니체를 쓰다 슈테판 츠바이크 평전시리즈 3
슈테판 츠바이크 지음, 원당희 옮김 / 세창출판사(세창미디어) / 2013년 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슈테판 츠바이크 평전시리즈 중 한권이다.

평전의 범주에 있다 해도 문학인 이상 그 어떤 형식도 가능하겠지만, 흔한 생몰일도 나오지 않는 평전이다.

내게 느껴지는 것은 슈테판 츠바이크의 열정적인 존경과.. 연민. 

그리고 니체에 대한 존경과.. 감히 연민도.

니체가 죽기 전, 이 사람 슈테판 츠바이크를 만났다면, 그의 고독이 조금은 덜해졌을까 객쩍은 상상도 해보며. 


첫 장의 제목은 "등장인물이 없는 비극". 

"니체의 비극은 배우들이나 상대역, 청중도 없이 그 자신의 영웅 비극만을 보여준다. 

 그뿐만 아니라 본래의 관람석, 풍경, 도구, 의상도 없어서, 마치 공기가 희박한 이념의 무대에서 홀로 연기하는 것처럼 보인다."

"고립, 고독, 저 끔찍한 침묵, 유리 안의 종처럼 그의 사유를 감싸고 있는 대답 없는 고독, 꽃이나 색채, 음향, 동물이나 인간도 없는 고독이 무대를 장식한다. 거기에는 신도 없으며, 돌처럼 굳어서 사멸하려는 원초세계의 고독이 지배적이다."


등장인물이 없는 비극이라니, 고독을 이토록 잘 설명할 수 있을까.

일찌감치 교수가 되고, 바그너의 후광으로 쉽게 유명세를 떨쳤으나, 곧 그는 철저한 혼자가 된다.

"그가 자신에 깊이 몰입하고 시대에 대해 외면할수록" 더욱. 

슈테판 츠바이크는 이 고독을 애초에 그가 원했던 것으로 보진 않는 모양이다.  

"점차 이 비극의 주인공은 불안해져서 허공에다 말하거나, 점점 더 크게 이야기한다. 반향이나 적어도 반발을 얻어내기 위해 점점 더 크게 외치고, 점점 더 제스처가 커진다."


그는 "경쟁자의 은총"을 받은 적이 한 번도 없으므로 계속해 그 안으로 침잠해 들어가고,

"핏자국이 밴 넝마를 걸치고 운명과 싸우는 광인 프리드리히 니체는 헤라클레스처럼 반인반마의 괴물 네수스의 불타는 옷을 찢어버림으로써 비극의 주인공이 되었다."

"그는 이제 자신과 상대할 경쟁자가 없어서 "자기인식자, 무자비한 자기학대자"로서 자기 자신을 스스로 공격했다. 그는 자신의 광기에 쫓기며 시대와 세계를 넘어섰고, 자기 본질의 한계를 초월했다."


평생을 위경련, 편두통, 무기력증, 치질, 오한 등 온갖 질병에 시달려온 그에겐 고통마저도 연구 대상이다. 

"그는 늘 다른 사람보다 두 배의 고통을 앓았는데,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그는 고통을 두 배로 체험했기 때문이다. 즉, 한 번은 실제로 다른 한 번은 자기관찰의 과정에서 체험했기 때문이다."

그는 병 덕분에, 책으로부터의 구원을 얻었다고 말한다. 삶을 새롭게 발견했다고도. 

"니체는 온갖 고통을 기교나 육체적 위기의 부정을 통해서가 아니라, 올바른 인식을 통해서 극복했다."


슈테판 츠바이크가 말하길, 칸트의 진리에 대한 사랑은 진지하고 지속적이며 영속적이지만, 열정의 에로스가 결여되어 있다고 한다. 안전한 체계로서 구축되었다고.

그에 반해 니체, "그의 진리에 대한 자세는 철저히 마성적인 쾌감, 결코 만족이라고는 모르는 뜨겁고 신경질적이면서도 호기심 어린 쾌감의 형태를 지닌다."

니체는 어떤 것도 "'최종지식'일 수 없으며, 종국적 의미에서 진리는 소유될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

만족할 줄 모르는 호색한처럼, 니체는 끊임없이 진리를 추구하며 뛰어오르고 추락함으로써 하나의 비극을 만들어냈다고.


라이프니츠, 칸트, 헤겔, 쇼펜하우어 등의 학문적 본성의 인간들도 "몸과 마음, 운명까지 다 바쳐 인식을 얻기 위한 영웅적 투쟁에 뛰어든 것은 아니었"지만, 니체는 "모든 것을 다 바쳐 모험에 뛰어"드는 사람이었다고.


결국 어떤 것과도 타협할 수 없던 니체는 고독한 연구를 계속하며 진리를 탐구하나, 

죽기 전 15년간 허름한 방에서 방으로 옮겨다니며 은둔자로서 살다가 끝내 외로운 죽음을 맞는다. 

"열광적인 사고 자체가 자기목적이고 자기향유"였던 사람.

끊임없는 자기 변전을 거친 사람. 

시대의 열등감과 타협할 수 없던 천재.

유럽의 비극을 예견했으나 세상을 변화시킬 수 없다는 영원한 비극에 갇힌 사람.  

달력의 원년이 예수가 아닌 자신의 탄생일로 바뀌어야 한다고 요구한 사람. 

과대망상증 환자라는 낙인과 정신병자들의 전형적 자기과시를 지닌, 그러나 전대미문의 기적을 이룩한 사람.


꾹꾹 눌러쓴 듯, 한 문장 한 문장이 인상깊었다. 한 문장도 남김없이 근사했다.

니체를 알았다면 더욱 인상깊었을까.

니체를 몰라서, 과도한 천재는 시대를 놀래키기는커녕 스스로를 고립시킬 수밖에 없겠단 생각이 들었다.

니체 일생의 유일한 친구인 고독은, 슈테판 츠바이크의 손으로 재탄생되어, 상상만으로도 너무 외로워서 숨이 막혔다.  

내가 천재가 아니라서 다행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