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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의 ㅣ 현대문학 가가형사 시리즈
히가시노 게이고 지음, 양윤옥 옮김 / 현대문학 / 2008년 7월
평점 :
구판절판
처음 읽는 히가시노 게이고.
다작하는 작가다보니 더러 실망스러운 작품도 있는 듯한테, <악의>를 고른 건 탁월한 선택이었다.
이래서들 히가시노 게이고, 히가시노 게이고 하는 구나!
잘 나가는 작가 히다카 구니히코가 살해당한다.
그를 발견한 건 그의 아내와 역시 작가인 친구 노노구치 오사무.
소설은 그 사건을 맡게 된 가가 형사의 사건 기록과 노노구치의 수기가 번갈아 기록되는 형식을 취한다.
300페이지가 넘는 소설인데, 채 100페이지까지 가기도 전에 범인은 밝혀진다.
남은 장들은 어떻게 채워질 것인가 생각하기 무섭게, 점점 깊이 파고 들어가는 이야기는 넋을 놓게 만든다.
히다카의 소설 중엔 이런 대목이 있다.
"그가 특히 끔찍하다고 생각한 것은 폭력 그 자체가 아니라 자신을 미워하는 자들이 발하는 음陰의 에너지였다. 그는 지금껏 이 세상에 그런 악의가 존재한다는 건 상상도 해보지 못했던 것이다."
학교 폭력에 고통받는 소설 속 주인공이 하는 말.
그가 결국 그것에서 벗어날 수 없었던 것을 생각하면, 가슴이 아프다.
자신이 악랄한 학교폭력의 희생자가 되는 것을 방관하고 심지어 돕기까지 한 자를 용서했으나,
끝내 가해자가 품은 악의의 피해자가 되다니.
사람의 악의는, 다양하게 범람한다.
타인을 해하려는 계략을 짜거나, 그런 행위에 동참한 적은 한 번도 없으나,
찰나일지라도 내가 누군가를 미워할 때, 내 안의 그 복잡한 감정과 악의에 놀라기도 한다.
가가 형사는 말한다.
"하지만 그러한 은혜가 거꾸로 미움을 낳는다는 것을 나는 압니다. 당신이 그에 대해 열등감을 품지 않았을 리가 없는 것입니다."
추리가 다가 아니구나. 책, 생각보다 더 세다.
또 한 번 크게 놀란 부분은, 가가 형사의 추리가 난항을 겪은 부분이다.
가가 형사는 말한다.
"실제 히다카 씨와 내 마음 속에 뿌리내린 히다카 씨는 너무나 다르다, 어째서 이런 모순이 생겼는가. 나는 꽤 오랫동안 그 점을 생각했습니다."
사람의 선입견이 얼마나 무서운지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책을 보는 독자들 역시, 그가 만들어낸 이미지에 속아 한동안 고개를 갸우뚱 해야 했으리라.
"적극적으로 남을 비난하는 인간이란 주로 남에게 불쾌감을 주는 것을 통해 희열을 얻으려는 인종이고, 어디 그럴 만한 기회가 없는지, 늘 눈을 번득이고 있는 것이다. 따라서 상대는 누가 됐건 상관없는 것이다."
나는 그런 인간이 아니라고 생각하면서도,
거 참 알량하다고 생각한다.
그 누구도 자신이 그런 사람이라고 인정하지 않을 것이기에.
내 안의 악의를 잠재우고 싶다. 영원토록.
아, 이 밤, 소름이 가라앉질 않는다.
<악의 - 히가시노 게이고 장편소설, 양윤옥 옮김/ 현대문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