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베카
대프니 듀 모리에 지음, 이상원 옮김 / 현대문학 / 2013년 3월
평점 :
절판


1938년에 출간된 소설.

1907년생 대프니 듀 모리에, 그녀의 머릿 속엔 무엇이 있었을지 궁금해진다. 


일찍이 부모님이 돌아가시고 가난하고 어린 '나'는, 한 부인의 '동반자'라는 이름으로 시종에 가까운 노릇을 하며 생활한다.

어느 날 우연히 맨덜리라는 대저택의 주인 맥심을 만나 사랑하게 되고, 그와 결혼하고, 맨덜리로 간다.

아름다운 맨덜리를 사랑하기도 전에, 맨덜리의 모든 것은 맥심의 죽은 전 부인 레베카에게 장악되어 있음을 깨닫게 된다.

'나'에게 호의적인 프랭크조차 "제 평생 본 중에 가장 아름다운 분"이었다고 일컫는 레베카. 

'나'는 죽은 레베카에게 휘둘리기 시작한다. 꿈조차 한번도 보지도 못한 그녀에게 지배당한다. 

사람도, 사물도, 모든 것은 '나'에게 레베카를 상기시킨다.

레베카는 어떤 여인이었을까. '나'는 이 상황을, 누군가의 대타와 같은 자리를 어떻게 헤쳐나갈 것인가. 

받아들일 것인가, 개척할 것인가. 

어느 날 레베카의 (또 다른) 시신이 발견되고, 그녀의 죽음에 얽힌 진실이 밝혀진다. 


맥심을 만나 결혼하는 장면까진 평범한 로맨스 소설이었다.  가난하고 어린 소녀, 부유하고 나이든 남자를 만나 결혼.  

그런데 시종일관 따라 다니는 섬뜩한 기분은 뭘까.

책날개를 참고하면 대프니 듀 모리에는 '서스펜스의 여왕'이라 불린단다. 그 말 완전 실감. 


오로지 '나'의 관점에서 씌어져 있음에도, 책 전체를 장악하고 있는 것은 이미 죽어 존재하지 않는 여인, 레베카다. 

결국 이 게임의 승자는 누구일까.

맥심은 레베카가 모든 것을 다 내다보았고, 조종했으며, 그래서 마지막까지 웃을 수 있었다고 생각한다. 결국 그녀의 승리라고. 

맥심 부부는 끝내 두려움에 떨며 산다. 

"두려움, 근거 없는 공포를 가라앉히려 안간힘을 쓰면서 느끼는 (이제는 다행히도 진정되었지만) 내밀한 불안감 같은 것이 어느 새 삶의 동반자가 되었다."


맥심의 입을 통해서라면 교활함의 상징으로 보이는 레베카, 그녀는 악인이었을까. 

"세상 누구도 날 막을 수는 없어"라고 당당히 말하던 그녀. 

모두들 사랑에 빠지지 않고는 못 배기게 만들던 매력 넘치는 그녀. 

그 누구도 사랑하지 않았던, 그 어떤 남자보다 뛰어나 그들을 경멸했던 레베카. 투쟁하듯 살았던 그녀. 

"남자들을 상대하는 게 그분께는 게임에 불과했어요." "우스운 일이라고요." "집에 돌아오면 침대 위에 앉아 남자들을 비웃곤 하셨습니다."

세상 모든 것을 두려워하지 않았던 당찬 레베카, 그녀가 무서워한 것은 오직 한가지다. 늙고 병들어 죽는다는 것. 

"죽을 때는 빨리 가고 싶어. 촛불이 꺼지듯 순간적으로"


그런 그녀에게, 세상은 아름다웠을까. 굳이 레베카의 이야기를 들어보지 않아도 보이는 것들.

맥심이 '나'에게 청혼할 때, 그는 토스트를 먹고 있다. 

"당신은 이제 반 호퍼 부인이 아니라 내 동반자가 되는 거요. 맡은 일은 거의 똑같다고 보면 되오. 서재의 새 책, 응접실의 꽃들, 저녁 식사 후의 카드놀이는 나 역시 좋아하니까. 내게 차를 따라줄 사람도 있으면 좋겠고. 한 가지 차이라면 난 택솔이 아니라 에노를 쓴다는 거요. 내가 좋아하는 치약이 떨어지지 않도록 신경 써줘요."

이 정도는 로맨틱하다고 쳐줘야 하는지도 모르겠다. 시종 아가씨의 급격한 신분 상승이니까. 

그러나 레베카가 그 삶을 받아들일 수 있었을까. 


'나'는 생각한다. 

"이건 내가 재스퍼를 대할 때와 똑같잖아." 

재스퍼는 개다.

"지금 나는 재스퍼처럼 굴고 있어. 그는 생각날 때마다 나를 어루만지고 그럼 난 기분이 좋아지지. 그는 내가 재스퍼를 좋아하듯 나를 좋아하는 거야."

"말 잘 듣는 개라면 만족하고 엎드려 더 이상 귀찮게 굴지 말아야 할 것이었다. 나는 또다시 재스퍼가 되었다."


이런 상황을, 레베카가 받아들일 수 있었을까. 


 레베카와 사랑했다고 믿는 협잡꾼 파벨의 말은 소름끼친다. 

"난 사회주의자 기질이 좀 있어. 어째서 남자들은 여자를 나눠 갖지 못하고 죽여버리는지 이해가 안 간단 말일세. 사실 그 두가지에는 차이도 없는데 말이야. 재미보는 거야 똑같지. 미녀는 자동차 타이어처럼 닳는 존재가 아니거든. 오히려 쓰면 쓸수록 더 좋아지지."


그런 삶 속에서, '나'는 남편과 함께 있기를 간절히 바라면서도, 남편이 집을 떠나면 무한한 자유를 느낀다. 

그의 기분이 괜찮은지, 지루한 것은 아닌지, 무슨 생각을 하는지 궁금해할 필요도 없는, 아무 것도 신경쓰지 않을 수 있는 자유.

"남편은 결국 아버지랑 그리 다를 것 없는 존재요. 세상에는 당신이 몰랐으면 싶은 종류의 일이 있소."


레베카의 장악력은 대단했다.

부정하고 타락한 여자인 동시에, 매혹적인,

그 열정으로 죽음을 파멸이자 불멸로 만든, 레베카.


1938년에 출간된 소설을 2017년에 읽는다는 것. 

시간은 그냥 흐르지 않았다. 

그 세월을 보내고도 당당히 위엄을 드러내는 소설은 또 다른 해석을 가능하게 한다. 

그때의 레베카는 악녀였을까. 시대를 잘못 타고난 불운아였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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