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우리는 불평등을 감수하는가? - 가진 것마저 빼앗기는 나에게 던지는 질문
지그문트 바우만 지음, 안규남 옮김 / 동녘 / 2013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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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전세계 최상위 부자 1%가 전세계 자산의 40% 소유, 상위 10%의 부자가 전세계 부의 85% 차지, 하위 50%는 전세계 부의 겨우 1% 차지. 

카타르의 1인당 평균 소득은 짐바브웨의 그것의 428배, 전세계 최고 부자 10명의 부는 세계 5위 경제대국인 프랑스의 경제 규모와 거의 같다 등등.

전세계에 넓게 퍼진 불평등을 수치로 말하자면 한도 끝도 없다. 지겹게 들어서 이제 감흥조차 없을 지경. 

2007년 미국의 금융 위기 이후, 그 현상은 심화되었다. 

"재앙의 채찍은 모든 사람에게 똑같이 가해진 것이 아니라 집요할 정도로 선택적이었던 것으로 드러났다."

부자는 더욱 부유하게, 빈자는 더욱 가난해지게 되었다. 

"오늘날 불평등은 자체의 논리와 추진력에 의해 계속 심화된다."

아이의 장래마저 사회적 환경에 의해 결정된다. 

자유시장 경제학의 기본 논리, 즉 개인의 이윤 추구가 동시에 공익을 위한 최선의 메커니즘을 제공한다는 주장은 거짓으로 밝혀졌다.

낙수 효과는 없었다.

"부자들이 더 부유해짐으로써 사회에 이바지한다는 통설은 의도적인 거짓말과 고의적인 도덕적 맹목의 조합일 뿐." 

사회적 불평등의 냉혹한 현실은, 이 경제 모델은 결국 자멸하게 될 것이라는 점이다. 

엘리트주의가 효율적이고, 배제는 사회의 건강을 위해 필요하고, 부에 대한 욕망은 삶의 향상에 이바지하며, 절망은 불가피하다는 거짓 믿음들.

이는 사회적 불평등에 대한 굴복하는 우리의 습관이고, 집단적 빈곤이 영속화될 것을 의미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이 상황을 깰 수 있음을 저자는 주장한다.

"좋든 싫든 간에, 우리가 호모 엘리겐스homo eligens의 종 즉 선택하는 동물에 속한다는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우리가 살고 있는 "구조화된" 사회 환경이 선택조차 조작하고 있음을 놓치지 않지만, "말하자면 우리는 자유로울 운명을 타고 났다."

(직전에 읽은 <하찮은 인간, 호모 라피엔스>와 대조적이다.)


현실은 "만인의 만인에 대한 투쟁"이 되었으며, 우리는 이 세상에서 살아가야 하나, 대안이 없는 것은 아니라고 주장한다.

우리가 주시해야 할 네 가지를 제시한다. 

하나. 경제성장이 우리의 문제를 해결할 유일한 길이 아니다. 

"'경제성장'은 소수에게는 부의 증가를 의미하지만, 수많은 대중에게는 사회적 지위와 자존감의 급격한 추락을 의미한다."

'경제성장'은 끔찍한 사회문제에 대한 보편적 해결책이 아니라, 오히려 그 문제들을 지속·심화시키는 원인이다. 

둘. 영구적으로 늘어나는 소비는 행복을 증진시키지 않는다. 

소비자 시장은 최근 나르시시즘의 영역을 개척했다. 상품의 획득과 소유와 향유에 연결되어 있는 행복을 제안하고 암시한다.

메시지는 간단하다. "행복에 이르는 길은 쇼핑이다."

"오늘날 우리는 모두 소비자다. 그냥 소비자가 아니라, 다른 무엇보다도 소비자이며, 권리상, 의무상 소비자다."

그 메시지를 따를 수 있는 "소비자"들은 선천적이거나 노력해서 얻은 우월감에 대한 적절한 보상이라 생각하고, 그렇지 못한 소비자는 굴욕감을 느낀다. 

약자들은 스스로에게 사회적 열등을 선고하고, 불평등은 지속된다.

셋. 불평등은 자연적이지 않다. 

오늘날 불평등은 마치 노예제가 그때에는 자연스러웠던 것처럼 받아들여지고 있다. 사람들은 불평등 그 자체의 부정의함에 주목하지 않고, 조금 더 열악해지는 상황만을 개선시키려고 한다. 이는 결국 익숙한 질서에 대한 옹호가 된다. 사회적 불평등이 정의롭지 못함을 깨달아야 한다. 

넷. 경쟁이 사회 정의에 필요충분조건인 것은 아니다. 소비자 사회는 모든 관계를 고객-상품, 사용자-유용성 패턴으로 만들었다. 인간적 유대는 취약해지고, 정신적 불안과 불행이 초래된다. 세계는 신뢰와 연대, 호의적 협력, 상호 의존과 충성, 상호부조, 사심 없는 협력, 우정 등의 가치에 대해 재고해봐야 한다. 


저자는 상황이 절망적이라는 것을 인정해야 하고, 이로서 현실의 변화 가능성을 모색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세계에 대한 책임을 자신에게 돌리는 것은 두말할 나위 없이 비합리적인 행위이다. 하지만 결정에 대한 책임과 그 결과에 대한 책임을 모두 감수하면서까지 세계에 대한 책임을 받아들이기로 결정하는 것이야말로 세계의 논리가 초래하는 맹목으로부터, 타자와 자신을 죽음으로 몰아넣는 결과로부터 세계의 논리를 구원할 마지막 기회다." 


그 어떤 것보다, 불평등은 자연스러운 것이 아니라는 것에 방점을 찍고 싶다. 

모든 것을 새로 시작한대도 인간은 또 불평등을 만들겠지만, 아이의 탄생부터 죽음까지 불평등으로 사방팔방 막혀 있는 것은 결코 정의롭지 못하다는 것.

답은 복지다, 라는 말로는 부족하게 느껴진다. 복지는 소극적으로 느껴진다. 약자들의 연대라, 어떤 방법이 있을까. 협동 조합이 생각나고, 멍청한 소비자가 되지 않기 위한 발악은 계속해야 겠다는 다짐 한 번 더. 또 뭐가 있을까.

마지막으로, 작가의 경고를 옮겨본다. 

"위기가 도래했을 때, 경고를 들은 적이 없다고 말하지 마시라. 필자나 독자, 그리고 우리 모두에게 최선은 아직 우리에게 힘을 합쳐 위기를 막을 능력이 남아 있을 때 위기가 구체화되지 못하게 막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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