술통
장승욱 지음 / 박영률출판사 / 2006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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담배는 끊어도 술은 못 끊는, 유난한 술사랑을 몸소 실천하시는 아버지의 영향으로 아니 그 반작용으로 나는 술을 마시지 않는다. 그래서 술 좋아하는 사람도(잘 마시는 사람보다 좋아하는 사람들이 더 무섭다;;), 술자리도 그리 즐기지 않는 편이다. 가끔 마지못해 끌려가는 경우가 있긴 하지만 내 발로 찾아가는 경우는 잘 없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나는 술꾼이오~'하고 대놓고 자랑하는 책에 눈길이 머문다. <술통>이라.. 아마 '제목만 봐도 울아부지 좋아하시겠네~ ㅎㅎ'라는 생각이 들어서였을 거다. 이리저리 뒤적여보니 또 하나의 수확. 잡지 PAPER에 연재했던 글들을 모아 출간한 책이란다. PAPER의 열렬독자는 아니었지만 가끔 들춰보는 그 잡지속의 생생한 글들의 느낌이 좋았던지라 이 책 또한 그런 기분좋은 취함을 전해줄까 하는 막연한 기대감으로 집어들었다.
 
 
첫 시작부터 만만찮다. 입에 착착 감기는 듯한 글들은 읽을수록 그 맛이 더해진다. 말장난 같으면서도 군더더기 없고 명료하지만 웃음을 머금게 되는 장승욱의 문체는 444페이지에 달하는 두툼한 이 술통을 쉬지않고 비워나가게 만든다. 책 두께에 허걱;했던 압박감은 책장을 넘길수록 술과 어울어진 그의 인생 속으로 빨려들어가느라 점점 옅아지고 어느새 책의 마지막에 이르게 된다. 술통이라는 제목에 대한 독자의 기대치에 조금이라도 배신하지 않으려는 듯 모든 이야기에는 술이 절대 빠지지 않는다. 주당의 세계에 입문한 고딩때부터 지금까지 한결같이 술을 사랑하는 그의 일편단심이 놀라울 따름이다. ㅎㅎㅎ
 
<술통>에는 술과 함께 희노애락을 함께 한 그의 인생 이야기가 담겨있다. 사랑 3종 세트에서 학교와 군대를 거쳐 몽사 5종 세트에 이르기까지 숱한 세월을 거치는 동안 그의 곁엔 오랫 벗들과 함께 사랑하는 그의 친구 술통이 머무른다. 그의 인생이 다사다난했기에 술과 친해졌는지, 아님 술과 함께 했기에 그의 인생의 행로가 그렇게 화려했는지는 모르겠다. 그렇지만 그의 글을 읽다보면 이제껏 나의 신조와 달리 술 좋아하는 사람을 좋아할 수도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잠시 들기도 한다.
 
 
글을 읽다보면 저자는 정말 소설같은 인생을 살았다는 생각이 들 수 밖에 없다. 잠시 고등학생 '장승욱'에 대해 알아보자. 명문 고등학교에 입학했지만 바로 학업에 뜻을 접고 62등 중에 61등을 지켰던 그가(요지부동의 62등은 체육특기생이었단다;;) 고 3 막바지에 딱 한 달 공부해보자 마음먹고 연세대를 입학했단다. 헉; 이건 그야말로 영화에서나 듣던 이야기 아닌가. 그러나 그의 이야기를 읽다보면 그 근거를 어느정도는 찾을 수 있다. 고딩 때부터 학교 공부엔 뜻을 접고 술과 함께하며 반등수의 끝자리에 말뚝 박은지 오래지만 독서광임을 자처하며 수많은 책들을 독파했고(국어 경시대회에서 1등을 할 정도의 실력파였다;;), 어릴 때 신문사설을 통해 쌓아둔 한자실력은 이미 상당했으며, 영어소설을 원서를 읽어보고 싶다는 열망으로 착실히 영어공부를 하고 있었으니 전혀 아니땐 굴뚝은 아닌 셈이다. 게다가 지능지수는 교내 유일의 150이었단다. 무엇보다 저자가 치뤘던 대입은 내신성적과 상관없이 학력고사 한 방에 본고사를 치르는 형식이었으니 그런 기적(?)이 가능한 시대이긴 했다. 내신성적이 대입에 반영되는 지금으로선 꿈같은 일이지만 말이다. (물론 영어특기생 같은 제도가 있긴 하지만; 어쨌든 놀라움과 함께 부러움과 시샘이 몰려든다; 쿨럭;; ㅎㅎ;;)
고딩시절만 언급해도 이렇게 화려하니 그 이후 이야기는 직접 책에서 확인해 보시라. ㅋㅋ
 
 
 
주당들이 꿀꺽꿀꺽 들이키는 술잔을 보는 것처럼 참 맛깔나고 시원스레 넘어가는 재미난 글들이 한 가득 담긴 산문집, 술통. 글 속에서 술과 함께 익혀온 저자의 내공과 글빨들이 숨김없이 드러난다. 그래서 술통이란 꺼림칙한(?) 제목임에도 불구하고 이 책을 읽기를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같은 무난한 인생이 있는 반면 이렇게 온갖 사건사고를 만들어내며 활기차게 삶을 파헤쳐 온 인생도 있구나 라는 생각에 그를 살짝 부러워하면서 말이다.
 
사랑하는 술과 함께 많은 사람들과 숱한 이야기 꺼리를 만들어내는 이야기꾼 장승욱. 술통을 통해 맺어진 그와의 인연이 다음엔 어떤 즐거움으로 이어질지 기대된다. 무료한 오후 책장에서 꺼내들고 실실 웃음 날리며 읽을 수 있는 산문집, <술통>. 이 책만큼은 과음해도 좋을 것 같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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