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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풍경 - 김형경 심리여행 에세이, 개정판
김형경 지음 / 사람풍경 / 2012년 3월
평점 :
저자가 이십대 중반부터 정신분석을 하고, 심리학을 탐독한 경험과 사십대에 접어들며 떠난 여행이 버무러져 쓰여진 책이다.
진솔한 자기 고백과 20여가지 '마음'에 대한 이야기, 그것들과 어우러진 여행기가 참 좋았다.
그녀의 말에 동의하든, 하지 않든, 가장 좋았던 점은, 내 내면을 들여다보게 한다는 것이다.
수 차례 울컥하면서도, 나를 들여다보는 것을 멈추지 않게 했다.
"우리 삶의 중요하면서도 어처구니없는 비밀 한 가지는 우리 대부분이 세 살까지 형성된 인성을 중심으로, 여섯 살까지 배운 관계 맺기 방식을 토대로 하여 살아간다는 점이다. 정신분석가들은 인간 정신이 생후 3년에 이르기까지 60퍼센트, 여섯 살까지 95퍼센트 형성된다고 한다. 그들은 대체로 다섯 살까지가 아주 중요하다고 주장한다."
평생 그 말을 부인하고 싶었다. 전문가가 말했든 말든, 나는 아니라고.
그 어린 나이에 거의 모든 것이 형성된다는 것은 곧 부모 '때문'이란 말로 들렸고, 세상의 모든 성격상의 문제들에 부모 탓을 하면, 대체 그 끝은 어디까지 갈텐가, 비아냥댔다.
그 부모의 부모, 그 부모의 부모의 부모. 왜, 선생과 가까이 지낸 이웃과 이웃의 부모와 그의 부모의 부모도 따져봐야겠네, 하며.
나의 거부감엔, 내 부모의 양육 방식에 대한 내밀한 저항과 동시에, 그들을 탓하는 것은 곧 그들 나름대로의 숭고했던 희생을 감히 내멋대로 판단하는 것이라는, 스스로에 대한 불필요할 정도의 경계였고 과한 통제였음을 인정하는 순간이 왔다.
내가 이해하는 바, 스스로의 문제와 원인을 돌아보는 것은 결코 누구를 탓하기 위함이 아니다.
"세상에는 완벽한 어머니도 없고 완벽한 자식도 존재하지 않기 때문에 모든 사람은 참자기가 생겨나서 독특하고 자율적인 자기에 통합되기 시작하는 생후 첫 3년의 상처를 안고 살아간다. 많은 사람들이 성인이 되어 겪는 어려움이 어린 시절의 사소했던 갈등의 잔재 때문이고 그 결과 창조성과 자율성, 성적 친밀감에서 경미한 문제를 일으킨다는 뜻이다." (본문에 실린 제임스 F.매스터슨의 <참자기> 재인용)
내면의 문제를 똑바로 마주해 스스로를 더 이해하고, 끌어안을 수 있고, 그리하여 타인도 끌어안을 수 있으며, 보다 나은 사람으로서, 보다 편안하게 인생의 흐름을 거칠 수 있게 하는 방법일 테다.
저자는 늘 "생이 안정되면..." 이라는 막연한 꿈을 꾸어왔다고 밝힌다. 그러나 그 욕망이, 자신의 불안감을 극명하게 드러내는 말이었다는 것을 여행 중 알아차렸다고.
"생이란 본디부터 그렇게 유동적이고 불안정하고 소란스럽고 깨어지기 쉬운 것이라는 것을. 본래 그런 삶을 유독 불안정하게 느꼈던 것은 내면의 불안감 때문이었으며, 그것 때문에 정상적인 삶조차 불안하게 받아들였다는 것을.
내면의 불안감을 인식하고 수용하자 오히려 불안정하다고 느껴온 삶의 조건들을 파도타기하듯 누릴 수 있을 것 같았다. 삶의 안정을 꿈꾸는 대신 어떻게 파도타기의 중심을 잘 잡을 것인가에 대해 생각해야 한다는 것도 알았다. 그것은, 적어도 내게는, 소중하고 의미있는 발견이었다."
자신과의 새로운 조우를 하고 나서 저자는 삶이 바뀌었다고 고백한다.
"인간과 세상을 보는 패러다임이 바뀌면서 삶의 태도에도 변화가 왔다. 유아적 환상에 가득 차 있던 내면세계에서 빠져 나와 비로소 객관적 실체로서의 외부 현실을 인식하게 된 것 같았다. 타인의 사랑을 구걸하는 대신 나 자신을 사랑하게 되었고, 타인을 돌보는 것으로 나의 가치를 삼는 이타주의 방어기제를 포기했다. 외부의 인정과 지지를 구하는 대신 내가 나 자신을 인정하고 격려하는 훈련을 했다."
저자의 생각에 빠짐없이 동의하든, 그렇지 않든, 그것이 중요히 여겨지지 않는 책이다.
스스로를 돌아보는 계기는 쉽게 주어지는 것이 아니므로,
그것만으로도 참 고마운 책이다.
<사람 풍경 - 김형경 심리/여행 에세이/ 아침바다>
"‘혼자 있기‘의 병리적 측면은 ‘세상으로부터 스스로를 격리시키는 극단적 방어의식, 또는 분노의 표현‘일 수 있다. (...) ‘혼자 있기‘의 건강한 측면은 독립된 인격체로서 분리와 개별화가 성공적으로 이루어진 상태를 말한다. 누구에게도 의존하지 않은 채 충만함 속에서 혼자 있을 수 있는 능력, 그것은 정신 건강의 중요한 척도라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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