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자책] 아무도 아닌
황정은 / 문학동네 / 2016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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속표지를 넘기면 처음 나오는 문구는 이렇다. 

"아무도 아닌, 을 사람들은 자꾸 아무것도 아닌, 으로 읽는다."


특정한 누군가가 아닌 모두의 이야기라고, 모두는 아닐지언정 다수의 이야기라고, 

아무것도 아닌 이야기가 아니라고, 지나쳐도 되는 사소함이 아닌, 사람이 살고 죽는 중요한 이야기라고, 

그렇게 각성을 바라는 메시지로 읽혔다. 

여기, 사람이 있다고.


여덟편의 단편이 실린 소설집이다.

한 편도 빠짐없이 슬펐다. 

얇은 책을 읽는데 꽤 오랜 시간이 걸렸고, 내 몸은 천근만근 무거워져갔다.


<上行>

'나'는 오제와 그의 어머니와 함께 '새 고모'로 불리는 아주머니가 있는 시골에 고추를 따러 간다. 

잘 여문 배추와 콩과 고추가 지천에 널려 있어도 수확할 사람이 없어 그대로 버려지고 있는 곳. 

새 고모와 그녀의 노모는, 곧 그 곳의 집과 밭에서 쫓겨날 위기이고, 

오제는 도시에 비하면 싼값의 시골 땅이지만, 그마저도 살 수 없는 자신의 처지를 비관한다.

그러면서도 오제는, 부동산 경기가 침체되었다는 이유로 정책자들을 비난한다.

소설의 말미, 뉴스에서는 월식이 예고된다. 

달을 가려버리는 그것.


<양의 미래>

목이 메였다. '나'는 겨우, 고등학교 졸업반이다. 

"밤엔 손발이 다 녹아내리는 것처럼 피곤했는데 잠이 오지 않았다. 잠자리에 누워 천장을 보고 있으면 어른 두세명이 밟고 올라선 것처럼 가슴이 뻐근했다."

상업계 고등학교의 졸업반에 마트 계산원으로 취직한 '나'. 

어찌 이것을 파릇파릇한 젊음의 말이라 하겠나. 삶의 부담감에 눌린 중년과 조금도 다르지 않다.

그녀가 읽는 책은 "서른다섯 나이에 강에 투신해 목숨을 끊은 소설가의 단편들"이다.

그 소설들을 "병신 같았다"고 말하면서도, 반복해서 읽는 그녀. 

십년 째 암 투병중인 어머니가 이제 죽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는 그녀는, 평생 아이를 갖지 않겠다 한다. 

서점에 취직해 만났던 호재는 학사학위를 위해 학교로 돌아가고 졸업하지만, 취직은 쉽지가 않다.

서로에게 상처를 주고 받는 청춘들. "다시는 연애를 못할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했다. 그런 기회를 더는 상상할 수 없었다."


삼포세대, 칠포세대, 흙수저라는 말들.

그 단어들을 풀어 설명하자면, 이 소설이 되지 않을까. 더이상 뺏길 것도 없어, 꿈마저 뺏겨버린 세대.

사랑하든 말든, 가족을 잠재적 짐으로 취급하게 되어버린 세대.


어느 날, 진주라는 소녀가 서점에서 '나'와 대화한 것을 마지막으로 실종되고, 그녀는 지하터널에 진주가 있진 않을까 생각한다.

망치를 찾아 벽 앞에 서지만, 그녀는 깨보지 못한다.

"요즘도 나는 그 순간에 내가 어느 쪽을 더 두렵게 여겼는지를 생각해보고는 한다. 나무 벽의 구멍을 통해 검은 공동을 확인하는 것과 진물 같은 곰팡이로 덮인 또다른 벽을 확인하는 것. 어느 쪽이 더 섬뜩하고 소름 끼치는 일일까. 나는 그걸 알 수 없었고 아마 앞으로도 알 수 없을 것이다."

삶에 아무런 기대할 것이 없는, 그 적응된 절망. 희망도 그것이 익숙한 자들만의 것은 아닐까 생각하면 숨이 막힌다. 


진주를 찾기 위해 서점 앞 땡볕 아래 엎드려 있는 진주의 어머니, 지하 서점에서 일하느라 삼십분도 햇볕을 보지 못하는 '나'.

서점 주인은 영업 방해가 되니 진주 어머니를 설득해보라고 지시하고, '나'는 진주 어머니를 바라보다 그 길로 서점을 떠난다.

"나는 여전하다. 여전히 직장에 다니고 사람들 틈에서 크게 염두에 두지 않을 정도의 수치스러운 일을 겪는다. 못 견딜 정도로 수치스러울 때는 그 장소를 떠난 뒤 돌아가지 않는데, 그런 일은 물론 자주 일어나지는 않는다."


<상류엔 맹금류>

제희의 부모님은 사기를 당해 빚더미에 앉는다. 도망갈 수도 있었으나, 그 자리에서 천천히 그 빚을 갚아가며 사는 것을 택했다.

그들에겐 아이 다섯을 포기하지 않고 가족으로 유지하며 살아온 자부심이 있다. 

하지만 "나"는 그것이 부도덕하다고 생각한다.

그들은 빚을 갚기 전에 늙어버렸고, 그 빚은 고스란히 다섯 남매에게 나누어졌다. 

"자식들에게 부끄럽지 않은 부모가 되고자 하는 것은 자신들의 욕심일 뿐이라는 생각은 안 해보았을까. (...) 자신들의 양심과 도덕에 따랐지만 딸들의 인생을 놓고 봤을 때는 부도덕한 선택이 아니었을까."


도망가버린 사람의 부도덕함이 아니라, 도망가지 않고 감당한 자의 부도덕함이라.

모든 곳에 진실이 있다. 제희의 어머니가 전쟁고아이기도, 햅번스타일로 머리를 만 아름다운 여인이기도, 관절염으로 다리를 저는 노부인이기도 한 것처럼.


'나'는 제희와 제희의 부모님과 수목원에 놀러가고, 제희의 부모님 때문에 원치 않는 물가에 앉아 도시락을 먹는다.

관리인의 제지로 그 자리를 벗어나며 바로 위에 맹금류 축사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 

'나'는 제희 가족에게 "저 물이 다. 짐승들 똥물이라고요" 말한다.

그 후 별다른 일 없이 제희와 헤어졌고, 다른 사람과 살고 있다.


그 이별에 대해 딱히 기억나는 것은 없지만, '나'는 가끔 생각한다. "어째서 제희가 아닌가."

"그럴 땐 버려졌다는 생각에 외로워진다. 제희와 제희네. 무뚝뚝해보이고 다소간 지쳤지만, 상냥한 사람들에게."

"나는 그날의 나들이에 관해서는 할말이 많다고 생각해왔다.

 모두를 당혹스럽고 서글프게 만든 것은 내가 아니라고 말이다."


사물의 안쪽을 들여다보는 것만 같았다. 누구도 버린 사람은 없지만, 모두가 버림받은 기분.

도덕의 정의가 다른 그들, 영 동화될 수 없을지도. 


<명실>

실리를 그리워하는 명실의 이야기라고만 정리하고 마음에 와닿은 부분들을 옮긴다. 


"수면 위로 드러난 이름 아래 차갑게 잠겨 있는 이름들이 있었고 그 중에 실리가 있었다. 실리가...... 그것을 생각하면 그녀는 얼음처럼 차가운 물 아래 잠긴 실리를 정말 본 듯했고 거기 갇힌 실리를 어쩌지 못해 숨이 막혔다."

"사람이 죽은 뒤에도 끝나지 않는 뭔가가 있다는 것, 너와 내가 죽은 뒤에도 만날 수 있다는 생각은 얼마나 위안이 되나. 얼마나 아름다운가. 나는 죽어서, 실리를 만날 것이다. 실리가 기다리고 있을 것이다. 실리는 죽었지만 살아 있는 인간으로서는 상상할 수도 없고 알 수도 없는 어떤 것, 어떤 상태로든 남아 있을 테고 내가 죽은 뒤, 실리와 나는 서로 그런 상태로, 그런 상태로라도 만나게 될 것이다. 그런 세계가 있을 것이고 그런 세계에 실리가 있을 것이다. 이런 상상은 얼마나 위안이 되는가.

 그러나 없다.

 없다.

 점차로 없고 점차로 사라져가는 것이 있다. 그뿐이다."

"그러나 이것들은 다 없어진다. 나와 더불어서. 나의 죽음과 더불어 조만간, 아마도 곧...... 아무도 실리를 모르게 되는 순간이 올 것이고 실리는 영원히 잠길 것이다. 망각으로. 

 실리는 마침내 죽는 것이다."


세월호를 떠올렸다.

먹먹했다. 


<누가>

"그녀는 그때 자신이 계급적 인간이라는 것을, 자신이 속한 계급이라는 걸 알았다. 이런 거였구나. 이웃의 취향으로부터 차단될 방법이 없다는 거. 계급이란 이런 거였고 나는 이런 계급이었어."

조용한 집을 찾아 이사온 여자는 노인이 세들어 살던 집에 들어오고 왠지 노인을 내쫓은 기분이 든다. 

"노인은 방을 유지할 능력이 없었을 뿐이고 내게는 있었을 뿐. 그냥 그것뿐. 만사가 그뿐."

만사가 그뿐일까. 그뿐이라고 생각하고 잊으면 그만일까. 

만사가 그뿐이 아니라면, 그녀는 무엇을 했어야 하나. 


이사온 집에서도, 계급은 그녀를 놓아주지 않는다.

"사람들이 왜 이렇게 하지. 대체 이 사람들이 나한테 왜 이렇게...... (...)

 나는 평생 누군가에게 특별하게 해를 끼친 것도 없는 사람인데."

모두가 하는 생각 아니던가. 나는 해끼친 적이 없는데. 그렇다면 무엇이 문제일까. 계급이 문제지. 

한 밤, 잡히는 대로 물건을 집어던지며 그녀가 외치는 절규는 가슴이 아프다. 

"나는 그 노인보다 낫지만 지금의 나하고 그 노인 사이엔 거의 아무것도 없다. 아무것도 없으니까 언제고 나는 그 노인이 있었던 곳에 스무스하게 당도할 것이다."


세상을 날카롭게 들여다보고 보이는 그대로 말하는 작가를 마주하며, 여러번 놀란다. 

누가 한국 소설에 사담(私談)만이 가득하다 했나. 


"니들은 다를 줄 알지? 다른 줄 알고 다를 것 같지? 그런데 니들하고 나하고는 다른 게 없지. 완전 같지."


<누구도 가본 적 없는>

첫 해외 여행을 떠난 중년의 부부.

십사 년 전, 심장 발작으로 아이가 물에서 사망했다. 

그들이 삶에서 잃어버린 것은 여권 뿐이 아니다. 

역무원에게 말하려 언어를 찾는 남자의 부서진 말들. 

"익스큐즈 미, 아이, 아이......"


<웃는 남자>

"나는 너를 이해할 수 있어. 컴컴한 모퉁이에서 그 말을 들은 순간 나는 깜짝 놀랐다. 이 사람이 이해할 수 있다는 나를, 나는 왜 이해할 수 없는가."


살아남은 자의 슬픔.

살아남았다는 죄책감.

삶을 생각해야 한다는 자기혐오. 


무언가 끊어내지 않으면, 다른 듯 닮아버리는 부자지간처럼, 영원히 변하지 않음을. 


<복경>

'나'는 가난한 머리통을 가졌다. 

"비둘기가 있고 강낭콩이 있고 버찌가 있는 것처럼 아니야 그보다 휘슬러가 있고 버버리가 있는 것처럼 있어 그런 게. 왜냐하면 내가 그거거든. 가난한 머리통."

충분한 돈이 없어 엄마의 지독한 통증 앞에 무기력할 수밖에 없던 여자. 

"인간다움의 조건은 여력의 여부가 아닙니까."

"살려내고 싶어도 살릴 수 없는 사람이 죽음을 앞두고 고통으로 괴로워하는데 진통조차 해줄 수 없는 형편이라면 그 마음은 뭐가 되겠습니까. 짐승 아니겠습니까. 짐승이 되어버린 것과 같지 않겠습니까. 그래서 나는 돈을 벌어. 그 짐승이 되지 않으려고 돈을 법니다."


그녀가 일하는 백화점에서, 미화원은 판매원과 계산원을 증오하고 판매원과 계산원은 미화원을 미워하고 그들 모두는 식당 조리사들을 미워하고 조리사들은 그 모두를 두루두루 미워하는.. "영원한 돌림노래처럼" 늘 서로를 미워한다. 

차라리 "고객과의 관계가 훨씬 산뜻하다고 나는 생각합니다."

"고객과의 관계는 괜찮습니다. 인격적인 관계가 아니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괜찮아요."

고객에게 당한 분풀이를 지하상가의 고객이 되어 쏟아내는 매니저는, 그녀에게 '도게자'를 가르쳐준다.

"꿇으라면 꿇는 존재가 있는 세계. 압도적인 우위로 인간을 내려다볼 수 있는 인간으로서의 경험. 모두가 이것을 바라니까 이것은 필요해 모두에게. 그러니까 나한테도 그게 필요해. 그게 왜 나빠?"


이런 세상에서, 인간의 존귀함이란 말장난이 되어간다.

"가만히 있어도 존나 귀하다면 그것은 일단 인간은 아니라는 생각이 드는데요. 그냥 있는 것 자체로 존귀한 것이 있다면 그것은 우선 인간에 속한 게 아니라는 생각이요."

미친 듯 웃고 있는 그녀. 웃는다는 말로는 적당하지 않아 그 웃음을 표현하기 위해 새로운 언어를 만들어야 하는 그녀. 

슬픈 와중에, 특유의 유머는 곳곳에 있었다. 

가령, "재수없는 새끼...... 고객 같은 놈......" 

그 어느 웃음도, 아프지 않은 것이 없었다. 

한 편도 빠짐없이, 지금 이 시대를 이야기하고 있었다. 


소설집을 읽는 내내 마음에 눌려 몸까지 묵직해질 정도로 슬펐는데,

더 견딜 수 없는 슬픔은, 이 모든 것이 눈물을 짜내기 위한 억지 신파가 아니라는 사실이었다. 

사실을 담담하게 바라보는, 우리네 삶을 이야기하는 소설.

분명 창작이지만, 창조가 아닌 관조라고 여겨져, 그게 견딜 수 없이 슬펐다. 

읽어내기 쉽지 않았다. 

이 모든 것이 우리네 이야기라니. 

여기, 이렇게 사람이 살고 있다니. 


작가를 흠모하면서도, 그녀의 다른 소설을 찾기 겁이 난다. 현실을 마주하기엔 비겁하여. 

그러면서도, 현실을 직시하는 그녀의 시선이 고맙다. 

제대로 조준해야, 타격할 수도 있으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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