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남자는 왜 이상해졌을까? - 부끄러움을 모르는 카리스마, 대한민국 남자 분석서
오찬호 지음 / 동양북스(동양문고) / 2016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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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년 남성들이 선호하는 신부감 직업 1위를 차지하는 '초등학교 교사'에 숨겨진 함의.

저자는 (조주은의 <페미니스트라는 낙인>을 인용하며) 이것이 여성의 노동력을 안팎으로 착취하며 남성 권위를 유지하고자 하는 욕망을 드러낸다고 지적한다. 

다시 말해, 남성의 경제적 부담을 덜어주되, 집안일과 보살핌의 노동은 그대로 해주길 바라는 이중착취의 욕망을 여실히 보여준다고.

저자 역시, 사회학과 여성학을 공부하면서도 이 부분을, 또 많은 부분을 미처 자각하지 못하고 있었음을 고백하기도 한다. 


그렇게 되기까지, 안다. 안다. 

한국 사회에서 남성들이 가정 경제를 이끄는 모든 책임을 떠맡았고,

가뜩이나 먹고 살기 힘들었는데, 신자유주의네, 노동시장 유연화네 뭐네 해서 이제는 더욱 더 힘들어졌다는 거.

일은 일대로 하고, 성평등이네 뭐네 해서 집에서도 쉬지도 못하고, 권위는 아버지 세대와 다른데, 의무는 더 무겁기만 하다. 

그러니까, 그 무거운 책임에서 조금이라도 더 해방되기 위해서라도 성 평등이 이뤄지는 게 낫다는 거다. 


"아무리 인간답게 살겠다고 개인이 발버둥친들, 가정을 꾸리면 삼라만상의 기운이 아내의 경력단절을 부추길 것이고 그때부터 생계부양자인 남자는 적당한 권위를 집안에서 행사하다가 종국에는 '나만 뼈빠지게 고생하네'라면서 우울증을 앓을 것이 분명하다."


위의 그 흔한 시나리오, 이상적인가.

페미니즘이란 말부터 여성 할당제, 여성 전용 무엇 등등이 나오면 대번에 불편하게 여기는 사람들이 적지 않다고 들었다. 

모두를 차별이나 경쟁의 상대로 보지 않고, 오히려 공동체의 권리와 의무를 함께 행할 나의 친애하는 동료로서 보는 것이 낫지 않을까.  


페미니즘 관련 책을 읽을 때마다 의아한 부분도 많고, 동의하지 않는 부분도 있다.

페미니즘을 공부한 저자와 나는 당연히 지식의 격차가 존재하니, 그 동의할 수 없는 부분은 나의 무지 때문일 수도 있고, 끝내 동의할 수 없는 부분일 수도 있다.

그러나 크고 작게 존재하는 이견들 때문에, 누군가 무턱대고 거부감을 갖진 않았으면 좋겠다. 

누구나 약자가 될 수 있다.

약자를 보호하고 나아가 모두의 해방을 말하는 것이 페미니즘이라고 생각한다. 누군가를 끌어내리자는 것이 아니라. 


저자는 쉬운 언어들로, 듣기 순하게 포장하는 것 없이 -더러, 인터넷 상에 올라왔던 욕설까지 그대로 옮기며- 직설화법으로 다양한 소재들을 이야기하고 있다.  


한국을 지배하고 있는 군대문화에 대해서, 박노자는 "전국 병영화는 비공식적 국시"라고 까지 표현했다고. 

모두들 끔찍했던 기억이고 다시 꾸고 싶지 않은 악몽으로 군 경험을 이야기하면서, 남자가 군대는 다녀와야 한다고 목에 핏대 세워가며 주장하는 나라. 

CBS의 변상욱 기자가 했다는 말은 인상깊다. 

"만약에 자기 한계를 넘어서는 혹독한 군사훈련이나 외부로부터 격리된 집단 수용생활이 인간을 절제와 협동심, 인내심, 자기 성찰로 이끄는 효과과 뛰어나다면 남성 대부분이 군 복무를 한 우리나라는 품격 있는 신사로 가득 찼어야 한다."


라이따이한, 코피노가 보여주는 문제점,

운전 못하는 '김여사'라는 농담이 보여주는 것.

노키즈존이 품고 있는 차별의 함의 등. 생각해볼만한 이야기들이 담겼다. 


저자는 학생들과 양성평등이 이뤄진 사회를 상상해봤다고 한다. 흐뭇한 그 상상, 언제고 반드시 현실이 되었으면.

나는 어리숙한 덕분(?)에 헛된 망상이나마 가져봤지만, 어린 시절부터 학습되는 수많은 함의들을 일찌감치 눈치챈 똑똑하고 잠재력 많은 여성들은 진작 좌절하거나, 꿈조차 남성들의 그것과는 달리했을지도.


책의 말미에 말하는 저자의 개인적 경험은 무척 의미있게 느껴진다.

성별에 따라 개인의 정체성을 구속시키는 것을 하지 않기 위해 무던히 노력했음에도, 

일곱 살 딸이 아빠, 나 예뻐?를 골백번 물어보며 모델과 동화속 공주님의 포즈들을 취할 때 느꼈던 참담함.

이어지는 고백은 무척 솔직하다.

"'사회화'의 과정으로만은 설명할 수 없는 인간의 타고난 본성인 것일까? 사회학을 공부한 사람으로서 굴욕적이지만 이렇게 이해하는 것이 속 편하지 않을까 했다." 

그러나, 초등학교에 입학하기 전에 이미 약 5년이나 사회를 경험하는 현대의 시스템에서, 가정 교육만으로는 이미 가정 밖에서 경험하는 사회화의 무게를 뒤집을 수 없다는 반증임을 분명히 한다.

모두 다 함께 변해야, 사회 전체가 변해야, 다음 세대는 달라질 수 있다. 

다들 딸이 그렇게 좋다면서(이 말 역시 조금 불편하지만), 그 딸들을 위해서라도. 


속표지를 넘기면 나오는 첫번째 문장, 

"남성다움 혹은 여성다움의 본질은 쉽게 분류되지 않는다." - 앤서니 기든스 

아직 2차 성징도 나타나지 않은 작은 꼬마들을 '남자애니까', '여자애라서' 식으로 구분하는 것이 부당하게 여겨졌던 나임에도, 

<모비딕>을 읽으며, 이건 너무도 '남성적인' 소설이라고 생각했다. 

나 역시 이 사회의 평범한 틀 안에서 살아왔고, 그 이분법 안에 편안하게 기대고 싶은 마음마저 있는 인간이니.  

갈 길이 멀었다. 멀다고 안 갈텐가. 



"약자에 대한 표현의 자유는 혐오 범죄일 뿐"

"표현의 자유를 옹호하는 언어가 혐오 발언을 보호하는데 쓰이는 실정이다." (리베카 솔닛 재인용)

"인종, 젠더, 계급간의 위계에서 약자에 대한 강자의 표현의 자유는 혐오 범죄일 뿐이다. (...) 표현의 자유는 보편적인 권리가 아니라 보편성을 향한 권리다." (정희진의 표현 재인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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