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의 하이페리온 - Egon Schiele
에곤 쉴레 지음, 신희원.정석복 옮김 / 미디어아르떼 / 2006년 8월
평점 :
품절


그의 작품이 불편했었다. 

성별을 알 수 없는 그림, 손발이 잘린 듯한 모양, 유독 별나게 그려진 나신. 

문득 궁금해졌다.

왜 그는 이런 그림을 그려야했을까.


"그의 작품은 불안정한 인간의 욕망을 긴장감 있게 그린 것이다. 어린 나이에 너무나도 앞서 있는 그의 주제는 그 시대의 미술평론가들에게 환영받지 못하였다. 그가 만들어낸 노골적인 성 표현은 일반인들에게는 불쾌함 그 자체였다. 급기야 그는 유아 유괴혐의와 음화 제작 혐의로 체포당한다.

 오스트리아는 예술작품의 가치와 예술가를 중요하게 여기는 나라이다. 

 그러므로 예술가가 체포당한 일은 예술적 열의와 자부심(또는 자만심)으로 가득 차 있던 에곤을 예술가에서 범죄자로 전락시키는 충격적인 사건이었다."


옥중일기는 그가 얼마나 열악한 상황에 처했는지 보여준다. 

수감 생활 자체의 고역은 물론, 예술가로서의 에곤 쉴레를 드러내기도 한다.


간수가 명령한 청소에 기쁨을 느끼기도 한다. 

"이러한 요구는 자존심 상하는 일이었다. 그럼에도 나는 이 일 때문에 행복했다. 그냥 바쁘다는 것은 하나의 축복이었다."


그는 손톱이 부러지고, 팔다리가 아플만큼 열심히 하여, "일종의 자부심까지" 느낄 정도가 되어 간수를 기다렸으나,

간수는 침을 뱉고 그를 치욕에 빠뜨린다.

세상의 모든 고문은 서로 약속한 바가 있는 걸까. 


"사람들은 어째서 이렇게 다른 사람들을 치욕에 빠뜨리면서 즐거움을 느낄 수 있는 것일까? 이러한 악한 마음은 어디서 나오는 것일까?

 이렇게 악한 일이 어떻게 가능할까? 나는 형을 선고받지 않은 상태인 것이다! 왜 그 사람들은 이렇게까지 하면서 나에게 벌을 주기를 바라는 지경까지 이르게 된 것인가?"


그럼에도 그 수렁에서도 기쁨을 찾아낸 에곤 쉴레.


"나는 감옥 안의 간이 침대에 그림을 그렸다. 더러운 회색 담요들의 한가운데에서 V가 내게 가져다 준 불타오르는 하나의 오렌지는 방 안에서 단 하나의 밝은 빛이었다. 이렇게 작은, 색깔이 영롱한 한 개의 점은 나에게 형언할 수 없는 기쁨을 가져다주었다."


"원초적으로 신은 영원하다. 인간은 그를 부처, 조로아스터, 오시리스, 제우스 또는 예수라고 부르며 이들 신 다음으로 가장 신적이며 신과 같이 무한한 것은 예술이다. 예술은 현대적이라고 할 수 없는데 예술은 원초적으로 영원하기 때문이다."


인간을 사랑스럽게 여기지 않으면서도, 끊임없이 다름아닌 인간을 그렸다는데서, 

주제넘게 그를 향한 연민을 느낀다.


취향을 떠나, 울림이 있다. 강렬하다. 

그의 그림이 누군가에겐 위로가 될 것이라 믿어 의심치 않는다.

예술은 결코 이런 식으로 탄압받진 말아야 했다. 


<에곤 쉴레_ 세상의 하이페리온 - 에곤 쉴레 지음, 신희원·정석복 옮김, 김기태 엮음/ 미디어아르떼MediaAr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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