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식 세탁소 - 정미경 소설집
정미경 지음 / 창비 / 2013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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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단편부터 다소 차갑고, 기만적인 인물이 화자로 등장한다. 

난 이런 소설을 좋아한다. 화자가 연민이 많고, 순하고, 착한 것보다 더.

화자를 곧 저자로 보는 우는 범하지 않지만, 

그 누구든 자신이 이 험한 세상에 유일하게 희디 흰 백색이라고 주장하는 걸 보면 좀 진절머리가 난다. 

세상에 한점 부끄러움 없이 결백하다는 자가 있다면, 그 생각부터 이미 결백이 아니라고 생각하는 편. 이미 존재부터. 

하지만 몇 편의 화자가 내리 정 떨어지는 캐릭터다보니, 조금은 지쳐갔다. 결국 나도 착하고 단순한 캐릭터를 좋아하게 될까. 

지쳐갈 때쯤 등장한 다섯번째 단편 <번지점프를 하다>는 그 특유의 냉소적인 분위기가 있음에도 반가울 정도. 


지치는 감정은 불편함이었고, 나의 언어로는 지쳤다고 표현할 수밖에 없으나, 비하가 아닌 존경이고 애정이다. 

불편함을 말해 스스로를 돌아보게 하는 것으로서 소설의 역할을 택한 듯하다. 

나 또한 그저 그렇고 그런 인간이라는 걸 인정하라고. 

깨닫는 순간, 조금은 더 인간다워질 수 있다고. 

그렇게 우리는 인간이길 위해 노력해야 한다고. 


<번지점프를 하다>의 장면이 인상깊다.

하은이 전시작품인 다이아몬드로 무장한 두개골을 보며 생각하는 장면, 가장 짜릿했다. 

"너, 화내고 좌절하고 눈물 흘리는 내가 부럽지?"

허무와 욕망을 말하는 다이아몬드와 두개골의 조합에게 던지는 이 한마디, (어느 새 이입해버린) '우리'의 승리다.

니가 무엇을 말하든, 나는 살아 있다고. 절망에 몸부림칠지언정, 나는 살아 있다고. 


어느 한 편 빼놓지 않고, 나를 돌아보게 하는 소설들이었다. 이 돌아봄은 불편하지만, 나를 깨워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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