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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의 심리학 - 유쾌한 심리학자의 기발한 여행안내서
김명철 지음 / 어크로스 / 2016년 7월
평점 :
품절
좋은 책을 만날 가망성을 높일 순 있다.
내 취향을 아니까 그에 맞는 걸 찾으면 되고, 여러 경로로 검증된 책들을 찾으면 된다.
그런다고 100%가 될 순 없겠지만, 어쨌든 확률은 높아진다.
하지만 다른 길을 택했다.
고른 섭취. 내가 자진해서 집어들 일이 없는 책, 심지어 제목부터 못마땅한 책들도, 한 번 읽어본다.
그렇게 해서 좋은 책을 만날 때의 짜릿한 맛.
캬! 이맛이야!
스물아홉에 첫 여행을 떠난 저자는 곧 베테랑 여행가가 되었지만, 오히려 그 여행에 회의를 느꼈다고 한다.
심리학자로서 여행과 여행자에 대한 고민을 시작하게 되었고,
심리학과 여행학, 그리고 자신의 경험을 더해 만든 결과물이 바로 이 책, <여행의 심리학>이다.
"씩씩하고 싹싹한 배낭여행"만이 참된 여행이라 믿어 의심치 않던 저자는,
앙코르와트의 땡볕 아래 왕복 40킬로미터 거리를 자전거로 오가는 등 온갖 고생을 마다하지 않다가 문득 의심하게 됐단다.
조금 더 편한 방법을 택했다면 앙코르와트가 덜 인상적이었을까,로부터 시작되는 스스로에 대한 솔직한 질문들.
곧, "행복하고 의미 있는 여행을 하기 위해 나는 무엇을 따져보고 어떻게 여행을 해야 할까?" 하는 것.
결론은, 정답은 없다는 것이다.
사람은 모두 다르며, "여행은 다양한 사람들의 성격과 취향과 목표를 만족시킬 수 있는 다양한 요소를 지니고 있다."
고로, 우리 모두는 각자에게 맞는 여행을 할 수 있다는 것! 오예!
몸소 겪은 경험들을 바탕으로, 여행은 한없이 다양해질 수 있다는 것을 설파하는 심리학자.
저자는 여행을 이야기하지만, 우리 모두의 다양한 인생을 응원하는 것으로 여겨져 더욱 신나기도 했다.
책은 개개인의 성격에 맞는 여행을 고르는 팁을 말해주기도 하고, 여행을 위한 노하우와 규칙을 말해주기도 한다.
저자는 사람들은 왜 여행을 떠날까, 나는 어떤 사람일까, 나는 왜 여행을 떠날까? 순으로 자문해볼 것을 권한다.
이소 아홀라Iso-Ahola는 행동주의 심리학에서 유래한 접근-회피 동기 개념을 이용해, 여행 동기 연구에 큰 영향을 미쳤다고 한다.
접근-회피 동기 개념이란, 인간은 무언가를 얻고 무언가를 하려는 '접근 동기'에 따라 행동에 나서기도 하지만,
무언가를 피하고 무언가를 하지 않으려는 '회피 동기'에 따라 움직이기도 한다는 것.
대부분의 경우 접근 동기와 회피 동기는 언제나 동시에 나타나 일정한 비율로 조합된다고.
이소 아홀라는 여행 역시 무언가를 피하려는 회피 활동인 동시에 무언가를 얻으려 하는 접근 활동이라 말한다.
"여행은 도피이자 탐색이며 탈출이자 추구이다."
회피 동기가 매우 높은 대신 접근 동기가 불명확할 경우엔 방랑자 유형의 여행(1960-70년대 히피 여행자, 니코스 카잔차키스),
반대로, 접근 즉 추구욕구가 강할 경우에는 탐험이나 교육적 여행(표트르 대제)이 나올 수 있다.
스탠리 플로그Stanley C. Plog는 자기 내면에 집중하는 여행자와 타인 및 환경에 중점을 두는 여행자를 구분했고,
에릭 코언Erik Cohen은 친숙성을 중시하는 여행자와 새로운 지식과 경험을 추구하는 여행자를 구분했다.
이는 각각 성격심리학의 '외-내향성'과 '개방성'을 통한 여행 동기 구분법이다.
결국, 자신의 여행을 논하려면 스스로의 성격을 알아볼 필요가 있다는 것으로 귀결된다.
책엔 성격5요인 테스트가 실려 있다. 그 5요인은 외-내향성 및 개방성, 성실성, 우호성, 신경증 성향으로 구성되어 있다.
여행 동기 연구와 성격 5요인 외에도, 저자는 '자기상'이라는 개념을 설명한다.
'자기'라는 개념은, 우리가 스스로에 대해 느끼고 생각하는 내용을 말하며, 우리 삶에 전반적인 영향을 미친다고 한다.
저자가 던지는 질문.
"사람들은 현재의 자기상에 부합하는 여행을 하려할까, 아니면 미래의 이상적 자기상에 부합하는 여행을 하려할까?"
그 답이 무척 궁금했는데, 아직까진 이에 관한 연구가 활발하지 않다고.
소수의 연구에 따르면 현재 혹은 미래의 자기상, 그 어떤 것을 충족시키는 여행이든 모두 만족감을 느낀다고 한다.
그러나 현재와 미래의 자기상이 많이 다를 때는 어떤지 연구가 부족하고, 세계 각국 문화에 따라 차이를 보일 것이라 설명하고 있다.
여행을 말하는데, 여행 예찬이 나오지 않으랴.
기대감. 어떤 기대든간에 그것이 충족되리라는 희망적 예측.
긍정 정서와 행복감 체험. 짜릿함이건, 평온함이건, 놀라움이건간에.
여러 연구에 따르면, 여행은 자신의 건강상태뿐만 아니라, 직장과 일, 경제 수준, 주거환경에도 보다 더 만족하게 한다.
여행의 경험학습은 생생한 지식과 경험을 능동적으로 얻는 학습과정으로, 짐 꾸리기, 각국 비자 준비 등 여행 기술과 노하우뿐 아니라 일반적인 의사소통 기술과 적응력 또한 차곡차곡 쌓게 한다.
정서 지능의 상승! 우리는 어떤 상황에서, 어떤 이유로, 어떤 정서를 경험하는지 여행경험으로 확실히 깨닫게 된다.
각종 정서를 확실하게 인식할 수 있고, 그 원인을 추론할 수 있고, 그 정서가 낳는 결과가 무엇인지도 이해하게 된다.
또한 정서를 강하게 표현하는 타인을 보며 타인의 정서를 해석하고 이해하는 법도 익힐 수 있다.
"정서에 대한 전반적인 이해 수준이 높아지면 자연히 자신의 정서를 조절하고 타인의 정서에 대처하는 방법을 고민하게 되며, 이와 관련된 기술이 향상된다."
문화 지능의 상승은 말해 무엇하랴.
이 모든 것은 자존감 상승에 일조한다.
저자는 세니자 코셰비치와 폴 린치가 정의한 '불사조 여행'도 소개한다.
여행자들이 여행지의 사회공동체가 잿더미를 딛고 다시 피어나도록 돕는 여행을 말한다.
여행의 순기능을 말하면서도, 저자는 분명 여행 자체만으로 삶의 목적이 될 수는 없다고 말한다.
"오직 꾸준히 여행하며 자주자주 행복을 경험하는, 그리하여 자신과 소중한 사람들의 삶에 주기적으로 활력을 불어넣는 '여행하는 삶'이 인생의 목표가 될 수 있을 뿐이다."
물론, 여행의 만족이나 행복을 항상 얻을 수 있는 것은 아니므로, 좋은 여행을 하기 위해서는 스스로를 잘 알아야 한다는 것으로 이야기는 돌아간다. (성격, 욕망, 가치관, 여행의 방법 등)
"다양한 문화를 이해하는 것은 그만큼 공동체의 복지를 증진하고 문명의 진화를 촉진할 수 있는 다양한 대안을 알게 된다는 뜻이다. 먼 옛날부터 오늘에 이르기까지 인류는 항상 문화적 접촉과 교류를 통해 다채로운 대안을 섭취하고, 이를 변용하거나 자신의 문화와 연결함으로써 새로운 발명품, 새로운 지식과 이론, 새로운 사회제도를 창조해왔다."
뜻하지 않게, 나의 의도된 잡독마저 설명해주는 저자의 말씀.
저자는 비문명에 대한 환상을 비판하기도 한다. 가난과 비문명의 경험을 진정성과 동일시하며, 현지인의 경제발전 요소(스마트폰 등)를 반가워하지 않고, 가난에서 순수를 찾으려고 노력하는 행위들.
대충 만든 환상에 넘어가지 말고, 열린 마음으로 직접 느껴보길 권하고 있다.
저자는 '가난하지만 마음이 풍족한 사람들'을 찾는 행위가 얼마나 터무니없는지 말한다.
가난이란 먹을 것이 없고, 가족을 유지하기가 힘든 것이라는 진실을 우리 모두 알고 있음에도.
시골 마을의 해맑은 아이를 보며 제3세계의 환상을 보지만, 가난해서 죽어가는 아이를 보며 그 사회에 환멸을 느낀다.
저자는 경계해야 할 여행자의 자세를 말하는 동시에, 혐오 요소가 여행을 방해하지 않도록 할 것을 조언한다.
윤리적 여행, 다시 말해 '지속 가능한 여행'은 모두 새겨들을 필요가 있다고 느낀다.
이는 여행지의 환경을 보호하고 현지 문화를 존중하며 여행지 경제에 정의로운 기여를 하는 세가지 요소로 이루어진다.
이를 설명하기 위한 6가지 인지 부조화 해소 양상(결과 부정, 하향 비교, 책임 부정, 통제 부정, 예외 형성, 보상)도 흥미로웠다.
그 외 여행을 하기 위한 실질적인 팁과 심리학자로서의 조언들이 제시된다.
여행을 다녀와서 그것을 재미난 이야기로 정리하라는 것도 인상깊었다.
모든 여행은 여행기로 쓰인 뒤 아름다워진다고, 누구에게도 보여주지 않아도 상관없다고 저자는 주장한다.
"이야기를 썩히면 죄가 된다. 우리 자신의 경험에 충실하지 못한 죄, 행복하고 의미있는 경험을 망각의 강으로 떠내려보낸 죄"
책은 자신에게 맞는, 자신이 더 행복해질 수 있는 여행을 찾도록 돕고 있지만, 여행 자체가 영 싫은 사람도 있을 거라 생각한다.
그 역시 저자가 존중해마지 않는 개인의 다양한 특성 중 하나라고 생각하면서도,
자신이 정녕 무엇을, 어떤 이유로 싫어하고 좋아하는지 생각해보는 것도 참 좋은 시간이 될 것 같다.
결론적으로 여행이 싫어진다해도 상관없다.
난 사람은 영원히 스스로를 배워간다고 믿는 편이다.
책은 너무 좋았다.
인간에 대한 애정이 느껴지는 에세이들은 더없이 반갑다.
무엇보다.. 잠자고 있던 내 여행 본능을 미친듯이 펌프질했다.
한참을 세계 날씨를 검색했다.
결국 떠나든, 떠나지 않든, 생각하는 것만으로도 행복하다.
여행은 시작됐다. 여기, 내 책상 앞에서.
전술했지만, 나는 저자가 말하는 '여행'을 계속해 '삶'으로 확장시켜 읽었다. 나도 모르게.
"자신에게 잘 맞는 여행 방법을 발견하는 동시에 이와 같은 여행의 기술을 익힌다면 누구나, 언제나, 어디서나 행복한 여행을 할 수 있다."
"여행은 우리의 능력을 증명하는 활동이 아니다. 여행의 목표는 행복과 성장이다."
꺅. 신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