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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존자
안토니오 스쿠라티 지음, 이현경 옮김 / 낭기열라 / 2007년 10월
평점 :
절판
생존자를 처음 읽기 시작하자 호흡이 가빠지면서 단숨에 읽어버리고 싶어 마음이 급해졌다. '도대체 왜?' 라는 계속되는 질문에 답을 얻을 수 있을 것 같았기 때문이다. 오리무중에서 뭔가 명료한 것을 붙잡고 싶은 심정이었던 것 같다.
돌이켜 보면 그 시절 나 역시 거의 살의까지 치닫는 적의를 '그들'에 대해 느꼈던 적이 많았으므로... 비탈리아노가 한번은 나타나 마레스칼키 선생에게 자기 행동의 의미를, 이유를 말해주기를 기대했다. 그러나 비탈리아노는 선생의 일기장에 담긴 과거의 모습과 텅 빈 엽서 한 장을 제외하고는 끝내 나타나지 않았다.
그 사건에 대한 정치가, 형사와 검사, 범죄심리학자, 피해자, 그 도시의 주민들, 등등 각각의 입장들과, 그 사건까지 치닫게 한 원인이 자신과 비탈리아노 사이의 관계에 있다는 마레스칼키 선생의 생각이 씨실과 날실로 교차하며 소설을 구성하고 있지만, 그리하여 사회적인 관점과 개인적인 관점이 적절히 배합되어 있지만, 책장을 덮고 나서는 오히려 더 혼란스러워졌고, 정말 마레스칼키의 말대로 그 사건은 오로지 자신과 비탈리아노 둘 사이의 문제에 지나지 않는 건 아닌가 싶어졌다.
'학생이 선생을, 젊은 세대가 앞선 세대를, 미성숙한 자가 성숙한 자를, 공격하고 파괴하는 사건들 전체의 집합'에 대한 사회적인 분석이 아니라, 그야말로 인간 대 인간의, 결코 불완전하고 미성숙할 수밖에 없는, 성찰없이 타락해가는 인간들과, 그런 인간들의 집합 속에서 그런 세상속에서 자신을 찾으려고 애를 쓰다가 결국 그 속에서 길을 잃고 마는 인간들의 초상은 아니었을까. 이런 관점에서 보면 "이런 잔학한 범죄가 어떻게 가능할 수 있는가, 말세로구나" 하는 판에 박힌 한탄은 어쩌면 빗나간 시선일 수도 있겠다 싶다.
작가가 말하고자 한 것도 결국은 그런 병적인 사회현상에 대한 진단이 아니었던 게 아닐까, 그 자극적인 소재를 통해 오히려 인간 사이의 사랑을, 그 어긋나고 비틀어지기 쉬운 사랑을 말하려했던 건 아닐까 그런 의심을 품게 된다. 아니 어쩌면 안드레아는 비탈리아노를 과거의 자신과 동일시하고 있으므로 20년이란 세월을 뛰어넘은 자기애에 관한 이야기는 아니었을까...
그래서, 비탈리아노와 마레스칼키 선생의 관계에 초점을 맞춰 다시 읽어봐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그러고 보니, 그 모든 사건의 혼란이 한편의 악몽처럼 지나가버렸다는 생각도 든다. 장담하건대 그런 사건은 어느날 갑자기 생겨난 현대의 괴물이 아니다. 인간의 역사는 상식으로 설명할 수 없는 잔혹함으로 점철되어 있지 않은가. 원하든 원하지 않든 경악스러운 잔인함은 완전히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자살을 결심했다가 생각을 바꾸고 다시 교사 생활을 이어가는 마레스칼키(솔직히 난 그가 죽길 바랐다, 죽어서 그 끔찍한 현실에서 달아날 수 있기를 바랐다)는 악몽의 기억을 아무도 보지 못하는 무의식 속에(텅 빈 엽서 한 장에 담긴 머나먼 땅 멕시코에) 묻어둔 채, 세상의 '이러함'을 묵인하고 그저 나날을 살아가는 것일 터이다. 우리 대부분이 그러하듯이. 이렇게 또 다시, 삶 자체가 악몽이라는 뒤틀린 결론으로 치닫고 마는 건... 결국 생존자가 아니라 그 속에서 나 자신의 생각을 찾아내려한 지극히 개인적인 독서의 결과가 아닌가 또 다시 자책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