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상의 빛
미야모토 테루 지음, 송태욱 옮김 / 바다출판사 / 2014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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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상의 빛>은 총 네 개의 단편 소설이 실려 있다.

한 편도 빠짐없이, 죽음이 등장한다.


표제작 <환상의 빛>은, 자살한 남편을 향한 서간문 형식의 소설이었다. 

나로선 우울이나 자살을, 아무리 설명해도 이해할 수 없는 사람은 없는 대로, 하는 사람은 하는 대로, 

이미 결정되어진 것만 같다는 생각을 한다. 

이해한다 해도, 못한다 해도, 그것은 어느 쪽의 우열도 의미하지 않는다고도. 

자기파괴적 감정을 이해하는 것이 우월하겠는가, 타인을 이해하지 못하는 것이 우월하겠는가. 

모두 난센스. 


그렇게 우울이나 자살을 생각하지만, 남은 사람을 생각하면 복잡해질 수밖에. 

살아가야 한다는 수치심 속에서도 죽을 생각을 해본 적 없는 사람이라면 더욱이. 

(물론, 그 생각을 해봐야 한다는 것 또한 아니다.)


무엇보다 압권은 분위기 그 자체였다. 그 환상적인 분위기. 이것은 네 편의 단편 소설 모두 다 해당했다. 

줄거리나 재미, 의미 등, 소설의 다른 요소들을 배제한다 하더라도, 

그 분위기만으로도 독보적 위치를 차지할 자격이 있는 소설들. 


문학이 응당 그렇듯이 여러가지 해석이 가능한 작품들이라 생각되고, 그러니 순전히 개인적 감상일 뿐이라는 것을 오랜만에 밝힌다. 


<밤 벚꽃> 

불륜을 저지른 남편과 이혼한지 이십 년, 외아들을 사고로 잃은지 일년 된 아야코. 

벚꽃이 흐드러지게 핀 어느 날, 번듯해보이는 청년이 찾아와 하루만 이층방에서 머물게 해달라고 부탁한다.

어영부영 허락하자, 청년은 오늘 혼인신고서를 제출했다며 부인을 데려오고 아야코는 께림칙한 느낌을 갖게 된다.

밤, 동반자살이라는 무서운 상상이 되어 이층에 올라간 아야코는 그들의 대화를 듣게 된다.

"멀리 바다가 보이고 활짝 핀 벚꽃으로 둘러싸여 있고, 일박으로 갈 수 있는 곳이고, 

 게다가 예산은 5천 엔밖에 안 드는 곳. 당신의 그런 바람을 이룰 수 있는 곳은 아무리 발버둥을 쳐도 생각나지 않았거든." 

갓 결혼한 부부의 꿈의 장소, 아야코의 집. 

여자는 말한다. 

"전, 여자의 행복이란 정말, 부자 남자와 결혼하는 거라고 생각해요."

"나도 그렇게 생각해."

"남의 말 하듯 하기는... 언젠가 이런 집에서 살 수 있게 해줘요."

"...응."

"...왠지 미덥지 않은 대답이네요."


자못 우습기까지 한 그들의 대화를 듣고, 아야코는 아아, 이거구나 하고 생각하면서도 

"대체 뭐가 이것인지 아야코로서도 분명히 알기는 어려웠지만, 그녀는 지금이라면 어떤 여자로도 될 수 있을 것 같았다."


내게 당연한 것이 타인에게 얼마나 멀고 먼 꿈인지 알게 될 때의 당혹감.

내가 가진 것을 가지지 못해도, 그리고 가지지 않아도 행복한 이들을 보는 경외감.

잃어버릴 것도 없는 청춘과 잃어버린 것이 많은 노년의 대조. 

지금이라도 변할 수 있다는 것은.. 희망. 

그러나 남편의 불륜 따위 용서할 걸, 하는 결론은 내리지 않겠다. 

 

<박쥐>

유부남 고스케는 내연녀 요코를 만나러 가는 길에 고등학교 동창이었던 란도가 죽었다는 이야기를 듣게 된다.

고스케는 십 수년 전, 

폭력사건을 저지르곤 했던 불량학생 란도가 뜬금없이 여자를 만나러 가는 길에 함께 하자고 해 먼 길을 동행했던 적이 있다.

"그걸" 하고 오겠다는 란도를 기다리던 고스케는 하늘 위의 엄청난 박쥐 떼를 보고, 

소름이 끼쳐 집으로 돌아가버렸고, 얼마 안가 란도는 자퇴인지 퇴학인지를 했고 그 후로 소식을 들은 적도 없었다.

요코가 정원을 돌아보고 오길 기다리던 고스케. 

"나는 오랫동안 그 낙엽이 검게 뒤섞이는 것을 바라보고 있었다. 

 늦가을 저물녘에 흩날리는 낙엽은 십몇 년 전의 박쥐 바로 그것이었다. 

 아주 고요해져 있던 내 몸 안에서 크레인 소리가 울리고 어지럽게, 그리고 나긋나긋하게 서로 뒤엉키듯이 박쥐들이 뿜어져 나왔다."


인간은 반성할 줄 알아서 그나마 봐줄 만 하다.

자기성찰 할 줄 알아야 더 봐줄 만 하고.

요코에게 "아직, 나하고 헤어질 수는 없겠지?" 하고 묻는 꼬라지에서 욱할 뻔. 누가 누굴 천박하대. 솔직하면 위선적이라도 않지.


<침대차>

영업직 '나'는 내일 아침 큰 거래를 마무리 짓기 위해 밤 열차 침대칸을 탔다.

'나'도, 영업부의 상사도, 고대하던 큰 거래를 성사키셔도 성취감과 동시에 허망함을 맛본다. 


옆 침대 노인의 숨죽인 울음소리를 듣고, 이십몇 년 전 초등학교 동창을 떠올린다.

가쓰노리는 강에 빠져 실신 상태에 빠졌다가 살아났다. 발버둥쳤다면 그대로 물 속에 잠겨 죽을 수도 있었지만, "죽은 것이나 마찬가지였기에 그는 자신의 목숨을 구한 것이다."

그로부터 십몇 년 후, 가쓰노리는 달리는 기차에서 떨어져 사망한다. 

가쓰노리의 할아버지는 "그때(강에 빠졌을 때) 죽었더라면 좋았을지도 모르지." 라고 말한다.


"그때 도사보리 강에 둥실둥실 떠서 기적적으로 목숨을 구한 가쓰노리에게, 그 후 주오혼센 열차에 탔을 때까지의 그 십몇 년은 대체 무엇이었을까, 하고 나는 멍하니 생각하고 있었다."


그 십몇 년은 보너스 같은 것이었을까. 있어도 없어도 괜찮은.  

어쩌면, 가쓰노리의 죽음은 의도된 것이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해본다.

환상의 빛을 본 후, 다시 보고만 싶어서.


어쩌면 살아있는 모두에게, 살아가는 이 세상은 언제까지나, 상실의 시대가 아닐까. 

누군지 몰라도 (번역서) 제목 한 번 잘 지었다. 상실의 시대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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