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학교 : 나이 드는 법 인생학교 How to 시리즈
앤 카르프 지음, 이은경 옮김 / 프런티어 / 2016년 8월
평점 :
절판


나이 듦에 대해 생각해본 적 있다면, 읽어볼 만하다. 

언제나 그렇듯, 책이 답을 모셔다 주는 경우는 없으나 영감은 준다고 생각한다. 


나이 드는 법에 대한 특별한 비결이나 처방은 제공하지 않는다고 여는 글에서 밝히고 있다. 

"반대로 비교적 나이 든 혹은 젊은 사람이 어떻게 보여야 하고, 어떻게 말해야 하고, 어떻게 살아야 하는 가라는 규범적인 개념에서 스스로를 해방시켜야 한다는 신념에서 시작한다."

모든 것으로부터의 해방. 시대의 화두가 아닐지. 복지 역시 근간은 같은 것으로 본다.


나이 듦에 대한 불편함을 조장시키는 현상은 전사회적으로 퍼져 있다.

노령 인구가 많아진 인구 분포도는 늘 부정적으로 언급된다. 심지어 잿빛 쓰나미라는 말까지. 

"(...) 증가하는 수명에 대한 모든 논쟁은 누가 누구에게 경제적으로 의존하는가와 관련해 수상쩍고 불필요한 불안을 조장한다." 

노령 인구의 사회적 기여는 경시되고, 사회적 '부담'으로서만 해석된다. 

노령은 외롭고, 연약하게 묘사된다. 

틀니와 보청기는 노인을 일반화하는데 사용되고, 이는 노인을 능력이 아니라 장애와 동일시하는 것이다.


"노인 세대는 진퇴양난에 빠졌다. 일찍 은퇴해서 연금을 받으면 젊은 세대의 피를 빠는 거머리 취급을 받는다. 은퇴 연령이 지나서도 계속 일을 하면 젊은 사람들의 일자리를 빼돌린다는 소리를 듣게 된다."


부정적으로 굳어진 인식은 '나이 듦'에 대한 공포를 조장한다. 

무려 20세에 '나이 듦'의 공포를 갖고, (극단적인 경우 8세 소녀마저!), 불안에 떠는 30대 여성은 광고주의 주요 타겟이 된다. 


인간은 과거보다 더 오래, 더 건강하게 살게 됐음에도 불구하고, 나이 듦을 걱정하는데 많은 시간을 소비하는 것이다. 

늙는 시기도, 죽는 시기도 늦어졌지만, 젊을 때부터 늙을 것을 걱정하느라 인생을 소비하니, 과연 이것이 수명 연장의 축복이라 할 수 있을지.


어떤 이들은 '예외론자'가 된다. 다른 사람들의 나이 듦을 수긍하면서도, 자기 자신은 나이 들지 않을 것이라 생각한다. 

그런 사람일수록 은퇴하거나 직업 정체성을 상실했을 때 받는 충격이 강력하다. 

"그들은 지속할 수 있는 자질을 기르는 데 실패했고, 비록 당시는 불평불만을 늘어놓았을지라도 일이 강요하는 억압 구조 없이는 어떻게 살아야 할지 모른다."


노령은 치료 대상으로 간주되고, 이는 나아가 죽음을 부자연스럽게 보도록 일조한다. 

영국에서 '자연사'라는 사망 원인은 불법이라고 한다.

"서구 국가에서는 죽음을 삶에서 불가피한 부분이라기보다는 의료 실패로 간주하는 시각이 점점 만연해진다."


이렇게 전방위적으로 부정적으로 묘사된 노령인구는 사회적으로 격리되는 경향이 있다. 

"우리가 노인들을 시야에서 치우고 싶어하는 이유는 그들이 우리 역시 늙고 죽는다는 사실을 상기시키는 역할을 하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그 연령 격리는 과연 바람직한 방향일까. 


꼭 노령 인구가 아니어도, 존재보다는 효용 가치로 사람이 평가되는 태도는 돌아볼 만하다. 

"존재가 평가 절하되고 행위가 과대평가되는 문화에서 노령이 경멸과 수치로 여겨지는 것은 놀랄 일이 아니다!"

노령 인구는 그들이 이룬 성과와 효용성을 주장해야 할까. 

그들이 행복해지는 것도, 그저 존재하는 것으로도, 전 연령대에게 희망이나 어떤 가능성이 될 수 있을지도 모른다. 

"내적으로 더 존재하고 외적으로 덜 실행하는" 것도, 사회적 기대로부터 해방되는 것도, 보다 더 자기 자신다운 모습으로 살아가는 것도, "존재에서 얻는 환희"가 될 수 있다.


저자는 "나이 듦"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이는 태도가 중요하다고 말한다. 

나이 들며 '축어 기억'은 감퇴하더라도 '요점 기억'은 증진되는 등의 장점 역시 있으나, 이를 차치하고라도, 나이 듦의 변화 자체를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야 한다고. 

"(...) 애도는 즐겁게 나이 들어가는 과정에 필수적인 요소다. 애도를 통해 삶의 어떤 측면에 작별을 고하고 새로운 측면을 반길 수 있기 때문이다."

"어쩔 수 없는 상실에 대한 슬픔과 비탄을 견뎌내는 힘은 나이를 불문하고 우리가 나이 드는 데 도움이 되는 필수적인 자원이다."

"나이를 포용한다는 것은 노령을 포용한다는 의미가 아니라 우리가 인생을 살아가면서 일어나는 변화의 과정을 수용한다는 의미다."

"일단 자신이 언젠가는 죽는다는 사실을 정말로 충분히 이해하기 시작하면 노령은 훨씬 덜 두려운 대상이 되기 때문이다. 당신이 언젠가는 죽는다는 말은, 다시 말해 당신은 아직 죽지 않았다는 의미이기 때문이다."


일찍이 키케로는 "오로지 바보들만이 자기 자신의 연약함을 나이 탓으로 돌린다고 믿었다"고 한다.

그는 <노년에 관하여>에서 "자기 안에 바람직하고 행복한 삶을 구축할 자원을 갖고 있지 않은 사람은 어떤 나이라도 힘겹게 느낀다." 고 말한다. 


그렇다. 연령이 문제가 아닌 것이다. 

"우리는 연장자들의 인간성을 회복하고, 나이 든 사람 역시 젊은이와 우리에게 존재한다고 가정하는 것과 똑같이 풍부한 내면 세계, 열정 및 복잡한 인간세계를 지님을 인정해야 한다."


또한 편견으로부터 빠져 나와야 한다. 

나이 든 사람이 젊은 사람에게 그 시절엔 어떠해야 한다고 말하는 것이나, 

젊은 사람이 나이 든 사람에게 '한창 때' 어땠는지 물어보는 것이나 별반 다를 바 없이 진부하다는 말은 인상적이다. 

사람의 한창 때란 다 다른데다가, 심지어 타인에게 당신의 "한창 때"가 지나갔을 것이라는 단정어린 언사는 매우 무례하다. 

현명한 누군가는 이렇게 대답했다고. "사실 오늘이 한창 때란다. 그리고 내일도 그럴 거야."


사람들이 말하는 "늙은 것 같은 기분"은 보통 우울함인 경우가 많으며, 혹은 고용주가 그들을 대하는 방식으로 언급하는 경우가 많다고 하니, 씁쓸할 따름이다. 


저자는 인종 격리가 시대에 역행하듯, 연령 차별주의와 연령별 격리에서 벗어나 모든 연령대가 융화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주장한다.  

세대 간의 연대는 필요하고, 실제로 행하고 있는 나라도 많다고. 

"모든 연령대의 사람을 잠재적인 친구로 보기 위해서는 근본적인 사고의 전환이 필요하다. 평생에 걸쳐 우정을 키움으로써 우리는 모든 연령대의 사람들로부터 배울 수 있고 영감을 얻을 수 있음을 이해하게 된다. 다양한 연령대의 사람들을 포용하는 것은 나이 드는 과정을 포용하는 또 다른 방법이다."

내가 꿈꾸는 사회지만, 나이를 곧 위계로 받아들이는 우리 사회에선 요원한 일 같아 안타까운 마음이 든다.


"바람직하게 나이 드는 사람은 가장 가볍게 여행하는 사람, 자기 삶의 한 단계에서 고수했던 규범적인 생각이 다른 단계에 적당하지 않음을 알았을 때 과감히 버릴 수 있는 사람이다. 정신의 유연함이 필요하다."


연상되는 책으로 노베르트 엘리아스의 <죽어가는 자의 고독>, 앤 이니스 대그의 <동물에게 배우는 노년의 삶>이 있다.

전자는 노화와 죽음이 사회적으로 어떻게 다뤄지고 있는지, 나아가 어떻게 다뤄야 하는지 풀어나간다는 점에서, 후자는 노화의 미덕을 말한다는 점에서.

엄연히 주제는 다르지만, 사회적 약자들을 더이상 약자가 아닐 수 있게 만들어야 함을 환기시킨다는 점에서, 천정환의 <자살론>도 떠올랐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