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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 나의 모든 하루 - 김창완의 작고 사소한 것들에 대한 안부
김창완 지음 / 박하 / 2016년 7월
평점 :
어렸을 때 <스무살까지만 살고 싶어요>라는 책을 엉엉 울어가며 본 적이 있다.
그리고는 엄마, 나도 스무살까지만 살고 싶어, 라고 철이라곤 1도 없는 말을 했다가 등짝을 호되게 맞은 기억도.ㅎ
어린 나이에 힘든 투병을 해야 했던 소녀의 이야기였고, 그녀의 편지는 대개 이 사람 좋아뵈는 아저씨를 향했다.
어릴 때 기억이라 강렬했나보다.
내가 그때의 그 꼬마가 아니듯 이 분도 달라지셨을텐데, 이제는 구할 수도 없을 그 책을 떠올리는 것을 보면.
잘 알지 못해도 느낌이 좋은 분이 있다.
책 역시 그랬다.
좋은 사람의 좋은 이야기는, 절로 미소를 머금게 한다.
부제가 "김창완의 작고 사소한 것들에 대한 안부".
제목이 말하듯, 스쳐지나가는 것들에 대한 단상을 담은 산문집이다.
훈훈한 이야기가 많았다.
길고양이가 도도해 자존심인가 했는데, 자세히 보니 그건 '생명'이었다는 이야기는 가슴이 찡했다.
"그 도도함이 생명의 잉태에 대한 어미 고양이의 강한 의지로 느껴졌습니다."
"별 볼일 없어 좋은 날입니다." 라는 말도 좋았다.
나는 장기하의 <별일없이 산다>를 흥얼거리며 웃는 사람이라서.
일상도 악기처럼 튜닝해야 한다는 표현도, 음악과 함께 살아온 생을 보여주는 것 같아 상큼했다.
"날짜를 쓰다보니 날짜가 갓 태어난 아기같"다는 표현도 좋다.
좀 처지는 날엔, 그것이 "그냥 잠깐 맡은 배역일 뿐"이라고 생각해보자는 것도 즐거움을 주고,
가끔, 손가락으로 카메라의 네모난 뷰파인더를 만들어 세상을 보라는 제안도, 혼자 조용히 따라해보며 씨익 미소짓게 했다.
오래된 LP판을 보며 중년의 아저씨가 울컥했다는 것도 가슴 짠한 무엇이 느껴진다.
어머니의 분냄새, 우물가 냄새, 니스 냄새까지 기억나는데, 정작 "나의 냄새"는 "내 청춘의 냄새"는 기억에 없다는 것도..
애잔한 마음을 자아냈다.
"평소에 잊고 살지만 우리의 몸은 지금 최선을 다해 생명을 지키고 있습니다." 이런 말도 좋다.
우리 모두 각자 얼마나 열심히 살고 있는가.
본인에게 부족한 게 무엇인지 생각하다가 그만두었다고, 굳이 찾아서까지 부족한 것을 알아서 뭐하겠느냐는 말도 상쾌하다.
인생에 순풍도 역풍도 있다는 이야기가 나올 땐 뻔한 소리를 하시려나 했는데,
순풍도 역풍도 없이 노력한 만큼 얻는 편이 제일 좋은 것 같단 말도, 좋다.
아, 좋다 좋다 좋다는 말을 남발하는 리뷰였다.
책의 전반부 1/3에 좋은 글들이 몰려 있었고, 그 나머지는 살짝 지루하기도 했던 게 사실이다.
오늘을 살아가는데 간절한 단 하나로 "어제의 기억"을 꼽겠다거나,
앞으로의 날이 아닌 "잃어버린 시간, 이미 써버린 시간이 나의 시간인 셈"이라는 말엔 동의할 수 없지만,
저자 역시 "사람이 가진 여러 재주 중에서도 잊는 능력이야말로 축복받은 것이 아닌가 싶습니다."라며,
"선뜻선뜻 잊기로 합시다."라고 하니, 역시 만사엔 양면이 있다 정도로 이해한다.
미소 짓게 하는, 좋은 점이 더 많은 책이었다.
문득, 아주 함량미달의 책이거나, 부인할 수 없는 장인의 걸작이 아니고서야, 좋고 나쁨의 차이는 종잇장 한 장 차이라는 생각이 든다.
적어도 내겐 그렇다.
그 작은 차이가 큰 다름을 만든다.
오늘이 있어 행복하다는 감사의 표시로 하루를 시작하자는 말은 이미 식상한 표현이지만, 그럼에도 좋기란 쉽지 않다.
그리고..
마지막 글의 소제목은 "노란 리본이 있습니다".
그 날 이후, 어린이날이 마냥 해사하진 않다고. 미안한 마음이 든다고.
깊은 공감을 표하며..
나이를 떠나, 다름을 떠나, 이렇게 저렇게 이세상을 함께 살아가고 있다는 충만감으로 책을 덮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