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인 조르바
니코스 카잔차키스 지음, 이윤기 옮김 / 열린책들 / 2000년 4월
평점 :
구판절판


인생을 사는 목적이 무엇이냐고 묻지요?

 무엇이 행복하냐고?

 죽음은 무엇이냐고?

 

 

 아무리 책을 뒤지고 뒤져봐도 위에 대한 대답은 묵묵부답입니다.

 저자인 카잔차키스는 여행중 그리스인 조르바를 만나고 사업제안을 하게 됩니다.

 그리고 그둘은 의기투합하여 크레타섬으로 향합니다.

 

 하나는 책만 파며 진리를 찾는 사람이고,

 또 다른 하나는 책과는 거리가 멀지만 자신의 삶을 토대로 그에 맞장구 칩니다.

 

 누가 옳은지는 500여 페이지되는 책장을 넘겨야 알겠지만,

 우리내 인생사와 아주 맞닿뜨려 있는 것은 사실입니다.

 

 나는 예수를 비롯한 절대성인에 대해서 책을 통해 알았고 '부처'라는 시대에 찾을 수 있는 마지막 성인을 알기위해 오늘도 불경을 해독하고 있지만 도무지 무식쟁이 노동자 '조르바'의 말에 자꾸만 귀기울여지는 이유를 처음에는 알 수 없습니다.

 

 하나둘씩 자기자신에의 질문을 조르바에게 쏟아놓는 '나'는 조르바의 거침없는 직설적인 답변에 매우 놀랍니다.

 처음에는 무식쟁이 늙은 노동자의 말을 한귀로 듣고 흘리지만, 어느 순간 그것이 진리일 수 있겠다는 내면의 의심을 하게됩니다.

 그와의 대화속에 '책'이 아닌 '삶의 경험'에서 우러나오는 진솔하고 정곡을 찌르는 말은 '나'를 물들이고, 조르바를 어느새 '성인'의 말씀의 반열에 올려놓게 됩니다.

 

 어디부터 시작해서 어디로 끝나는지 삶은 계속해서 질문하지만 대답할길이 막막해 '미궁'을 헤매던 '나'에게 조르바는 눈 앞의 '성인'입니다.

 

 인간의 영혼이란 기후, 침묵 , 고독, 함께 있는 사람에 따라 눈부시게 달라질 수 있는 것이네 라며 다독이는 공자의 가르침이 어느새 '나'에게 조르바와의 관계에 대해 강요하고 있는듯합니다.

 

 진정한 행복이란 이런 것인가. 야망이 없으면서도 세상의 야망은 다 품은 듯이 말처럼 뼈가 휘도록 일하는것. 사람들에게서 멀리 떠나, 사람을 필요로 하지 않되 사람을 사랑하며 사는것,  이런 생각을 하며 '나'가 생각해온 진리와의 비교를 현재의 삶속에서 끊임 없이 되새깁니다.

 

 그리고 또, "자기 자신 안에 행복의 근원을 잃지 않은 자에게 화 있을진저!, 남을 즐겁게 하려는 자에게 화 있을진저! 금생과 내생이 하나임을 깨닫지 모˜릿?자에게 화 있을진저!" 자신이 믿었던 진리에 대해 다시금 의심을 품기 시작합니다.

 

 하지만 실로,  눈 앞의 무식쟁이 막가파 조르바가 부럽다. 그는 살과 피로 싸우고 죽이고 입을 맞추면서 내가 펜과 잉크로 배우려던 것들을 고스란히 살아온 것이다. 내가 고독 속에서 의자에 늘어붙어 풀어 보려고 하던 문제를 이 사나이는 칼 한 자루로 산속의 맑은 대기를 마시며 풀어 버린 것이었다. 라며 인정해버립니다.

 

 이전부터 깨닫기 위한 질문들을 조르바를 통해서 찾는다. 세계란 무엇일까?  세상의 목적은 무엇이며 우리 한순간의 목숨이 어떻게하여 세상의 목적을 이룰 수 있을까? 조르바에 따르면 인간이나 사람의 목적은 쾌락을 창조하는 것이었다. 혹자는 정신을 창출하는 것이라고 하겠지만 한 차원을 높여서 보면 똑같은 말에 지나지 않았다. 라며 조르바를 두둔하는 그를 발견할 수 있습니다.

 

 결국 수 많은 진리탐구의 과정중 '성인'들이 아닌 한 늙은 노동자로부터 깨달음을 얻은 '나'는 자서전에서 <내 삶을 풍부하게 해준 것은 여행과 꿈이었다. 내 영혼에 깊은 골을 남긴 사람이 누구누구냐고 묻는다면 나는 이렇게 꼽을 것이다. 호메로스, 베르그송, 니체, 조르바 '''> 라며 말을 낸윱求?

 

 카잔차키스의 묘비명에는 '나느 아무것도 바라지 않는다. 나는 아무것도 두려워하지 않는다. 나는 자유이므로...>

 

 지금도 그는 그리스의 당대의 지성인으로써 영원의 삶을 살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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