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무 살 여행 - 내 인생의 첫 번째 여행
김병희 지음 / 황금사과 / 2006년 12월
평점 :
품절


'여행'이라고 하면 내게도 떠오르는 추억이 있다. 하나는 첨으로 혼자 떠난 울릉도 여행이다. 친구가 얼마간 그곳에 터를 잡고 살았기에 잠자리제공을 보장받고 간 여정이긴 했지만, 성인봉 등반을 친구와 함께 한 것을 빼곤 일주일 정도 되는 시간동안 온전히 혼자서 여기저기 기웃거리며 울릉도를 탐사(?)했던 그 시간들은 나에겐 정말 색다른 경험이었다. 혼자서 다니는 여행의 맛을 조금이나마 느낄 수 있었던 기회였다고나 할까. 다른 하나는 몇 해 전엔 20년지기 내 죽마고우와 처음으로 함께 배낭을 짊어지고 떠난 여행길이다. 담양과 보성을 거쳐 순천을 찍고 부산영화제로 향했던 그 여정이 아름다웠던 것은 나를 둘러싼 눈부신 자연 뿐만 아니라 나를 행복하게 해주는 좋은 친구와 함께했기 때문이리라. 나 뿐만 아니라 모든 이들에게 여행은 언제나 갈망하는 대상이 아닐까.
 
 
불타는 청춘들을 위한 여행백서 <스무 살 여행>. 이 책은 '스물'이란 단어만큼 상큼한 외모를 자랑한다. 귀여운 표지와 첫 장부터 눈을 사로잡는 멋진 사진들, 원색의 활발함이 꿈틀거리는 목차와 곳곳에 활기와 젊음이 느껴지는 글들까지.. 스무 살의 그 느낌을 담아내려 노력한 흔적이 곳곳에서 듬뿍듬뿍 풍겨난다.
 
'스물'이란 나이에 초점을 맞춰 제시한 여행의 방법 또한 그 나이답다. 여행방법의 '주무기'로아직은 뚜벅이인 젊은 청춘을 위해 버스, 기차, 자전거, 걷기 등을 제시하고 있고(물론 집안 잘 만나 어린 나이에 벌써 자신의 차를 갖고 있는 부유한 영혼들은 제외하고 한 말이다;;), 그래서 여행테마도 '버스 여행 / 섬 여행 / 자전거 여행 / 걷기 여행 / 기차 여행 '으로 구성되어 있다. 각각의 테마에 맞춰 선보이는 여행지들은 멋진 사진들과 함께 저자의 느낌, 돌아본 장소 등이 실려있고, 마무리로 뒷면 한 장은 그곳에 대한 각종(이라고는 하나 대여섯 개의) 정보도 간략히 실어놓는 센스를 발휘해 놓았다.
 
 
책 속에서 내가 가봤던 담양과 순천이 소개될 땐, 담양 대나무 공원과 순천시티투어로 지나왔던 선암사와 순천만이 기억의 숲을 헤치고 떠올랐고(저자도 나처럼 순천시티투어를 했다니 괜시리 반가워지는 이 마음;; ㅎㅎ;; 만약 순천을 여행할 계획이 있으시다면 꼭~ 시티투어를 이용해 보라고 말하고 싶다. 정말 추천할만 하다!), 경주부분에선 좀 더 볼거리들을 그냥 지나간 저자가 아쉬웠으며, 마이산에선 그 산을 처음 볼 때의 경이롭던 느낌이 생각났다.
 
또한 아직 가보지 못한 영월에서는 굽이쳐 흐르는 동강이 화면가득 잡히던 영화 <라디오 스타>가, 석모도의 환상적인 바닷가에서는 <시월애>가, 남이섬에선 <겨울연가>가, 인천의 차이나타운 패루에서는 그 앞에 쪼그리고 앉아 친구와 이야기하던 동구의 모습이 잡히는 <천하장사 마돈나>가, 내소사의 전나무숲에선 <가을로>가, 그리고 섬진강에선 섬진강 시인으로 유명한 '김용택 시인'이 그 장소들과 겹쳐졌다.
 
이 책에 소개된 여러 좋은 곳 중에서 가장 가보고 싶은 곳을 꼽으라면 단연 '대관령'과 '고창의 청보리밭'이다. 대관령은 그곳을 향한 무조건적인 나의 동경과 쉽게 볼 수 없는 양들이 내 마음을 잡는데 한 몫 했고, 고창의 청보리밭은 책 속 사진의 힘이 크게 움직였다. 그 한없이 푸르른 사진속 청보리밭을 본 순간 숨이 막힐 뻔 했다, 너무 감동적이어서. 두 곳 모두 언젠간 꼭~ 가보리라 점찍고 있다. ^ ^
 
 
그러나 이 책은 '스물'의 싱그러움에 초점을 맞추다보니 그 속에서 여행이 주는 깊은 맛을 느끼긴 힘들다. 발랄한 청춘의 가벼움을 지향하기에 여행에서 만나는 삶과의 조우, 삶의 묵직한 깨달음과 여운을 기대했던 독자에겐 조금 당황스러울 수도 있을 듯. 그러나 깊은 사색 뿐만 아니라 이 책처럼 잠시 일상의 단조로움을 지워주는 것도 여행의 한 묘미가 아닐까 생각해 본다.
 
개인적으로 이 책에서 가장 맘에 든 것은 곳곳에 실린 '사진'이었다. 그곳만의 아름다움과 당시 여행의 느낌까지 잡아내는 그 사진들은 훌륭했고 너무 좋은 사진들이 많았다. 또한 그 사진들은 나로 하여금 다시 한 번 사진에 대한 열정을 불 태우게 만들었다. (곧 꺼져버리긴 했지만; 쿨럭;) 그러나 여기에도 아쉬움이 있었으니.. 사진 위에 배열된 글자들을 읽기가 수월하지 않다는 것이다. 모양새와 분위기도 좋지만 활자들을 편안하게 눈에 담을 수 있었다면 더 좋았을텐데. 어떤 곳엔 사진의 검은 테두리에 글자가 묻혀 끝끝내 알아보지 못한 경우도 있다;; 편집자께서 다음 판본에서는 좀 더 읽는 이들의 눈의 압박을 배려해 주셨으면 하는 바람이다.
 
 
 
<스무 살 여행>의 상큼한 여행을 뒤따르다가 문득 내 나이 스물의 여행을 헤아려본다. 나의 스물의 여행의 화두는 뭐니뭐니해도 '별과 밤산행'이다. 아마추어 천문 동아리에 들어 주말마다 밤산행을 하던, 죽을 듯이 헥헥대며 올라간 산의 정상에서 눈부시게 뿜어대는 쏟아질 듯한 별들의 무게에 모든 피로를 순식간에 잊었던 그 황홀한 기억들과 감동들! 일상의 지루함 속에서 오랫만에 그 상큼한 기쁨들을 기억할 수 있게 해 주었기에 이 책에게 고마움을 표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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