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보내지 마 민음사 모던 클래식 3
가즈오 이시구로 지음, 김남주 옮김 / 민음사 / 2009년 11월
평점 :
구판절판


주인공은 캐시 H.  31세. 

11년 차 간병사이자, 예비 기증자이다. 

처음부터 심장이 쿵, 내려앉았다.

이토록 잔인할 수가 있단 말인가. 


기증자란, 애초에 장기 기증을 위해 만들어진 복제인간들이다. 그들을 기증자라고 부르는 것부터 사악하다. 

더구나 그들이 기증을 하기 전까지, 그들 스스로에게 간병인의 역할을 맡기는 그 악랄함. 

나는 혀를 내두른다. 


그러나 인간에게 이러한 일이 어디 가상의 소설 속에서만 있는가 생각하면, 할 말을 잃게 된다. 

유대인 수용소의 카포는, 그 아이디어는 대체 누구에게서 나왔는가. 

몸서리를 치는 동시에, 그것이 가장 편리했음을 깨닫는 끔찍함. 


소재상 SF소설이라고 할 수 있지만 1990년대 후반의 영국을 상정하고 있다는 것도 놀라웠다. 

덕분에 더욱 몰입할 수 있었던 것은 분명하다.


캐시는 헤일셤에서 성장기를 보냈다. 기증자들의 세계에선 선망의 대상인 곳, 헤일셤. 그곳은 과연 천국이었을까. 


총 3부 중, 1부는 그 헤일셤에서 보낸 이들의 성장기가 그려진다.

아이들은 남다르지 않다.

잔망스러운 아이도 있고, 순진한 아이도 있고, 이들끼리의 애증과 사랑도 있다


아이들은 모든 것을 알고 있지만, 동시에 아무것도 알고 있지 못하다. 

기증에 대해, 자신들이 보통의 사람들과 다르다는 것은 분명히 알고 있지만, 그 정보들은 교묘하게 어딘가 부족한 상태로, 불명확하게 전달된다. 

그 모든 것을 이해하기에는 너무 어렸고, 의미는 제대로 전달되지 않는다. 

"다시 말해서 헤일셤 교사들은 우리의 앞날에 대한 기본 사항을 우리의 머릿속에 집어넣는 데 아주 교묘한 방법을 동원했는지도 모른다."


아이들에겐 자신만의 창작품을 만드는 것이 중요한 과제로 주어진다.

토미는 어설픈 그림으로 아이들에게 놀림감이 되지만, 루시 선생님의 말 때문에 그림을 다시 그린다.

"잘 들어, 토미. 훌륭한 그림을 그리는 건 중요한 일이야. 그게 하나의 증거이기 때문에 그런 것만이 아니야. 너 자신을 위해 중요하다고. 너 자신만 두고 보더라도 그걸 통해 많은 걸 얻을 수 있어."


2부. 헤일셤의 과정을 마친 아이들은 흩어진다.

캐시와 루스, 토미는 간병사가 되기 전까지 코티지에 머무르게 된다. 

보통 사람의 삶을 접한 적 없는 아이들은 TV와 소설 속 인물들을 따라한다.

미래가 없음을 알지만, 미래를 상상한다.

실현될 수 없음을 알지만, 그렇다고 오직 환상이라고 여기지도 않는다. 


이들은 '근원자'를 궁금해하는 동시에, 두려워한다. 

루스는 말한다. 

"우리 모두 알고 있어요. 우리는 부랑자나 인간쓰레기, 창녀, 알코올 중독자, 매춘부, 정신병자나 죄수들로부터 복제된 거예요. 그게 우리 근원이에요."

캐시 역시 그 생각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나의 근본을 벗어나고 싶다는, 그러나 벗어날 수 없다는 수치심. 


꿈을 꾸는 존재이기 때문일 것이다. 이들 사이에서는 소문이 퍼져간다.

헤일셤 출신인 커플이 그들의 진정한 사랑을 증명할 수 있다면, 기증 집행을 3년, 4년 미룰 수 있다고.

이 순진무구함에, 나는 할 말을 잃는다.

그들의 장기를 노리는 사람들이 그들의 사랑에 탄복할 것이라는 그 순진함에. 

또한, 꿈조차 그 굴레에서 아예 벗어날 것은 꾸지 못한다는 것에 할 말을 잃는다.

겨우 얼마간의 시간을 미룰 수 있다는 것에 희망을 거는 이들이라니. 


그 생각은 나아가, 사랑을 증명하는 것은 그들의 창작품일 것이라는 생각에 미친다. 

토미는 그만의 예술품을 만드는데 집중한다.


3부는 간병사 이후의 이야기다. 

몇 번의 기증 후, 죽음을 앞둔 루스는 그간 토미와 캐시를 고의적으로 갈라놨음을 고백한다.

그들에게 있는 뜬소문과도 같은 희망을 반드시 잡으라고, 너희의 사랑을 증명해 기증을 미루라고 루스는 설득한다.  

토미에게 곧 네번째 기증 통보가 내려질 것을 예감한 이들은, 그 기회를 찾아나선다.

헤일셤의 교사, 에밀리와 마리클로드를 만난다. 


이들의 대화는 책의 클라이막스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모든 비밀이 밝혀진다. 

모든 것을 알게 된 이들, 결말은 어디로 향할까. 


포유류의 복제에 성공했다는 소식이 들려온다. 이는 더이상 SF적 상상에 그치는 것이 아닌, 한번쯤 고민해봐야 할 문제일지도 모른다. 

나아가 책은, 단지 복제인간에 대한 화두만을 말하지 않는다.  

삶을, 운명을, 인간의 존엄성을 말한다. 

인간이란 무엇인가에 대하여. 


<나를 보내지마 - 가즈오 이시구로, 김남주 옮김/ 민음사>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