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알드 달 지음, 정영목 옮김 / 강 / 2005년 5월
평점 :
구판절판


철학자 야스퍼스도 "인간은 알 수 없는 심연"이라 했단다. 

그런 인간을, 내가 알 턱이 있나.

야스퍼스의 말까지 빌리지 않아도, 철학까지 안해도, 우리 모두가 안다. 거참, 사람이란 알 수 없어라. 

잘 안다고 생각했던 이에게 놀라기도 하고, 나의 반복되는 고통이 저 사람 때문인 것 같은데, 나를 괴롭혀서 저사람이라고 득될 것은 없는 것 같은데, 오히려 함께 힘들 뿐인데, 대체 저이는 왜 그러는 것일까, 혹시 괴롭히는 게 목적인걸까, 아냐 그럴리는 없어, 악한 사람은 아냐, 그렇다면, 그렇다면 정말 뭘까 하며.. 

뭐 이렇게 복잡한 게 인간사.

인간이란 원래 알 수 없는 와중에, 유독 종잡을 수 없는 사람은 내게 재기발랄함이 아닌 섬뜩함이고, 공포다.

가까이 하고 싶지 않아. 

하지만 따지고보면.. 누가 누굴 탓하랴. 

로알드 달의 단편집을 보며, 처음엔 분명 입꼬리를 올리며 즐겁게 보고 있었는데, 어느 순간 거기까지 생각이 미쳤다.

인간이란. 

오 헨리 작품에서 느낄 수 있는 반전과 명랑함이 가득하면서도 (짧은 내 소견이지만) 깊이는 그 이상이다. 


1. 목사의 기쁨 - 순진한 시골 사람들을 속여 헐값에 골동품을 사고, 이를 되팔아 폭리를 취하는 골동품 매매상이 나온다. 

또 한 건의, 일생일대의 큰 건이 성공하려는 찰나. 제 꾀에 당하고 만다. 조각나는 골동품, 부서지는 그의 꿈이여!

: 자네 이제 그거 사야 돼 ㅋㅋ 


2. 손님 - 결벽에 가까운 위생관념을 가진, 지성과 교양 넘치는, 그러나 천박한 바람둥이 남자. 우연한 기회에 훌륭한 성에 초대받는다. 그날 밤을 함께 한 그녀는 누구인가. 

:미안해요, 쌤통이라고 생각했어요.. 그럼 안되는 거였잖아요. 

쌤통이라 생각하는 동시에, 내 안의 사악함도 확인하고. 영화 <데쓰 프루프>를 볼 때의 당혹감.


3. 맛 - 포도주의 맛을 분별하라! 상금은 집주인의 딸. 유치한 잔재주를 부리던 남자, 하녀에게 당하다. 


4. 항해거리 - 항해거리를 건 내기. 내기에서 이기기 위해 바다에 뛰어드는 남자. 나름대로 안전을 도모하기 위해, 자신을 구해줄 여성을 확인했으나.. 그녀는 관심없다.


5. 빅스비 부인과 대령의 외투 - 내연의 관계의 남자(대령)에게서 받은 마지막 선물, 최고급 밍크 외투. 남편을 속여 고가의 그 물건을 집으로 가져오기 위해 간교한 속임수를 창조하는 부인. 그러나 제 꾀에 제가 걸리고 말고. 그 선물의 주인은.. 

: 유유상종.


6. 남쪽 남자 - (고작) 라이터의 성능을 놓고 내기가 벌어진다. 왼쪽 손가락을 건 젊은 남자 VS 고급 차를 건 늙은 남자. (다행히) 내기는 중단된다. 아아, 그녀의 손가락이란.

: 거참 병일세. 인류의 평생동안 가져갈. 


7. 정복왕 에드워드 - 음악을 아는 고양이를 발견한 여자는, 고양이가 음악가 '리스트'의 환생임을 믿어 의심치 않는다. 그러나 남편은 이를 시답잖게 여기고 저녁식사를 기다릴 뿐. 리스트(?)의 운명은. 


8. 하늘로 가는 길 - 강박적으로 시간을 딱 맞춰야만 직성이 풀리는 포스터 부인. 그 한가지 빼고는 아내로서 더없이 완벽한 그녀를, 골리듯 평생 애태워온 남편. 그녀의 여행을 또 다시 방해하던 그 순간. 그녀의 선택은. 

: 슬금슬금 다가오던 인간이란 무엇인가, 하는 나의 질문은 이때 최고조에 올랐다. 로알드 달의 이야기는 단지 우스개소리로 끝나지 않는다.  


9. 피부 - 등에 문신으로 아내의 그림을 새긴 남자. 문신을 새겼던 무명의 화가는 시간이 흘러 유명해진다. 가난한 노인이 된 문신을 가진 남자는, 등에 새겨진 문신으로 한탕 벌 생각을 하고, 사람들은 이에 관심을 가진다. 등에 새겨진 그림은 어떻게 사고 팔 것인가. 

: ㅠㅠ 


10. 도살장으로 끌고 가는 어린 양 - 남편의 결정이 무엇이었는지는 명확하게 나오지 않지만, 임신 6개월의 아내를 충분히도 자극했을 것임은 의심없이 짐작할 수 있다. 아내의 복수. 

: 통쾌함을 느끼는 자, 모두 유죄. ㅠㅠ


책의 말미에 수록된 역자 정영목의 글 역시, 책에 품위를 더한다. 심리 에너지의 전문가라며 달을 칭송하는 그의 글은 압권이다.

그의 명문에 백분 동의하며, 역자 정영목 역시, 글을 쓰지 않고는 버틸 수 없었으리라, 예상해 본다. 훌륭하도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