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의 기초 : 한 남자 사랑의 기초 (개정판)
알랭 드 보통 지음, 우달임 옮김 / 문학동네 / 2013년 9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내용은 간단하다. 

아내 엘로이즈와 여섯 살, 네 살의 두 아이를 키우고 있는 남자, 벤. 

첫 데이트부터 엘로이즈와 사랑에 빠졌다고 확신했건만, 그의 결혼 생활에 권태기가 찾아온다.

"사랑이란 그에 응해줄 구체적인 실체, 어떤 확실한 존재가 없을 때 훨씬 경험하기 쉬운 어떤 감정인 듯 보였다."


엘로이즈가 급작스러운 질병으로 위독할 땐 "사랑의 존재를 추호도 의심하지 않았"고, 

"엘로이즈가 곁에 없다면 결코 다시는 삶의 의미나 기쁨을 알 수 없을 것만 같았"지만, 

뭐, 위급할 때 느낀 감정을 쉽게 잊어버리는 것이 어디 벤 뿐이겠나. 


성적 에로티시즘은 희미해지고, 그 자리에는 친밀감이 채워진다.

소설에 인용되길, 프로이트는 많은 환자들을 괴롭히는 딜레마를 다음과 같이 요약했다고. 

"그들은 사랑하면 정욕이 사라졌고, 정욕을 느끼면 사랑할 수 없었다."


소설은 자본주의처럼 "오늘날 우리가 실천하고 있는 낭만적 사랑도 부르주아의 발명품"이라는 흥미로운 관점을 제시한다.

"여기엔 자유와 제한의 균형이라는 부르주아의 철학이 신기할 정도로 뚜렷하게 반영되어 있기 때문이다."

"부르주아는 낭만적 사랑을 결코 믿지 않을 만큼 먹고사는 문제에 짓눌려 있지도 않았지만, 성적으로나 정서적으로 전혀 거리낌 없이 복잡하게 얽혀들 만큼 자유롭지도 않았다."


자본주의의 스트레스를 극복하기 위해 우리가 낭만적 사랑에 매달리며, 만일 경제 시스템을 바꾼다면 지금처럼 필사적으로 짝을 찾아 헤매거나 서로에게 의지하지 않을 거란 말엔 고개를 갸웃거릴 수밖에 없지만, 흥미롭다. 


결국, 이 낭만적 사랑의 위기 속에서도 벤이 사랑과 삶의 답을 찾아가는 내용으로 끝맺어진다. 

"지극히 평범한 삶이라는 엄청나게 어려운 과제를 그럭저럭 계속해나가는 단순한 일. 이것이 진짜 용기이며 영웅주의다."


또한, 책이 주목하는 의미있는 부분은, 어른의 사랑은 아이 때의 관점에서 벗어나야 완성될 수 있다는 것이다. 

자신의 연약함과 불안을 막아줄 누군가를 기대하지 말고, 자신이 누군가를 위해 그렇게 되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고. 


이하 눈에 들어왔던 대목들이다. 

"문제의 핵심은, 우리가 결혼해서 잘 사는 법을 굳이 배우지 않아도 터득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는 점이다."


교육과 훈련에 열성적인 부르주아가, "유독 사랑의 영역에서만은 감정의 순수성이 손상될까 염려한 나머지 지나치게 이성적이거나 체계적이기를 거부하기로 결정한 것은 몹시 유감스러운 일이다."

사회적으로는 많은 인위적 절차들이 있는데 반해, "현대의 연인들은 자신들의 삶에 의례적 절차와 외부의 조력을 받아들이는 것을 아직도 주저하고 있다."

'낭만적 사랑'이라는 신화에 매달려, 다른 합리적인 절차나 이성적 조력을 받으려고 하지 않는 현상들을 짚어내기도 한다.

단순하게 받아들이자면, 부부간의 협약이나, 부부 상담 클리닉 등이 활성화되어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으로 보이기도.  


깔깔 웃게 한 대목도 많다. 


"결혼을 하고 나면 '대수롭지 않은' 디테일이란 건 더이상 존재하지 않는다는 점이다"라고 하며, 

"이와 유사한 폭압적 완벽주의의 예를 예술에서 찾아볼 수 있다." 이 부분엔 소리내어 깔깔.


"예술가는 캔버스의 모든 모서리를, 교향곡의 음표 전체를 단속하고자 한다. 마찬가지로 결혼생활하는 부부들은 화장실 타일을 선택하는 것에서부터 남에게 사과할 때 구사해야 할 억양에 이르기까지, 삶의 전 영역에 걸쳐서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에 대해서 배우자에게 줄기차게 의견을 제시한다."


"결혼은 또한 우리를 교육자로 둔갑시킨다. 우리는 수많은 방식으로 사랑하는 사람을 선과 진리의 길로 개심시키려 든다."


<사랑의 기초 (한 남자)- 알랭 드 보통 장편소설, 우달임 옮김/ (주)문학동네 (톨)>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