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스
어빈 웰시 지음, 김지선 옮김 / 단숨 / 2013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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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우리는 피카레스크 소설을 읽으려 하는가. 그것은 대리만족일지도 모른다. 거짓말을 하고 돈을 훔치고 여자를 범하고 게이와 깜둥이와 외국인 노동자를 차별하는(물론 요즘은 PC하지 않는 것도 죄악일테니) 주인공의 모습에서 우리는 억압에서 풀려나 날뛰는 자신의 야성을 본다. 한 번은 해보고 싶었던 말들, 한 번 정도 그려본 입에 담기도 힘들 추악한 상상들.


이렇게까지 추접스런 말들을 읽은 적이 없다. <필스>는 처음부터 끝까지 갈보, 보지, 자지, 씨발, 씹쌔끼로 가득차 있는 더러움에 대한 500쪽 짜리 사전이다. 부패한 경찰은 크리스마스 직전의 에딘버러를 방황하면서 술을 마시고, 코카인을 빨아들이고, 발진이 난 허벅지를 긁어대고, 더 썬을 보면서 딸딸이를 치고, 미성년자를 겁탈하고 수간 포르노를 찍으려 시도한다. 어빈 웰시는 독자로 하여금 내가 너무 착하게 살고 있는 것은 아닌지 의심하게 만들 정도로 경쟁과 중상모략으로 얼룩진 세계를 직조해낸다. 그 세계는 그러나 탄생과 동시에 허물어지면서, 부패경찰의 내면은 뱃속 촌충의 입을 통해 서서히 실체를 드러낸다. 경찰이 자신을 '나는'이 아닌 '우리는'으로 표현하면서 기생충과 하나가 되는 순간, 우리는 고통스러운 과거로 얼룩진, 그리하여 폭력과 욕망으로 자신을 포장할 수 밖에 없었던 영혼을 만난다.


다시 한 번, 왜 우리는 피카레스크 소설을 읽으려 하는가. 그것은 대리만족인지도 모른다. 그 모든 악행은 우리가 모르고 살려 애쓰는 진실들이고 우리는 악한의 모습에서 억압에서 풀려나 날뛰는 우리 자신의 야성을 본다. 그러나 <필스>는 파멸하는 악당들의 활극이 아니다. 그보다는 끝까지 구제받을 수 없었던 남자의 추락에 가깝다. 남자는 태어날 때부터 예정되어 있었던 삶의 굴레를 결코 벗어날 수 없었고 마지막에는 자신의 딸에게 대물림한다. 우리는 단지 다가올 파멸을 갈구하는 건지도 모른다.


14/09/20에.

http://kidsmoke.egloos.com/3006237



"그걸 진짜로 믿나?"
"당연하지. 결혼 상담을 하는 그 등신들은 죄다 개똥 같은 것들이야. 결혼 문제의 근원은 항상 섹스거든. 여자들은 떡을 쳐주는 걸 좋아해. 겉으로야 뭐라고 하든. 만약 자네가 떡을 쳐줘야 할 여자한테 제대로 해주지 않으면 보지에 진공 상태가 생기는 거야. 자연은 그런 걸 싫어한다고. 그러면 다른 새끼가 거길 메우게 되는 거지, 몇 인치짜리 최상급 고깃덩어리로 말이야." 64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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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라인드 사이트 퍼즐 픽션 Puzzle Fiction 4
피터 와츠 지음, 김창규 옮김 / 이지북 / 2011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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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라인드 사이트>는 이제까지 읽어온 SF 중 가장 단단하다. 아마 한국어로 출간된 가장 하드한 SF가 아닐까 싶은데, 너무 단단해서 감정은 커녕 칼로 찔러도 피 한 방울 나지 않을 것 같다. 듣도 보도 못한 전문용어, 몇번이나 되풀이해 읽어도 이해하기 힘든 개념이 끊임없이 나온다. 이 소설의 실체를 대강 파악하기 위해 부록으로 실려 있는 작가의 흡혈귀에 대한 <부연 설명>을 훑어보자.


"호모 사피엔스 뱀피리스Homo Sapiens Vampiris는 단명한 인간 변종이다. 이 변종은 지금으로부터 70만 년 전경에 선조에게서 분화했다. … 흡혈귀의 망막은 4색 선택성이었다. 네번째 추상체는 적외선 부근의 가시광선에 민감했다. 세포 간 백질이 상대적으로 부족했기 때문에 회백질은 비교적 '연결성이 떨어졌다'. 따라서 대뇌피질은 자급자족을 할 수밖에 없었고 효율이 극단적으로 증가했다. 그 결과 학자증후군 수준으로 패턴을 비교할 수 있었고 분석 기술도 늘어났다.

이와 같은 특성의 근원은 결국 X-염색체의 Xq21.3 블럭에서 발생한 평동원체역위 변이라고 할 수 있다. … 흡혈귀는 유전자 암호를 y-프로토카데린 Y에 지정하는 능력을 상실했다. 그 유전자는 사람과 동물의 Y 염색체에만 존재한다. 흡혈귀는 이렇게 중요한 단백질을 스스로 합성할 수 없기 때문에 음식에서 보충해야 했다. 따라서 흡혈귀의 식단에서 인간 먹잇감을 빼놓을 수가 없었다. (후략)" (503~504p)


이겤ㅋㅋㅋㅋ 뭐옄ㅋㅋㅋㅋ 작가 피터 와츠는 가능한 모든 과학적 맥락을 동원하여 흡혈귀를 브람 스토커의 허구에서 실재하는 생물종으로 되살려놓았다. 흡혈귀의 흡혈 풍습부터 어두운 곳에서 잘 보는 이유, (인용하지는 않았지만) 심지어 십자가에 약한 이유까지 설명한다. 전직 해양생물학자가 강박적으로 논문을 뒤지는 모습이 눈에 선하다. 벌써부터 매력적이다.


소설도 반쯤 정신이 나간 상태로 시작된다. 외계인의 흔적이 발견되고 그들을 맞이할 탐사대가 꾸려진다는 발단은 전통적이지만, 그들을 만나러 가는 탐사대라는 인간 조합이 1. 뇌의 반을 날려먹은 주인공 2. 다중인격자와 그와 별반 다를 바 없는 사이버네틱스 인간들, 3. 그리고 흡혈귀 선장이다. 물론 태양계의 경계에서는 파국적인 만남이 그들을 기다리고 있겠지.


이 소설이 설정만 자세한 작품이었다면 매력은 훨씬 반감되었겠지만, <블라인드 사이트>는 설정의 함정을 넘어 자각이 없는 우월한 외계인과 자각을 하는 열등한 인간의 만남을 통해 인간의 의식에 대한 도전적인 고찰을 시도한다. 근래 신경경제학 분야에서 발표되는 몇몇 연구결과들에 따르면 우리의 뇌는 의식적으로 결론을 내리기 전에 이미 무의식적으로 결론을 내려놓는다고 하지 않던가. 피터 와츠는 의식의 허상에 관한 추측을 소설을 통해 대담하게 제시한다. 지금껏 수많은 철학자들에 의해 인간의 우월함을 증명하는 훈장처럼 숭배받았던 '자의식'이라는 것이, 사실은 진화의 그저그런 부산물에 지나지 않으며 오히려 쓸모 없는 것은 아닐까. 주인공이 외계인의 구조물에서 겪는 맹시Blindsight, 보면서도 자각하지 못하는 현상이 그런 주제를 잘 전달한다.

분명 많은 사람들에게는 헛소리로 치부될 여지가 농후하지만, 이런 배짱 가득한 상상력과 통찰이야말로 SF 독자가 찾아 헤매던 경이의 순간, 센스 오브 원더가 아닌가. <블라인드 사이트>가 가진 사고의 촘촘함은 이 냉소적인 통찰을 한 번 정도는 상상할 만한 가치가 있는 것으로 만들어준다. 생각해보면 첨단의 과학은 언제나 인간을 우월의 권좌에서 끌어내려왔고, 자의식은 어쩌면 지동설과 진화론 다음 차례로 부서질지도 모르는 허상일 수도 있는 것이다.


SF, 그것도 하드 SF의 문법에 익숙하지 않으면 읽기 힘들고, 나도 내가 소설을 읽었는지 존나 논문 요약을 읽었는지 모르겠다. 매니악 하기 그지 없는 이런 책이 도대체 어떻게 번역 출간되었는지 신기할 따름이다. <블라인드 사이트>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읽어볼 만한 가치가 있는 책이다. 강박적으로 자세한 설정들, 아름다운 과학적 묘사들, 그리고 그것들이 품고 있는 통찰은 섣불리 절판의 강으로 흘려보내기엔 아쉽기 때문이다.



* 개인적으로 이 책의 하이라이트는 소설보다도 뒤에 실린 '참고 문헌'이라고 생각함. 웬 소설 하나에 레퍼런스 논문이 130개가 달려 있음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 피터 와츠Peter Watts는 캐나다 출신의 SF작가이고, 전직 해양생물학자였다. http://www.rifters.com 에서 <블라인드 사이트>에 대한 설정을 볼 수 있다(Rifters는 그가 <블라인드 사이트> 전에 쓴 삼부작의 이름이다). 소설에 나온 우주선의 구조도와 인물들, 흡혈귀에 대한 프레젠테이션 등등이 제공된다. 심지어 영어 나레이션까지 제공되는 프레젠테이션을 보고 있으면 방망이 깎는 노인처럼 설정을 지어냈을 작가를 보는 기분이다.


*** 표지 디자인은 상당히 아쉽다. 책의 내용은 호러 SF에 가까운데(근원적인 공포를 느끼게 만드는 장면이 꽤 있다), 우리나라 커버는 내용답지 않게 가볍다. 물론 공포스런 원판의 디자인을 따라갔다면 책은 전혀 팔리지 않았겠지.


**** 알라딘에 이 책에 관한 리뷰가 다섯개나 등록되어 있다. ㅋ ㅑ! 알라딘!



블로그에 썼던 리뷰(http://kidsmoke.egloos.com/2904456)를 옮겨옴.



"생명이란 건 이거냐 저거냐의 문제가 아냐. 정도의 문제지." (341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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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비트의 별 - 우주 크기의 실마리를 푼 여성 천문학자 헨리에타 리비트의 수수께끼 같은 이야기
조지 존슨 지음, 김희준 옮김, 이명균 감수 / 궁리 / 2011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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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블은 "거리가 증가하는 만큼 우리의 지식은 희미해진다"고 유창하게 웅변할 흔하지 않은 기회에 언급한 적이 있다. "결국 우리는 우리 망원경의 최종 한계인 희미한 경계에 도달한다. 거기에서 우리는 그림자를 측정하고, 귀신 같은 측정 오류들 틈에서 비슷하게 실체가 불분명한 획기적인 이정표를 찾는다."

퀘이사의 거리를 확립하는 데는 허블 법칙뿐 아니라 아인슈타인 상대성의 전반적 틀이 필요하다. 거리 측정은 이론을 확인하는데 필요한 데이터를 얻는 수단으로 출발했다. 이제 측정에 쓰이는 잣대 자체가 테스트할 또 하나의 이론이 되었다." 187p


과학의 근본은 관찰이다. 무릇 대부분의 학문이 그렇겠지만, 특히 자연과학은 꾸준하고 정확한 관찰로 쌓인 데이터가 뒷받침되지 않고서는 성립될 수 없는 학문이다. 그런데 그게 말이 쉽지 얼마나 지루하고 고된 작업인가. 까치 발목에 인식표를 달아주든 선충의 길이를 재든 술집 바닥에 성냥개비를 떨어뜨려 원주율을 측정하든, 실험실 문턱을 잠시라도 밟아본 적 있는 사람이라면 '꾸준하고 정확한 관찰'이야말로 가장 어려운 작업 중 하나임에 쉽게 동의할 것이다.

그 점에서는 천체학자들만큼 답답한 사람들도 없다. 비약적인 기술의 발전이 다른 과학 분야에 혁명을 가져다주는 동안에도 근본적으로 천체학자들의 일은 바뀌지 않았다. 한번 둘러보고 오기엔 우주가 너무 넓기에, 최근 오천년간 천체학자들이 할 수 있었던 일은 이중맹검법도 설문조사도 아닌 오직 천체 관측이기 때문이다.


그렇게 생각하면 한발자욱도 떼지 않고 광막한 우주를 그려내는 천체학자야말로 대단한 사람들이다. 히파르코스가 삼각측량법으로 달의 거리를 측정하면서 어두운 밤의 커튼을 걷어낸 이래 천체학의 역사는 근본적으로 별과 별 사이의 진공을 재어보려는 측정의 역사였다.

헨리에타 리비트는 우주의 끝을 측정하는 역사의 가장 극적인 시기인 20세기 초를 살았던 천체학자였다. 이 때 학계는 실체가 불분명한 몇몇 천체들이 우리 은하 내의 '나선 성운'인지 훨씬 멀리 떨어진 다른 '은하'인지에 대해 논쟁하고 있었다. 그녀는 세페이드 변광성의 밝기와 주기 사이의 비례관계를 찾아내면서 우주의 크기를 극적으로 넓히는 데 공헌했다. 논쟁의 대상이 된 천체들 내부에서 세페이드 변광성들이 발견되어 거리를 측정할 수 있게 되었고, 결국은 그 천체들이 수백만 광년 떨어진 은하임이 밝혀졌다. 리비트의 별이 우주를 은하수의 크기에서 현재의 크기로 넓히는데 일조한 것이다.


<리비트의 별>은 엄밀히 말해 헨리에타 리비트의 삶이 아닌 우주에 대한 인간의 인식과 그 확장의 역사가 중심이 되는 책이다(리비트의 죽음 이후로 세 개의 장이 더 소개된다는 사실이 이를 반증한다). 저자는 관측 기술의 발달에 따라 우주가 어떻게 커졌고 우주가 인간 중심의 프레임을 어떻게 벗어나는지를 보여준다. 과학의 눈으로 본 세상이 결국 인간을 정의한다는 점에서, 그리고 어디까지나 그 기초에는 관찰이 있음을 보여준다는 점에서 <리비트의 별>은 과학의 인식론적 본질의 한 끝을 들춘다.


흠, 그렇다면 우리의 주인공 리비트는 우주의 크기에 관한 거대한 논쟁에 밀려 책에서 잊혀진걸까. 그건 아닌 것 같다. 과학사를 다루는 대중서적으로 이 책이 가진 또 하나의 매력은 언제나 차별에 시달려야 했던(그리고 한 세기가 지났지만 STEM 분야에서 여전히 시달리고 있는) 여성 과학자의 삶을 조명했다는 데 있다. 작가가 찾아낸 그녀의 꿋꿋한 마지막 모습은 실로 감동적이다.


"그녀가 죽기 1년 전 1920년에 인구 조사원이 린네가에서 어머니와 함께 사는 아파트에서 그녀를 마지막으로 만났다. 이웃 중에는 교사, 캔디 회사 판매원, 은행원, 감사가 있었다. 직업이 무엇이냐고 묻자 리비트는 솔직하게 그러나 약간 도전적으로 "천문학자"라고 답했다." 175p


02/21에 읽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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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9p, 설국열차에 대한 프로이트식 해석에 대하여, 

˝아니나 다를까, 이 장면을 `첫 경험과 처녀막의 파열`을 상징하는 것으로 읽어낸 글을 어디선가 볼 수 있었다. 이런 해석은 틀렸다기보다믄 무익한 것이다. ... 프로이트적인 해석은 모든 사물을 성적 상징으로 변환하는 기술이 아니라, 이성과 의지의 산물로 보이는 행위와 사건들에 무의식적 요소가 얼마나 깊숙이 `매개`돼 있는지를 따져보는 작업이다.˝

훌륭한 지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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