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고픔에 관하여
샤먼 앱트 러셀 지음, 곽명단 옮김, 손수미 감수 / 돌베개 / 2016년 4월
평점 :
절판


굶주림에 관한 셀 수 없이 많은 지식이 총망라된 이성적이고 과학적인 책이다.
이성만을 동원하고 싶었으나, 결국은 감성을 뒤흔들었다. 


총 14개의 장으로 이루어져 있다.
1장 <단식 광대들>에서, 저자는 인간이 배고픔에 반응하도록 만들어져 있고, 또 그것을 견디도록 형성된 존재라는 것을 설명한다. 
"우리는 모두 단식 광대"라고. 
실제로 역사 속에서 단식은 공연으로 이용되기도 했고, 관객은 이에 환호했다고 한다. 그러나 곧 그 인기는 사그러들었다고.
저자는 프란츠 카프카의 소설 <단식 광대>를 인용하며, 인간은 죽은 단식 광대보다 생기 넘치는 새끼 표범을 사랑할 수밖에 없노라고 말한다.
"우리 대부분이 동질감을 갖는 것은 새끼 표범이다. (...) 음식이 생명이다. 생명은 자유다. 제약을 받는 생명조차 자유다."

예술 및 종교에서 배고픔은 통찰에 이를 수 있는 독특한 형식의 고난으로 간주되었지만, 결국 배고픔은 죽음의 문제라는 것에 저자는 주목한다.
한때 저자는 기근에 관한 자료 수집을 하며 세상에 굶는 사람이 10억명이란 사실, 미국에서조차 아이들이 굶는다는 사실에 비통함을 견딜 수 없었다고 한다.
"나는 내가 낳은 딸에게 내 몸을 먹였건만. 나중에 낳은 아들도, 나를 빨아먹었건만. (...) 인간의 삶을 중심으로 보면, 하와Eve도 프로메테우스도 오디세우스도 우리가 아닌가. 내 삶을 중심으로 보면, 나는 세상 사람을 먹였는데도 아이들은 죽어가고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이 비통함은 얼마가지 않았다고 고백한다.
"우리 대부분은 극도로 차오른 피로감을 안다. 우리는 두려워한다. 타인들의 고통이 우리네 삶에서 기쁨을 덜어낼까봐. 고통을 겪는 사람들과 나란히 있으면 우리가 기쁨을 누리지 못할까봐. 굶주림으로 죽어가는 아이를 가까이 두어서는 안된다. 먹을 게 없어서 아이가 죽어가다니 말도 안된다. 그런 아이는 주방 창문으로 내다보는 풍경을 박살낸다."
그리하여 애써 모른 척 했다고, "비통의 문도 닫아버렸다"고. 
그녀의 고백에서 타인의 고통을 모른 체 할 수 없는 사람이 가진 감수성과 죄책감, 인류애를 본다. 그리고 그것은 우리 모두가 가진 보편적 감정임을.
문을 닫아버렸으나, "자물쇠까지 잠그지는 못했"던 그녀는, 막대한 노력이 들어갔음이 분명한 결실, 이 책을 저술해낸다. 

세계 각지에서는 기아를 해결하기 위해 노력하고, 동시에 어느 한쪽에서는 사람들의 병리적 행동을 방조하는 건 아닌지, 일할 동기 부여에 방해가 되는 건 아닌지 우려의 목소리를 낸다. 
저자는 단호하게 말한다. "당신이 19세기에 살고 있지 않는 이상, 그런 주장은 여섯 살배기 한 아이를 보는 순간 설득력을 잃고 만다."

단식의 이로움을 설파하는 사람들도 많다. 
자살을 위해 단식을 했던 헨리 S. 테너가, 열흘의 단식 뒤 건강이 현저하게 좋아져 "몸 자체가 지닌 회복력"에 관한 순회강연을 다녔다는 것도 흥미로운 사례다. 
그러나 의학계는 대체로 이에 회의적이라고 한다. 반면 소식의 이로움에는 대체로 의견이 모이고 있다고. 
단, 아래의 사항 역시 주시해야겠다.
"그러나 모든 배고픔은 거의 예외 없이 부정적인 정서 반응을 유발한다. 배고픔의 메커니즘은 약간의 괴롭힘이다." 

책 전반에 걸쳐, 저자는 굶주림이 인체에 미치는 영향과 그 과정을 과학적이고 체계적으로 설명하고 있다. 
여러 종교(불교, 힌두교, 이슬람교 등)에서의 단식 역시 적지 않게 다뤄지고 있으며,
영국의 여성 참정권 운동가들이 어떻게 단식 투쟁을 했는지, 정부가 어떻게 그들을 막았는지는 여권 신장의 힘겨운 역사를,
마하트마 간디의 수십 차례에 걸친 단식 투쟁은 인도의 역사를 여실히 보여준다.
또한, 1981년 봄부터 여름사이 옥중에서 사망한 10인의 아일랜드 공화국군의 단식투쟁은, 잃어가던 대중의 지지를 되살렸다고 한다. 
단식 투쟁에 관한 윤리는 진화하고 있고, 인용된 에릭 에릭슨에 의하면 이것은 "숭고한 행위 못지 않게 타락한 행위가 될 수 있"지만, 
저자는 이것을 짚는다.
"그들의 무력함이 곧 그들이 바치는 제물이다. 그렇게 드러내는 약함이 그들이 지닌 힘이다."

7장 <굶주림 질병 연구>는 나치의 유대인 학살을 조명하고 있다. 
숫자만으로도 울컥할 수 있다는 처음 알았다. 
"1941년, 점령당한 폴란드에서 허용된 1일 배급량은 독일인 2,613칼로리, 폴란드인 699칼로리, 유대인 184칼로리였다."
약 3년 동안 나치의 공식 정책은 기근이었고, 바르샤바 게토의 최고 책임자는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유대인들은 굶주림과 궁핍에 시달리다 사라질테니, 유대인 문제 중에서 남을 것은 오직 공동묘지뿐이다."
끊임없이 프리모 레비의 책 제목을 상기할 수밖에 없었다. <이것이 인간인가>.
병원이 있었으나 그 열악함으로 누군가는 "이 불쌍한 아이들의 목숨을 연장하지 않는 것이 훨씬 더 인간적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말한다.
유대인에게는 의사라는 직함조차 허용되지 않았던 이때, 많은 의료 장비도, 연구실도 없었으나, 그들은 한 분야의 본격적인 연구에 돌입하고 성과를 이룩한다.
바로 굶주림에 대한 연구. 풍족한 것은 오로지 굶주림을 연구할 실험대상이었으므로. 
그들 스스로도 유대인 학살의 피해자였던 연구자들은 죽어가는 여인의 혈액을 검사하고, 윗몸일으키기를 시키기도 한다. 이것을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 
"의사들은 구슬렸다. 윗몸일으키기를 한 번만 더 해 보라고. 주삿바늘을 한 번만 더 꼽자고. 그러면서 다짐했다. 이 처참한 참상에서 어떤 의미를 이끌어낼 수도 있다고, 배우고 대대로 전해줄 무엇인가를 얻어낼지도 모른다고."
지옥과 다르지 않던 곳에서 의미를 찾던 그들 역시 대개는 살아남지 못한다. 그러나 굶주림 질병 연구 논문의 서문은 이렇게 씌어졌다. 
"그러니 그대는 그대가 이룩한 일로써 그 졸개에게 대답할 수 있을 것이다. 내가 아주 죽지는 않으리라고."

그 외에도 세계 각지의 수많은 연구들로 "제2차 세계대전은 배고픔이 풍성했던, 굶주림 연구의 보고였음이 드러났다."
소위 "미네소타 실험"으로 불리는 기아 연구에서, 전쟁의 양심적 병역 거부자들은 자진하여 의학 실험용 기니피그가 되기도 했다. 
이 실험은 기아가 인간에게 어떤 영향을 주는지 여실히 보여준다. 
심신이 건강한 남성들로 구성된 피험자들은 정해진 기간 내, 안전과 정상적 환경이 보장된 실험이 이뤄졌음에도, 태도와 정신이 바뀌게 된다. 
기아는 그들에게 평정심, 관용, 참을성을 앗아갔고, 우울증은 물론 심지어 손가락을 자르는 자해를 하게 만든다.
실험이 끝난 뒤 신경과민을 호소하던 사람들은 호전되었으나 대부분은 과체중이었고, 무기력감과 부종을 느끼는 사람도 있었다.

9장 <배고픔 인류학> 역시 굶주림이 하나의 문화권 전체를 어떻게 처절하게 변화시키는지 잘 보여준다.
오랫동안 굶주림에 시달려온 아프리카 여러 종족의 비정함, 중국의 식인 행위. 1959년 이후까지 그런 일이 있었다는 사실이 듣기만 해도 힘겹다. 
제 아이의 죽음 앞에서조차 태연자약할 수밖에 없게 만드는 굶주림의 폭력.

그녀가 전하는 숫자들. 
약 8억 명이 만성 영양실조에 걸린 채 세상을 살아간다.
이세상 곳곳에서 어린이가 1분에 11명씩 죽는다. 어린이 1억 5,000만명은 저체중, 1억 8,200만명은 발육부진.
과테말라에서는 5세 미만 어린이의 절반 가까이가 만성 영양실조이며, 약 16퍼센트는 급성 영양실조에 시달린다고 한다.
기근을 겪은 태아는 성인으로 살아가는 동안 내내 영향을 받고, 심지어 양극성 장애나 정신병으로 이어지기도 한다고. 

책의 말미, 저자는 모두의 각성을 강하게 촉구한다.
"무엇을 해야 할지 모르겠다는 말이, 세상 사람들 입에서 더는 나오지 못하게 해야 하니까. 우리는 모르는 게 아니니까. 행동을 하지 않는 것뿐이니까."
"어른이 굶는 건, 현재의 문제이다. 아이가 굶주리면, 차원이 달라진다. 미래에도 문제가 된다. 아이는 되어가는 과정에 있는, 잠재성을 지닌 존재이기 때문이다."
"이제는 정말 둘러댈 핑계가 없다. 굶주림을 없애기 위해 우리가 삶의 복잡성과 다양성을 포기할 필요는 없다. 우리는 그 전부를 다 누릴 수 있다. 그저 우리의 탐욕스러움을 탓할밖에."

마지막 장은 <아일랜드 여행>이다. 
피할 수도 있는 재난을 방치한 대가로, 무수히 많은 사람들을 죽어가게 한 아일랜드의 대기근. 그들은 역사를 잊지 않았다. 
"아일랜드 대기근의 유산은 복합적이다. 분노와 죄책감과 내면화된 정의감이 혼재한다. 그러나 대기근 이야기에서 무엇보다 놀라운 것은, 아마도 가장 놀랍도록 희망찬 것은, 오늘날의 아일랜드 상황일 것이다."
아일랜드의 발전과 성 패트릭의 전설을 이야기하며 저자는 책을 끝맺는다. 
"그 단식 앞에서, 하느님조차 굴복했다"고. 

제목에, 건방지게도 "배고픔에 관해 우리가 알아야 할 모든 것" 이라고 붙였다.
세상 어딘가에서는 단지 먹지 못해서 사람이 죽어가고 있다는 것.
그리고 우리는 그것을 일말이라도 도울 수 있다는 것.
죄책감을 이용하는 종류의 마케팅에 찬성하지 않지만, 그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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