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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콧 니어링 자서전 ㅣ 역사 인물 찾기 11
스콧 니어링 지음, 김라합 옮김 / 실천문학사 / 2000년 5월
평점 :
그의 아내, 헬렌 니어링이 그녀의 자전적 에세이 '아름다운 삶, 사랑 그리고 마무리'에서 20살의 나이차이, 당시 실직과 학계로부터의 외면을 받았던 어려운 상황에서도 결혼을 할 수 있었던 이유는 무엇인가? 에 대한 답변으로 "전 제가 존경하는 그 분의 이름 '니어링'을 함께 쓴다는 것만으로 행복합니다."라고 하였다. 얼마나 존경하는 대상이고 거룩하기에 이런 답변을 할 수 있을까라는 생각은 이 책을 읽고 나서는 이전의 먼 것이 되고만다.
다소 윤택한 가정 환경에서 태어났지만 그가 인생의 스승이라 말하는 어머니, 할아버지, 대학 은사인 패튼 교수, 톨스토이 등에 의해 시대 순응적인 인간형이 되기보다는 '인류애'를 몸소 실천하는 조용한 혁명가의 길을 걷게 된다.
"간소하고 질서있는 생활을 할 것. 미리 계획을 세울 것. 일관성을 유지할 것. 꼭 필요하지 않은 일은 멀리할 것. 되도록 마음이 흐트러지지 않도록 할 것. 그날그날 자연과 사람 사이의 가치있는 만남을 이루어가고, 노동으로 생계를 세울 것. 자료를 모으고 체계를 세울 것. 연구에 온 힘을 쏟고 방향성을 지킬 것. 쓰고 강연하며 가르칠 것. 원초적이고 우주적인 힘에 대한 이해를 넓힐 것. 계속해서 배우고 익혀 점차통일되고 원만하며, 균형잡힌 인격체를 완성할 것."
위대한 사람들이 위대한 이유는 분명히 존재한다.
위의 글은 스콧니어링 선생님의 좌우명으로 평생을 가슴 깊이 새겨둔 것이다.
100년이라는 시간속에서 100편의 저작과 숨을 거두시기 전까지 독서를 하고, 강연에 대한 열정을 잃지 않으신 이면에는 언제나 삶의 사명감이 힘을 준 동기였으리라.
교육이란 평생을 두고 하는 것이라는 생각으로 진리탐구를 위해 독서와 다양한 사람들간의 커뮤니케이션을 중시하였다. 아울러 교육 받지 못한 사람들을 위해서도 관심을 두고 진정한 '교육자'로서의 길을 걷게된다.
우리 교육에서도 문제되듯, '암기식'의 상명하달 지식전달체계에 염증을 느낀 그였기에 더욱 더 교육의 중요성을 깨닫고 교육자로서의 무한한 사명감을 가지고 임하지만 현실은 냉혹하다.
냉혹한 현실속에서도 좌절하지 않고 "삶의 수단이나 목표가 비열하고 저급하다면, 그 인생은 살 만한 가치가 없으며 자존심을 유지할 수도 없다. 지식을 습득하고 이용하는 데에도 올바른 동기가 밑바탕이 되어야 하며, 그 지식을 말과 행동에 적용하고 생계수단으로 삼아야 한다. 며 마음을 더욱 가다듬는다.
수없이 많은 강연을 하기 위해 돌아다닌 그이지만 자신은 여전히 수학 중이며 아직 슈리 라마크리슈나가 말한 '인간은 지식이 일천한 동안은 가르치고 설교하러 돌아다니지만, 완벽한 지식을 습득했을 때는 자신의 지식을 슬데없이 과시하지 않는다'의 이유를 들며 여전히 부족하다고 생각한다.
학자의 양보할 수 없는 영역인 '자신의 사상과 견해를 밝히는 것'이 탄압받고 그것으로 그는 직장과 동료를 잃게 된다.
아울러 전시상황이라는 이유로 사회자체도 그를 변두리로 몰아세운다. 그러나 그는 학자의 양심에서 비도덕적이며 부당한 일에 대해 방관할 수 만은 없다고 생각하여 '공산주의자'가 된다. 물론 그는 이전부터 어느 특정 정파에 가입하거나 지지할 생각은 없었으나 현재 소수독재체제로 접어드는 비이성적인 자본주의의 폐단을 막는 길은 부족한 공산주의를 제대로 뿌리내리게 하는 길이라 믿는다.
어쩜 이 같은 모든 상황에서 그는 '미국은 없다'라며 외치는 모습이 19세기 외로운 철학자 '니체'를 닮았으리라. 공산주의 역시 그와의 이견을 이유로 축출해버리고 마는 지경에 이른다. 어려운 상황에서도 절대 비난하거나 하지 않고 냇가의 물이 흐르는 것과 같은 순리라고 생각한다.
이 순간 그는 '이 열다섯 해의 시간이 나에게 어떤 영향을 미쳤는가? 거기서 나는 무엇을 배웠는가? 이 세월은 나를 거칠게 몰아붙이고, 결국은 나를 추방된 사람으로 만들었음'을 직시한다. 그리고 이유를 내가 부와 가난 사이의 극심한 모순과 착취의 불공정, 계획적인 대량살상과 파괴를 폭로했기 때문으로 파악한다. 그래서 평화주의자, 채식주의자, 사회주의자가 되기로 결심을 굳히는 계기가 된다.
소수독재체제에 의해 커뮤니케이션 수단이 통제되고, 독립 초기의 정신을 믿었던 조국으로부터의 배신감 등은 그를 자급농의 길로 들어서게 하는 이유가 되었다.
이때 헬렌 노드라는 20살 연하의 여성을 만나 결혼을 하게 되고 본격적인 버몬트에서의 자급자족 영농생활을 살아가게 된다. 삶의 이야기를 책으로 쓰고, 진보적인 잡지에 글이 게재되는 등의 이유로 유명해져서 이 시대적 타락에 대한 대안으로 니어링 부부와 같은 '자급농' 되어보려는 사람과 이 부부를 존경하는 사람들로 오지는 쉼 없이 손님을 치렀다.
자연이 주는 모든 것에 감사하며 필요한 만큼만 수확하며 나머지는 모두 자연에게 돌려준다. 주변 스키장 조성등의 개발붐으로 오지가 천정부지의 땅값 폭등이 되어도 모두 사회단체에 기부하고 더 깊숙한 오지를 찾아 떠나는 모습은 많은 이로 하여금 숙연하게 하는 장면이었다.
20여년간의 오지생활이 익숙해져갈때쯤 다시금 '미국 전역을 돌아다니며 강연'을 하겠다는 의욕과 열정이 생긴 이유를 '20세기 서구가 직면한 운명에 관하여 내 자신과 다른 사람들을 눈뜨게 할 수 있는 일을 하면서 보내기로 한 것은 새로운 사회체제의 도래를 앞당긴다는 엄청난 과업을 돕기 위함'이라 했다.
그리고 '20세기의 진짜 쇼는 서구 문명의 절정과 몰락의 징후를 엿볼 수 있는 전쟁과 제국 건설, 혁명과 사회주의 건설의 드라마'라며 곧 다가올 '대안적 사회주의 공동체'에 많은 희망을 드러냈다. 그리고 현재 사회주의 위기에 대해서는 '천재는 실수를 안 하는 사람이 아니라 , 바른길을 마음속에 그리며 그것을 발견할 때까지 계속 앞으로 나가는 사람이다'라며 에디슨의 사례를 들어 전구에 빛을 밝히는 그날까지 투쟁할 것임을 사력했다.
이러한 날이 오기를 모두가 함께 희망하고 노력해야한다라며 과거에서 벗어나 과거가 주는 교훈을 배우고, 미래의 한 부분으로서 느끼고 생각하고 행동하기 시작하기를 열망하였다.
스콧니어링은 남아있는 모든 후세에게 아래의 메세지를 남겼다.
'우리는 과연 더 많은 사람이 인류 발전에 기여할 수 있는 기회를 더 많이 제공하게 될 삶의 방식으로의 전환을 관철시키는데 관심을 가지고 있는가? 만약 그렇다면, 그 숭고한 목표를 염두에 두고 매순간 치열한 싸움을 수행하는 것이 우리의 의무이다. 이 목적을 위해 우리는 세상에 태어났다. 이것이 우리의 운명이다.'
그가 말한대로 현재 치열한 싸움은 계속된다. 삶이 있고, 열정이 있고, 목적과 기능과 경험이 있는 한 진보는 이루어질 것이다.
인간이 모두 요람에서 똑같이 시작하였지만, 그와 동시대를 살다간 이상주의자 '히틀러' '무솔리니' 와 '스콧니어링'의 삶의 목적과 과정 그리고 미래의 전망이 이 얼마나 차이가 나며, 이로 인해 인류는 얼마나 큰 비애를 떠안게 되었는지를 결코 잊어서는 안 될 것이다.
그대 청년이여! 삶이 소중하고 열정이 있으며 현재 무엇인가를 배우고 경험하고 있다면 '자신'을 자신만의 것으로 보지 말고 인류의 한 사람으로서 전 우주의 한 사람으로서 '밝은 미래'를 위해 변화해야 하는 것이 오늘을 사는 후세에게 해 준 그의 메세지가 부끄럽지 않은 길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