로 인해 수많은 기업들이 도산을 하고, 많은 사람들이 길거리로 내몰렸으며, 그전엔 생각지도 못했던 '명예퇴직'라는 말이 일상속으로 깊이 들어왔다. 직장을 잃고 길거리를 헤매는 사람들이 늘어났고, 어려운 경기에 결국 부도를 맞은 중소기업 사장들의 자살이 매일 신문지상을 덮었으며, 국가신용도는 곤두박질치기에 바빴으며, 외화유치라는 명목하에 수많은 알짜기업들이 헐값에 외국자본으로 팔려나갔다. 인수합병의 칼날로 일부 기업들은 그간의 거품을 걷어내고 구조조정으로내부를 정비하여 새로운 준비자세를 갖췄으나 그보다 훨씬 더 많은 기업들은 회복기미가 보이지 않던 경기침체에 깊은 한숨을 내쉬어야만 했다.
IMF시대, 티비를 통해 서울역의 수많은 노숙자들을 본 적이 있다. 직장과 가정을 잃고 길거리로 내몰린 사람들, 그들의 절박함이 곳곳에서 묻어났다. 그러나 그들의 속사정까지 완전히 알지 못했던 나는, 성한 몸으로 막노동이라도 해서 살려고 하지 않고 무기력하게 술에 빠지는 그들을 이해하기 힘들었다. 그 의문은 이 책의 주인공 시우를 통해 그들이 그럴 수 밖에 없었던 상황을 조금이나 풀렸고, 그래서 더 맘이 아팠다.
<길 위의 가족>은 지금은 벌써 아득하게 느껴지는 IMF 금융위기를 배경으로, 사업실패로 인해 뿔뿔이 흩어지게 된 한 가족과 그 주변 사람들을 통해 그 시기를 거쳐왔던 우리들의 아픔을 담아낸다. 회사가 부도직전으로 몰리면서 그간의 부채들로 인해 가정의 터전인 집마저 헐값에 팔아버리고 많은 빚을 지고 있는 시우. 방 한 칸 마련할 돈이 없는지라 시우네 가족은 아내 지은의 친정식구들 집에 흩어져 더부살이를 시작한다. 회사 인수와 빚 문제를 해결하러 사방팔방 뛰어다니는 시우, 적은 돈이라도 생활비에 보태려고 학습지 돌리는 일을 시작하는 지은, 그렇지만 낯선 환경에서 점점 삐뚤어져 가는 아이들, 직장에서 짤리고 아내마저 이혼을 요구한다는 시우의 친구, 자기 돈은 늦게 갚아도 되니 용기 잃지 말고 힘내라고 하는 위로해주는 거래처 사장들, 자신의 빚을 갚아내라고 닥달하는 빚쟁이들, 그 와중에 노숙자들을 상대로 사기치는 파렴치한 사람들까지.. <길 위의 가족>은 격랑의 IMF 시대를 견뎌야 했던 사람들의 여러 유형을 보여주며 그들의 모습을 담담히 그려내고 있다.
절망적인 상황이지만 가족을 위해 '희망'을 놓치지 않으려 발버둥치는 시우를 사회는 헤어나오기 힘든 극한의 상황까지 내몰지만 그는 끝까지 가족에 대한 사랑은 놓치 않는다. 그렇기에 가족간의 '사랑'으로 다시 화합하고 '희망'을 가지는 결론은 비록 상투적일 지라도 진정 아름다울 수 밖에 없다.
이 책을 읽으며, 그 가족의 이야기를 읽으며, 가정을 지키기 위해 애쓴 부모의 모습을 보며.. 그런 힘든 시절의 온갖 비바람을 온 몸으로 막아내시며 굳건히 우리들을 지켜주신 나의 부모님이 떠올라 가슴이 아릿했다. 그리고 너무나도 감사했다. 비록 남들보다 더 잘 살지는 못하지만 마음 편히 쉴 수 있는 터전이 있고, 서로를 감싸주는 가족간의 깊은 사랑이 있으니 나는 누구보다 행복한 사람이다. 좀 더 부모님께 잘 해야겠다,,, 이런 생각이 들게 만든 책이었다.
국가금융위기, 서글픈 우리 시대의 모습을 담담한 필체로 담아낸 <길 위의 가족>. 이 책을 읽고 난 후, 주변의 것들에 보다 많이 감사하는 마음을 갖는 자신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