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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자책] 우체국
찰스 부코스키 지음, 박현주 옮김 / 열린책들 / 2016년 6월
평점 :
판매중지
마지막 문장은 이렇다.
"아침이 되자 아침이었고 여전히 살아 있었다.
아마 소설을 쓸 것 같군, 생각했다.
그래서 소설을 썼다."
쏘 쿨, 하게 맺는다. 그답다. 치나스키 혹은 부코스키.
시작은 어떠한가. "이 작품은 허구이며 아무에게도 바치지 않는다." 라고.
시종일관 <그리스인 조르바>와 <인간실격>의 요조를 떠올리게 한다.
늘 자유를 갈망하고 그만의 고유한 삶을 살아온 조르바,
"자살도 하지 않고 미치지도 않고 정치를 논하며 절망도 하지 않고 좌절하지도 않고 살기 위한 투쟁을 잘도 계속하"는 보통(?)사람들 틈에 섞일 수 없는 요조.
조르바와 요조를 떠올리기엔 치나스키가 우체국에서 12년이나 일해온 근면한(!) 경력을 가졌다는 것이 다르달까.
시종일관 단순한 문장, 때로 저급한 어투를 구사하여 자기비하에 가깝게 들리도록, 그러나 또 담백하게 서술하는데,
누가 정상이고, 누가 비정상인건지 헷갈려온다.
"어떤 바보 멍청이라도 구걸하면 일은 얻을 수 있어. 일하지 않고 사는 사람이 지혜로운 거지. 세상에서는 이런 사람을 요령있다고 하지. 나는 요령있는 훌륭한 백수가 되고 싶어."
문득 멍청한 질문을 내게 던진다. 그래, 인간이 왜 일을 해야 하지? 자아실현을 원한다면 암, 해야지. 그러나 마침 돈도 있는데 본인이 발전도 원하지 않아. 그럼 왜?
부자의 아들이 마침맞게 자아실현 욕구가 없으면, 그런대로 부의 재분배는 이뤄지진 않을까? 자연스럽게? 그는 그대로 행복하게 살고, 사회엔 보탬되고, 그럼 되지 않나?
내가 듣기에도 다소 멍청한, 그러나 왜 멍청한지는 모르겠는, 그런 자문을 하게 되며 책장은 계속 넘어간다.
"구걸하면 일은 얻을 수 있"다는 표현은 우리의 노동을 자본가에게 아첨 떠는 구걸로 보나 싶어 씁쓸하나,
시종일관 자본주의 시스템 안에서 기계처럼 소모되는 인간 군상들에 대해 신랄하게 비판하고 있다.
모자를 왜 그곳에 두면 안되는지 아무도 모른 채 '규칙'이 되고, 동료가 아파도 실적에 내몰린 이들은 모른 체 할 수밖에 없고, 23분이라는 얼토당토 않은 업무 제한시간은 사람을 옥죄어오며,
자아계발은커녕 오로지 대량생산에만 초점을 맞춘 반복되는 업무는 육체를 망가뜨리고, 기계처럼 일하지 못하는 노동자에겐 영혼 없는 경고장이 남발되고,
병원마저 영혼 없는 진료와 영혼 없는 멘트를 순전히 매뉴얼에 따라 계속 반복한다.
그의 아내 조이스는 부유한 집안 덕에 딱히 돈이 필요하지 않지만, 오직 부모님께 그들이 번듯이 살고 있다고 보여주기 위해 그에게 직장을 다닐 것을 요구한다.
그러지말고 인생을 즐기자며,
"이렇게 살면 다른 사람들과 똑같이 사는 거야. 이러다 죽는다고." 치나스키는 반대하지만 조이스는 그의 말을 받아들이지 않는다.
치나스키는 조이스의 말을 "텍사스 시골 촌년이 할 만한 말이었다."고 일갈하는데, 그의 통찰에 반한 나는 이것까지 계몽의식을 담지 않았나 해석해버리고 만다. 지나친 걸까?
아무래도 상관없다. 작가가 의도했건 말건. 나는 그렇게 읽는다.
대량생산! 대량소비! 그것과 맞물린 청교도 정신. 마치 모두가 일해야할 것처럼, 노동으로서 기능해야만 인간다운 것처럼 우리는 세뇌당하지 않았던가.
그렇게 세뇌된 의식에 저항하라. 깨어나라.
치나스키는 반대하지만, 그럼에도 아내의 말을 따른다. 어머 어쩜 좋아, 이런 로맨티스트!
그는 내게 멍청한 척 하는 천재다.
치나스키는 조이스가 다른 남자에 대한 선망을 품었다는 걸 알았을 때, 화내지 않는다. 손수 근사한 저녁을 차린다. 그가 만든 달팽이 요리를 좋아하지 않는 조이스.
이어지는 똥구멍론. 아, 이 남자 좀 보게. 모두에게 똥구멍이 있다, 이 말씀. 누가 누굴 더럽대.
끝내 그녀는 뒷통수치듯 이혼을 선사하는데, 치나스키는 오히려 그녀를 위로한다.
"그녀는 정말 괴로워했다. 잠시 후에는 내가 그녀에게 이혼하자고 한 듯한 기분이 들기 시작했다."
이 남자를 누가 무뢰한이라 하나. 웃음과 눈물과 예의로 교묘하게 포장한 똥구멍들이 무뢰한이다.
치나스키는 과거에 헤어졌던 베티를 우연히 다시 만나고 그녀의 노화를 바라본다. "슬펐다. 슬펐다. 슬펐다." "우리는 둘 다 뭔가 빼앗겨 버렸다."
크리스마스 트리가 무너져 전구에 화상을 입었어도, 베티를 위해 그 위험한 물건을 다시 켜놓는 치나스키.
뿐인가. 결국 그녀의 임종을 지킨 것은 그뿐이었다. 그녀의 아들조차 관심이 없는데.
이런 치나스키에게 내가 마음을 홀린 것일까. 거친 그의 말이 여성비하로 들리지도 않는다.
새로운 여인과 진지한 관계를 생각하며,
"내 몸에 오일을 발라주고 요리도 해주고 말도 걸어주고 나와 함께 잠도 자주겠지.
물론 항상 다툴거다. 그게 여자의 천성이니까. 여자들은 더러운 세탁물과 욕설, 신파극까지도 다 주고 받고 싶어하니까.
그런 후에는 서약을 주고받자고 하겠지. 나는 서약을 주고받는데는 능숙하지 않다."
여성의 천성이라고 말한 대목들이 비하로 들리지가 않아. 나 뭐 씌었어, 어쩔.
그래, 여자란 그렇게 다정할 수도 있고, 모든 것을 공유하고 공감하고 싶어하기도 하는데, 그게 나쁜가? 그것이 왜 비하겠는가.
업무상 구분표를 암기하고 시험에 통과해야 할 때, 그가 쓰는 암기법은 모든 내용을 섹스와 나이에 연관시키는 것이다. 천연덕스럽게, 상스러운 단어들이 나열된다.
"그래도 몇 개의 난교 관계는 헷갈렸다."
어처구니가 없다. 이걸 비난해야 하나? 머릿속 생각까지도 순결해야 하나?
그것으로 백퍼센트의 정확도로 성공하니, 오호, 타고났네!
내 입에 담아보지 못한 온갖 단어들이 난무하는 가운데, 그의 통찰은 자주 빛난다. 멍청한 척 하는 천재, 냉정한 척 하는 온정인.
나는 언제나 위선자보다 위악자에게 매력을 느낀다.
클래식 음악에 정통하다며, 아침에 누워 맥주를 마실 때 들어서 그렇게 됐다며 가볍게 눙치고 넘어가는데, 그게 어디 그렇게 쉽던가.
치나스키의 교양을 알게 된 잰코는, 그에 곁에 붙어
"내 옆 스툴에 앉아 밤이면 밤마다 자신의 비틀리고 분노한 영혼 속에 깊이 묻혀 있는 불행을 줄줄 읊어 대며 불평했다."
치나스키는 그런 자들과는 다르다. "잰코는 목소리로 나를 살해하고 있었다."
그러고 보면 그렇다.
평범한 기준에 무언가 나사 빠진 듯 살면서도 그는 세상을 불평하지도 않고, 언제든지 나가라면 훌훌 털고 나오며 다시 또 그만의 세상을 살아간다.
세상에 대한 불평은 이 정도로 보일 뿐.
"음, 나도 지옥에 있는 건 똑같은데 곡 하나 못 쓰는군."
상남잘세, 상남자야.
"그때까지 거쳐온 다른 직업들을 떠올려 보았다. 매번 미친놈들이 달라붙었다. 그들은 나를 좋아했다."
이유야 몇가지 보인다. 당신의 거부할 수 없는 매력 때문이거나, 당신 역시 이상한 놈이기 때문이거나. 혹은 당신 눈에 모든 이가 미친놈이거나. 우리의 눈에 당신이 무언가 이상하듯.
그의 온정은 여자들에게만 발휘되는 것이 아니다. 그의 일상을 갉아먹던 잰코가 습작소설의 평을 부탁할 때도 그는 성심성의껏 최선을 다한다.
"무슨 영문인지 그가 우체국에 대해서 쓰기 시작한 순간 소설은 사실성을 잃었다." 한번 웃겨주고.
잰코의 인신공격적인 발언에도 불구하고, 그에게 작은 방을 빌려서 글을 써보라고 진심으로 충고한다. 이것이 온정이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휴가를 내고 그는 경마장과 모텔을 전전하며 살아간다. "마술 같은 삶이었다. 절대 진력나지 않았다."
"도살장에서 일하던 남자, 철도 강도들과 함께 이 나라를 횡단하던 남자, 개 사료 공장에서 일하던 남자, 공원 벤치에서 자던 남자, 전국 여남은 개 도시에서 잔돈푼이나 받으며 일하던 일용직 남자에서 이처럼 출세했다."
베티와 조이스와 그외 몇을 거치고, 그는 나중에 자신의 아이를 낳게 되는 페이를 만난다.
반전주의자이며, "세상을 구하겠다는 생각을 갖고 있"으나 평생 일은 거의 하지 않은 채 남에게 의탁해 살고 있는 페이. 그녀의 "작품이 발표되지 않는 이유는 오직 작품을 투고하지 않기 때문". 소일은 초콜릿 먹기 정도?
그녀가 좋아하는 작가 친구가 직업을 잃었다고 하여 치나스키가 우체국 일을 소개시켜주려하자 그녀가 화를 내는 장면은 인상적이다.
"우체국이라니! 로비는 너무 예민해서 우체국에서 일할 수 없어!"
여기, 당신의 남자가 우체국에 다니고 있다. 예민한 감각으로. 가슴에 글을 품고. 업무로 인한 육체의 고통을 호소하며.
로비의 전직이 택배 업무라는 것도 좀 웃기다는 건 넘어가고.
우체국 사람들이 유희로서 즐기는 "흑인-백인놀이"는 듣기 거북하다.
"이 게임은 지겨워졌지만 빠져나갈 길이 없었다." 한번 선을 넘겨 상투성을 획득하고 나면 바꾸는 것이 얼마나 힘든지.
유독 페이에게만큼은 조금 냉정한 시선을 보냈던 치나스키지만, 딸의 출산 전후 그는 말한다.
"어쩌면 페이는 세상을 구할 수 있을지도 몰랐다."
"이 나이든 여자는 이 무관심한 세상에서 또 하나의 외로운 존재일 뿐이었다."
"여자들은 고통받도록 태어난 존재였다. 그들이 사랑받는다는 선언을 끊임없이 요구하는 것도 당연한 일이었다."
"세상을 구하지는 않았을지라도 세상을 크게 향상시키긴 했다. 페이 1점 득점."
생명의 탄생 앞에선 모두들 무언가 복잡한 심경과 마주하는 걸까.
"저기 아래 사람들 좀 봐. 저 사람들은 여기 위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전혀 생각도 못해. 그저 보도를 걸을 뿐이지. 하지만 웃겨... 이 사람들도 한 번은 태어난 것 아냐. 저 사람들 모두."
신생아실의 딸아이를 보며 그는 말한다.
"불쌍한 것. 생각했다. 불쌍하고 재수 없는 것. 그때는 그애가 언젠가는 나와 똑같이 생긴 예쁜 소녀로 자라나리라는 것을 전혀 몰랐다. 하하하."
이 세상에 존재하는 인간에 대한 연민이자, 자신의 딸에 대한 경이로운 감동을 그리는 치나스키의 언어.
동시에, 막나가는(?)듯 보이는 찰스 부코스키마저도 자신의 행적을 좇을 딸의 눈만은 피할 수 없지 않았을까 생각해본다.
뭐, 그렇다고 우리의 치나스키가 이렇게 평범하게 넘어갈 순 없지. 딸을 보여준 간호사.
"좋은 간호사였다. 다리도 예쁘고, 엉덩이도 예쁘고. 가슴도 괜찮았다."
페이와의 이별은 무언가 석연찮다. 그들의 이별에 관해선 냉정할 수 없었을까. 페이보다 딸 때문에.
늘 그래왔듯, 여자는 이별을 말하고 그는 담담하게 받아들인다.
오랜시간 반복된 업무로 그는 알 수 있고, 없는 각종 병에 시달린다.
그만의 일이 아니다. 건장한 사내였던 지미는 없어지고, 못버틸거라고 토로하는 후줄근한 남자만이 남았다.
"우체국이 그를 살해한 것이다."
비단 우체국만일까? 지미만일까?
"우체국 업무는 하룻밤 열두시간 근무에다가, 현장 주임을 더하고, 우편 사무원들을 더하고, 살덩이들 틈에서 제대로 숨도 쉴 수 없는 분위기를 더 하고도, 거기에 <비영리> 식당에서 만든 쉰 음식까지 참아야 하는 일이었다."
우체국, 시간들, 사람들, 몇개의 단어만 바꾸면 어디 지금과 크게 다른가? 비단 치나스키의 우체국에만 해당하는 일인가?
단어들을 바꾸면 싹 다 바뀌는 거지 장난하나. 누군가 그렇게 말한다면, 암요! 그 역시 일리있는 의견!
"염병, 그런데서 일하는 사람들은 남이 인생을 즐기며 사는 꼴을 못 봐. 그렇지 않아? 항상 쳇바퀴에 묶여 일하길 바란다니까."
굳어버린 흑인-백인 놀이를 쉽게 바꿀 수 없듯, 인생도 쉽게 바꿀 수 없다.
더 큰 문제는 쳇바퀴에 묶인 인간들이, 타인마저도 그 쳇바퀴 속에 들어오길 강요한다는 거.
튀지 마. 너도 이렇게 살아!
아 대체 왜요. 누굴 위해서요.
막말로 말해서, 내 인생마저 당신네 인생과 똑같아진다고 해서 내 불행 먹고 당신들이 행복해지는 것도 아니다.
타인에게 피해를 주지 않는 한, 제각각의 다양한 삶의 모습은 우리 모두를 풍요롭게 한다.
생각만 해도 멋지다. 획일화되지 않은, 너와 나의 다른 삶. 모두가 다르며, 달라서 조화로운 그런 세상.
타인의 행복권을 보장하는 동시에, 언젠가 이곳을 벗어나고 싶은 우리를 위해서도 그들은 삶의 가능성을 보여준다.
내 생각은 또 뻗쳐나가기 시작하는데, 나는 노조를 욕하는 사람들이 싫다.
그들 역시 인간의 모임이기에 사안에 따라서 잘못된 행태를 보일 수 있고, 그것을 비판하는 것엔 어떤 이견이 없다.
그러나 찰나의 고민도 없이, 그 활동 자체를 할일 없는 짓거리라거나, 그들을 나설 때 안 나설 때 못가리는 사람들이라고 싸잡아 막말하는 자들과는 친구하고 싶지가 않다.
우리 모두가 활동가가 될 수는 없고, 우리 모두 세상을 바꾸겠다며 분연히 일어나 소리칠 수는 없다.
그런데 누군가 나선다면, 그 활동이 미미하여 좀처럼 확인할 수는 없을지언정, 그럼에도 그 미약하나마 좋은 세상을 위해 싸우겠다면,
그걸 욕할 이유가 무엇이란 말인가. 돕진 못할 망정.
어쩌다 노조까지 갔으나 삶의 다양성으로 다시 돌아와,
그리하여 나는 치나스키가 12년간의 노동자 생활을 그만두는 것에 박수를 보낸다.
"어쩌다 사람들이 그렇게 되는지는 모르겠다. 난 아이 양육비도 내야 하고, 술값, 집세, 신발, 양말 따위도 필요하다.
다른 사람들처럼 중고차라도 있어야 하고 입에 풀칠도 해야 하고 자질구레한 무형의 필수품들도 필요하다."
여건은 치나스키에게도 제약이다. 그러니까, 사실은 꼭 여건 때문에 사람들이 획일화된 삶을 사는 건 아니다.
획일화된 삶이 주는 안정성과 벗어나고 싶은 욕구의 저울질. 무엇이 승리하는가에 따른 계산.
어떤 결정이 옳고 그른 것은 없다. 다만 타인의 삶을 재단하지 말라는 경구만이 남는다. 내 삶이 존중받아 마땅하듯이.
치나스키에게 필요한 무형의 필수품?
"여자들이라든가.
아니면 경마장에서 보내는 하루라든가."
다음 문장은 그의 저울이 어디로 기울지 알려준다. 그는 그런 사람이니까.
"그렇지만 모든 것이 위태롭고 빠져나갈 출구가 없으면 그런 생각조차도 들지 않는다."
기계처럼 일하다보면 기계가 되고 욕망조차 잃기 쉽고 그러다보면. 아 나 왜 살지.
이거저거를 좋아하던, 이거저거로 행복하던 사람이라는 자기정체성마저 잃기 쉽지 않던가.
그렇게 자기정체성을 잃고 나면 타인정체성은 중요한가. 획일적인 집단에서 튀어보이는 다른 누군가가 눈에 밟힐테고.
그렇다고 획일화되고 정형화된 직업이나 삶의 모습들을 낮추어보는 것은 전혀 아니다. 치나스키 역시 그 점을 짚는다. 아오, 당신 놓치는 게 없구랴.
"젊은 흑인 여자 하나가 걸어왔다. 옷을 잘 차려입었고 자기 환경이 마음에 드는 듯했다. 그 여자가 그렇다니 나도 기뻤다."
그러니까, 타인의 삶에 이러쿵저러쿵 간섭하지 말라는 것뿐.
이어지는 문장은 이거긴 하다만, 그게 간섭은 아니잖아. "내가 똑같은 일을 한다면 미쳐버렸을텐데."
일을 그만둔 치나스키 역시 불안하긴 매한가지다.
"나는 조이스가 길렀던 빌어먹을 잉꼬들과 다를 게 없었다.
새장 안에 갇혀 살다가 문이 열리자 날아올랐던 것이다. 마치 천국으로 쏘아 올린 총알처럼. 그런데 빠져나간들 천국일까?"
그는 일종의 잠수병에 시달리고, 한동안 거의 광증에 가까운 상태로 시간을 보낸다.
그 와중에 싹 지나가는 그의 가슴아픈 통찰. "돈이 지속되는 한, 사람도 지속되었다."
여하튼 황폐한 시간을 보내고, 리뷰에서도 맨 위에 기술한 마지막 문장 뚜둥.
아침이 되었고 살아있었으므로 소설을 썼다는.
나는 탄성을 지르며, 다소 혼란스러웠으나 그에게도 나에게도 영감을 전해준 그 삶에 박수를 보낸다.
치나스키는 세상을 바꾸려고 하진 않았으나 적어도 그의 인생만큼은 바꿀 수 있었고,
부코스키는 이런 치나스키를 그려냄으로서, 치나스키가 하지 못한 세상의 변혁에 한발 다가갔다고 생각한다.
박수를 보내지 않을도리가.
덧.
"2년 사이에 장례식이 세번이나 있었어. 첫번째는 우리 어머니였고 다음은 아버지였지. 오늘은 옛날 여자친구."
정확한 시점이 명시되진 않지만, 이 책의 시간적 배경이 되는 동안에 부모의 장례가 있었을 것으로 추정되는데, 그에 대한 언급은 더이상 없다.
이렇게 인생을 대놓고 까발리는 그에게도 지키고 싶은 신성불가침의 영역이 있었을까, 혹은 이야기할 거리가 없다고 생각했을까.
기록되지 않은 치나스키(혹은 부코스키)도 궁금해진다.
"장례식에는 뭔가 있다. 사물을 좀 더 똑똑히 보게 한다. 하루에 한 번씩 장례식이 있다면 부자가 될 텐데."
걸판지게 욕해볼까 싶어 집어든 책이었으나 의외로 당신의 팬이 되어버렸으므로, 행여나 내 마음이 바뀔까 싶어 다른 작품들을 지금 당장은 읽고 싶지 않아졌다.
아껴볼 생각이다. 그의 다른 소설들을.
책에 인용되기를 누군가
"부코스키는 자신이 세상에서 가장 훌륭한 경마광이 되거나 세상에서 가장 훌륭한 섹스광이 될 거라고 했다. 그러나 그는 결국 세상에서 가장 훌륭한 작가가 되었다"라고.
'가장 훌륭한'지는 모르겠으나, 훌륭한 작가가 되었다. 경마에 섹스에, 글까지 잘 쓰다니! 당신의 온정주의에 유일한 하자. 타인을 초라하게 만들다. ㅎ
<우체국- 찰스 부코스키 지음, 박현주 옮김/ 열린책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