反기업 인문학 - 인문학은 어떻게 자본의 포로가 되었는가?
박민영 지음 / 인물과사상사 / 2018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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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한쪽에서는 인문학 열풍이란 말이, 다른 한쪽에서는 인문학이 위기에 처했다는 말이 들린다. 어떻게 동시에 가능한 걸까. 

저자는 '기업 인문학'이란 개념으로 이 현상을 설명한다. 유행하는 것은 '기업 인문학'이요, 존폐의 위기에 놓인 것은 '정통 인문학'이다. 


신자유주의의 광풍이 대학이라고 피해갈쏘냐. 저자는 학생들이 취업이 잘 되는 학과에 몰리고, 비인기학과는 통폐합 되는 등 존립의 위기에 처한 것에 주목한다. 비인기학과는 대개 인문학이고, 비정규직 인문학자(시간 강사 등)들은 위기에 처한다. 그에 따르면,  "인문학은 죽음의 학문이 되었다."(p37) 이는 은유에 그치지 않아서 자살 또한 적지 않다고.

"신자유주의 시대의 주된 통치 전략은 대중이 시간과 돈에 허덕이게 만들어 무기력, 무저항의 상태로 만들어버리는 것이다."(p48)

그 전략은 인문학자에게도 침투된다고 한다. 정부의 학술 연구 지원은 인문학자의 순수한 연구를 더욱 망가뜨린다는 것. 국가 정책에 합치하는 연구를 하게 되어 인문학의 비판정신을 없앤다. 그나마도 인문학 분야에 대한 지원은 타 분야에 비해 적다. 

"인문학은 기본적으로 반성적 학문이다. (중략) 이런 반성적 학문들은 인간의 지성과 학문의 발달, 사회와 역사의 진보에서 꼭 필요하다. 그러나 그를 통해 발달하는 비판적 이성과 안목은 기득권자들에게 불편함(불쾌함)을 안겨주기 쉽다."(p72)

저자가 '인문학'과 구분해 사용하는 '기업 인문학'이란 기업 이익과 자기계발에 복무하는 인문학이다. 보편적으로 쓰는 말은 아니나, 문제의 본질을 파헤치고 정통 인문학과 구분하기 위해 사용했다고 한다. 인문학은 세상 모든 것에 대해 질문하고 비판하는 학문인데, '기업 인문학'은 인문학이 기업 이익의 논리에 복무하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는 설명이다. 저자에 따르면, 기업 인문학은 하나의 수단으로서 목적(생존, 출세, 성공, 경제적 이익)에 복무하고, 정통 인문학은 존재 그 자체가 목적이다. 

"기업 인문학은 앞서 말했듯이 인문학의 성격을 근본적으로 변화시킨다. 그 과정은 이렇다. 우선 기업들은 자신의 거대한 자본권력을 동원해 자신이 원하는 인문학을 요구한다. 그 요구에 따르는 대중이 많아짐에 따라 '기업의 요구'는 '사회의 요구', '대중의 요구'로 비화한다. 그것은 거대한 '기업 인문학 시장'을 만들어낸다. 기업 인문학 시장이 커질수록 본격 인문학은 위축된다. 기업 인문학 시장의 요구에 타협하는 본격 인문학자, 학술 시장이나 학계에서 축출되는 본격 인문학자가 많아진다. 또 한편으로는 새로운 기업 인문학자들이 대학에서 양산된다. 그리하여 인문학은 점진적으로 기업의 식민지가 된다."(pp106-107)

저자는 좌파 지식인들의 기업 인문학 참여가 진보의 외연 확장이 아니라 지식인의 타협이고 투항이며, 결국 변하는 것은 자본가나 자본 권력이 아니라 좌파 지식인과 본격 인문학이라고 주장한다. 

책은 클레멘트 인문학(일명 '노숙자 인문학')에 대해서도 문제를 제기한다. 전형적인 자기계발의 논리로 운영되며, 소외계층에 대한 통치 및 관리의 기술이 아닌가 하는 것이다. 또한 국가주도의 평생 학습 또한 기업 주도의 국민교육으로 변질될 가능성이 있다고 한다.
 
"평생교육은 시민들에게 이로운 것이 아니라, 순응적 국민을 양산하고자 하는 국가-자본에 이로운 것이다."(p161)


"우민화는 두 가지 방향으로 진행된다. 하나는 우리가 처한 현실에 대해 잘 모르게 하는 것이다. 또 하나는 대중을 친기업적 사고로 무장시키는 것이다. 이 두가지를 관철시키기 위한 도구로 자본은 인문학을 이용한다."(p173)


사회적 경제와 협동 조합, 자선사업 또한 비판의 대상이 된다. 그것은 신자유주의의 보완재이며 체제 방어적 성격을 띤다는 것이다.

흥미로운 문제 의식이었다. 생각해볼 여지가 있다. 이 책이 아니었다면 생각해보지 못했을 것들을 돌아보게 된 것은 큰 소득이다. 모든 것에 동의할 수는 없었고, 정통 인문학과 기업 인문학의 칼같은 구분은 과도하게 느껴지기도 했다. 내가 만든 김치찌개가 정통 한식이 아니라고 한다면, 그래서 뭐?정통이 무엇인지부터 다시 이야기해봅시다. 그러나 저자의 말마따나 논지를 전개하기 위해서 필요한 구분이었다는 것에 동의한다. 모든 사안에 설득당할 수 없어도, 문제제기는 반드시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설령 정답이란 없을 때라도 마찬가지다. 

<반기업 인문학 - 박민영 지음/ 인물과사상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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