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형의 집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248
헨릭 입센 지음, 안미란 옮김 / 민음사 / 2010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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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초의 페미니즘 희곡으로 평가받는 작품, <인형의 집>.

주인공은 다람쥐와 종달새로 불리는 여자, 노라다. 


남편: 저런, 저런. 그렇다고 노래하는 종달새가 날개를 축 늘어뜨려서야 안 되지, 응? 저기 다람쥐가 기분이 상했네? 

        (지갑을 연다.) 노라, 여기 뭐가 있을 것 같아?

노라: (급히 몸을 돌린다.) 돈이요!


작정하고 곡해를 해볼까. 

대놓고 돈밝혀도 종달새에 다람쥐라니, 역시 여자는 이쁘면 만사형통이랄까.


그녀의 돈, 돈, 돈은 계속되고, 종달새 타령도 계속된다. 

"낭비꾼 새는 귀엽지. 하지만 돈이 아주 많이 들어. 이런 새를 키우는 게 남자에게 얼마나 돈이 드는 일인지."

농담처럼 말했지만, 그런 거다. 당시의 시대상. 여자의 역할. 남자의 역할. 늘 말하지만, 이런 환경에서 가련한 건 여자만이 아니다.

그런데, 과연 그 때 뿐인가.

1828년생 헨리크 입센은 종달종달종달새를 이야기하고, 1942년생 에리카 종 역시 "남편 품 안에서 어리광이나 부리는 재주 많은 어린애"라는 표현을 썼다. 2017년생은 이런 남녀상을 상상도 할 수 없겠지? (...) 없을까? 


한 때는 적나라한 사실주의 표현이었을지도 모를 대사들이, 이제는 해도 너무 낯이 간지러워 완전히 몰입하는 방식의 독서는 되지 않는다.

집중은 하되 몇걸음 떨어져 방관하듯 보게 됐다. 이 또한 의미있었다. 


"노라, 노라. 당신은 여자라 어쩔 수가 없어." 

"당신은 정말 딱한 아이야. 당신 아버지가 그랬던 것처럼 말이지. (...중략...) 그래, 당신은 있는 그대로 받아들일 수밖에 없어. 피가 그러니까. 그래, 그래, 노라, 이건 유전이야." 

19세기가 이렇게 오욕의 시대였다니. 놀라움의 연속이었다. 


돈타령하는 종달새가 되어야 했던 노라의 비밀이 밝혀진다. 

그녀는 남편이 병에 걸린 동안 그를 돌보기 위해 큰 돈을 빌렸고, 빌리는 과정에 아버지의 명의를 불법적으로 도용했다. 

힘들게 돈을 갚고 있지만, 불법을 저지른 빌미로 채권자에게 모종의 협박과 회유를 받는 중이다. 

노라는 돈을 갚기 위해 절약하고, 글을 써서 돈을 벌기도 했고, 그로 인해 즐거움을 느끼기도 했다. 

"그렇게 일을 하고 돈을 버는 건 참 즐거웠지. 내가 꼭 남자가 된 것 같았어."

하지만 그때도 딱히 깨달음을 얻지는 못했다. 


모든 일이 탄로나고 급작스럽게 해결된다. 그때, 남편의 태도를 보고 불현듯 노라는 깨달음을 얻는다. 

그녀의 선택은 극적이다. 남편과 아이를 두고, 독립 선언을 선언한다. 

더이상 아버지의 인형으로, 남편의 인형으로 살지 않을 것을 공표한다. 

"나는 당신에게 재주를 부리는 것으로 먹고 살았던 거예요. 하지만 당신이 그렇게 원했던 거죠. 당신과 아버지는 내게 큰 잘못을 했어요. 당신들은 내가 아무것도 되지 못한데 대해 책임이 있어요."

"아니오. 행복한 적은 없었어요. 행복한 줄 알았죠. 하지만 한 번도 행복한 적은 없었어요."

아내와 어머니로서의 책임을 들먹이며 그녀를 붙드는 남편에게, 

"그 말은 더이상 믿지 않아요. 나는 내가 우선적으로 당신과 마찬가지로 인간이라고 믿어요. 최소한, 그렇게 되려고 노력할 거예요."

"나는 모든 일에 대해서 스스로 생각하고 설명을 찾아야 해요."


노라의 친구 린데 부인은 조금 달라 보인다. 

어머니와 동생들을 부양한 그녀. 그 방법이 결혼이라는 것은 참 아이러니하지만, 어쨌든 종달새로 살아온 것은 아니다. 

그러나. 평범한 인간은 시대를 완전히 거부하기란 힘들다. 

남편이 없어지자 삶의 의미를 잃은 여자. 당신을 위해 일할 수 있게 해달라는, 독특한 프로포즈. 

"나는 살기 위해서는 일을 해야 해요. 내 평생, 내가 기억할 수 있는 동안은 언제나 일을 했지요. 그리고 그건 나에게 가장 큰, 유일한 기쁨이었어요. 하지만 이제 나는 혼자만 이 세상에 남았고, 너무나 공허하고 외로워요. 자기 자신을 위해서 일하는 건, 그건 전혀 기쁨을 주지 않지요. 크로그스타드 씨, 내가 무언가, 누군가를 위해 일할 수 있도록 해 줘요."


아무리 극이라지만 너무 극적이어서 찡한 감동을 받긴 힘들었다.

단 하루만에 종달새에서 페미니스트로 돌변해 제 삶을 찾겠다는 여인,

어쩌면 현실이 이렇게 극적일 수도 있다는 걸 알면서도, 극이 이렇게 극적이면 한걸음 물러서게 된다. 

감정을 다 써가며 몰입하기보다는, 명확한 메시지를 건져올리는 독서가 되었다.


최초의 페미니즘 희곡이라면, 충분히 의미있지 않은가. 

그리고 오히려 한걸음 떨어져 볼 수 있기에, 지금의 첨예한 페미니즘이 불편한 사람이 있다면 이 책을 권하고 싶다.

이때보다 나아진 상황이니 지금의 페미니즘은 필요없다고 곡해할 이가 설마 있을지도 모르겠으나,

여성해방, 나아가 인간해방을 이때부터 끊임없이 부르짖었기에 세상은 조금씩 나아졌다고 생각한다. 

멈추는 순간, 회귀할지도 모른다. 그 시대는 누구에게도 자유를 주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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