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녀와 비밀의 부채 1
리사 시 지음, 양선아 옮김 / 밀리언하우스 / 2006년 12월
평점 :
구판절판


두 소녀의 평생에 걸친 우정과 오해, 그리고 화해와 용서에 대한 이야기, <소녀와 부채의 비밀>. 여든 살의 미망인 설화가 자신의 인생을 돌아보며 회고하는 형식으로 시작하는 이 소설은, 책의 주제인 소녀들의 우정이라는 큰 줄기를 바탕으로 19세기 중국에서 살아가는 여성들의 여러가지 삶의 모습을 담담히 그려내고 있다.
 
가난한 농부의 딸이었던 설화와 지체높은 집안의 나리는 평생동안 우정을 나누는 영혼의 친구인 '라오통'을 맺게 되고 그들만의 우정을 쌓아간다. 많은 시간 많은 부분을 함께 하며 그 누구보다 깊은 우정을 만들어온 그녀들도 나이가 차면서 각자 결혼을 하게 되고, 그동안 몰랐던 설화의 비밀이 밝혀지는데..
 
 
여자만이 겪는 고통과 그 속에서 싹틔우는 희망을 대표하는 전족과 함께 여자들에게만 전해와 그녀들만의 의사소통의 도구로 씌여지는 누슈는 소설 속 두 소녀의 삶과 우정에서 많은 부분을 차지한다. 특히 이 소설에서 처음 들어보는 '누슈'는 실제로 중국의 외진 지역에서 여자들만의 비밀문자로 사용되었다고 하는데 현재는 거의 전해지지 않는다고 한다. 여성에게 교육의 기회를 주지 않았던 옛날과 달리 지금은 남녀 모두 교육의 기회를 접할 수 있기에 그 보존이 더 힘들지 않았나 싶다.
 
이 책은 평생 그녀들을 지탱했던 '소녀들의 우정'과 그들의 마음을 전했던 방법이었던 '비밀의 문자 누슈', 그리고 여성을 억압하는 현실의 족쇄를 상징하는 '전족'을 통해 남녀차별이 공공연히 행해지는 19세기 중국에서 여자들이 어떤 성장과정을 거쳤고, 어떤 희망을 꿈꾸었으며, 어떤 고통을 감당해가며 삶을 꾸려왔는지 들려준다. 특히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이 몰락하는 설화의 모습은 그 시대 여성의 아픔을 대표한다.
 
 
그러나 회고의 형식으로 느리게 진행되는 이야기는 소설적 긴장감이 떨어지고, 이야기 중간중간 수차례 예고하던 '결정적 사건'은 아쉽게도 누구나 예상가능한 결론으로 흘러 그 임팩트가 크지 않다. 무엇보다 아쉬운 것은 책제목에도 언급된 그 '비밀'이 그리 충격적이지 않다는 것이다. 그들의 비밀을 품고 있는 부채와 비밀의 문자 누슈는 그들 일생의 가장 큰 오해를 제공하고 또 그것을 해결하는 열쇠를 품고 있긴 하지만 '비밀'이란 말 자체가 가진 강도를 만족시키진 못한다.
 
미국인인 저자 리사 시는 그 당시 중국의 모습을 놀랍도록 생생히 재연해  내며(물론 그 시대를 살아보지 않아 정확하다고 말할 수는 없지만;;), 여성이라는 이유만으로 억압받던 시대와 그 속을 살아가던 다양한 여성들의 모습을 애정어린 시선으로 그려낸다. 이 소설은 무엇보다 '누슈'라는 잊혀진(또는 완전 생소한) 문자의 존재를 사람들에게 알리고, '전족'이라는 여성억압적 문화에 대해 다시 생각해 보는 계기를 마련했다는데 나름의 의의가 있다고 본다.
 
 
전족을 해야 결혼을 할 수 있기에 뼈를 부러뜨려 작은 발을 만들고(책에 묘사된 전족의 과정은 충격적이었다;;), 결혼 후에는 아들을 낳아야만 겨우 대접받는 영원한 이방인이며, 언제나 남자들(아버지,남편,아들)에게 복종하며 살아야 했던 그 시대 여자들의 가련한 삶 속에서 피어난 두 소녀의 아름답고 안타까운 우정이야기를 담고 있는 <소녀와 비밀의 부채>. 읽는내내 안타까움과 분노가 교차하며 참 많은 생각을 하게 만든 소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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