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이러 갑니다
가쿠타 미쓰요 지음, 송현수 옮김 / Media2.0(미디어 2.0) / 2007년 1월
평점 :
절판


표제작 <죽이러 갑니다>를 보고는 출간 일자를 확인했다.

원작이 나온 것이 2006년. 

역시 예술은 때때로 현실을 앞서 나간다는 것을 실감한다.  

그녀가 묘사하는 모든 것들이 한때 한국을 뜨겁게 달궜던 여성혐오를 여실히, 매우 섬세하게 드러내고 있어서 놀라움의 연속이었다.

주인공 구리코를 밀치며 가는 남자들, 자동발매기 앞에서 조금 지체하자 무섭게 불만을 표하는 남자. 

아내가 제 어머니와 똑같아지길 바라는 남편, 여성의 일은 별 거 아니라고 생각하는 사회적 시선.

"자식들 기분이나 맞춰주면서" 살아가는 사람들을 혐오했으면서도, 자신 스스로 그렇게 되고 싶은 모습에 몸서리 치는 여자.

그래서 자식을 끔찍히도 사랑하면서 죽이고 싶어지는, 그런 일상. 

여성끼리도 방향을 잡지 못하고 서로를 제 불행의 주범으로 지목하는 현실 등.


구리코는 자신에게 최초의 절망을 가져다 준 5학년 때 선생님을 찾아간다. 어린 구리코를 이유없이 궁지로 몰았던 사루야마. 

"그때 처음으로 구리코는 사루야마라는 선생이 자신을 혐오하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것은 전혀 이해할 수 없는 부조리이기도 했지만, 그렇게 납득해야 그때까지의 모든 것이 하나로 맞아떨어졌다."


그러나 찾아간 사루야마는 이미 그때의 사루야마가 아니다. 

심신이 모두 약해지고, 치매로 구리코를 제대로 기억조차 하지 못하는 사루야마.

구리코는 악의에 찬 말을 내뱉으며, 제 스스로의 모습에 등골이 오싹해진다. 


또한 구리코는 사루야마가 자신을 기억하지 못함에 분노한다. 

"자기를 기억해주길 바랐다. 그것은 결국, 그 가엾은 노인과 연관되길 아직도 바라고 있다는 것 아닌가. 히로에가 귀엽디 귀여운 자기 자식과 평생 떨어지기 싫어하는 것처럼, 그 기억을 소중하게 끌어안고 사루야마와 공유하고 싶었다는 것 아닌가."


구리코의 악의는 갈 길을 잃는다. 


<스위트 칠리소스>

"세계관이 좁고, 시각이 좁으며, 게다가 그런 사실조차 알아채지 못하고 더욱더 좁은 곳으로 숨어 들어가려고만 하는 고집세고, 편협하고, 자신만이 올바르다고 믿는 사람. 미도리의 그런 면을 하나하나 일러준 사람이 엄마도 동창도 아닌, 겨우 4년 전에 만난 남자라니. 아쓰시는 남편이지만 4년 전에 만난 누구라는 정도밖에 생각되지 않을 때가 있다."


사소한 논쟁을 끊임없이 계속하는 미도리 부부. 

미도리는 "언젠가부터 남편과 굉장히 평화적으로 서로를 미워하고 있"다는 것을 깨닫는다. 


추레한 몰골로 도서관을 찾는 낯선 여인에게 알 수 없는 적개심을 갖던 미도리는,

그녀 덕분에 아버지가 돌아가신 후 이상하리만치 음식에 집착하게 되었던 어머니를 어느 순간 이해하게 된다. 

평상시와 다름없이 미워했을 것이고, 또 다시 좋아하려고 했지만, 갑작스러운 남편의 죽음을 맞이해야 했던,

그래서 남편의 죽음을 자신의 탓으로 생각했던 어머니를. 


<잘 자, 나쁜 꿈 꾸지 말고>

개중 가장 밝은 단편이었다. 

사오리의 헤어진 남자친구가 벌이는 끔찍한 행동들은 경멸스럽기 그지없음에도 불구하고.

그의 악의에 항거하고자 깜찍하게도 체력 훈련에 돌입하는 사오리.

그러나 그녀의 입에서 나온 건 뜻밖의 사과. 

사오리가 히키코모리가 되려는 동생을 밖으로 나오게 하는 것도 소설의 한 축.


<아름다운 딸>

"모델이 될 정도로 아름답지는 않"고, "스포츠 선수한테 시집갈 정도로 아름답지는 않"지만,

"사람들보다 조금 더 행복해질 만큼은 될 거라고" 생각해 온 가요코.

그런 알량한 우월감은 그녀를 타인지향적 사람으로 성장하게 한 듯. 

엄마가 된 이후에도 예쁘다는 칭찬 한마디에 눈물이 날 정도. 

이 와중에 딸은 그녀의 기대와 달리 아름답지 않다. 

그녀는 딸이 추하다고 생각하는 동시에, 딸이 추하다는 생각을 하는 자기 자신에게 놀란다.


<하늘을 도는 관람차>

불륜이 발각된 뒤로, 아내와 불륜녀 모두에게 이중으로 저주받고 있다는 생각에 시달리는 시게하루. 

악의는 돌고 돈다.

그의 일상은 불쌍하리만치 위태롭지만, 누가 피해자이고 누가 가해자겠나.

실상 쉽지만은 않은 그 구분. 


<맑은 날 개를 태우고>

성격좋은 아주머니들이 호탕하게 주고 받는, 악의 없는 중상모략.

타인에게 상처주고 있다는 사실 자체를 모르는 사람들.

선량한 사람으로 알려진 노리유키는 헤어진 여자친구의 개를 죽일 계획을 세우는데..


<우리의 도망>

리사의 끝없는 악의와 분노가 싫어 도망치듯 그녀를 피해온 '나'.

어느 날 깨닫는다.

어쩌면 그녀는 그녀 스스로의 악의가 두려웠는지도 모른다는 것을.


여성혐오는 물론 페미니즘적 시각도 엿볼 수 있어 매우 흥미로웠다.

저자에게 페미니스트적 관점이 존재하는지는 알 수 없으나, 명확한 현실진단을 하는 것만은 감히 확신한다. 

2006년의 일본은 어떤 사회였을까 문득 궁금해지기도 하고. 

내 작은 바람으로는, 가쿠타 미쓰요는 소설만 썼으면 한다. 


역시 나는 세상에 널린 사소하고도 섬세한 악의에 더 소름이 끼친다.

타인의 입이 두려운 만큼, 내 입을 두려워할지니. 


<죽이러 갑니다 - 가쿠타 미쓰요 소설(가쿠다 미쓰요), 송현수 옮김/ media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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