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의 시대 생각의 시대 1
김용규 지음 / 김영사 / 2020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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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에 출간된 생각의 시대표지를 보고 놀랐다. 윤리 공부를 열심히 하던 고등학생 시절에 철학과에 가고 싶다는 생각으로 교보문고에서 철학, 인문학, 심리학 분야를 돌아다닐 때 눈여겨 본 책이었다. 저자는 머리말에서 초판은 4차 산업혁명의 열풍이 불기 이전에 나와 다소 때 이른 감이 있었다며 이 책의 효용은 이제 막 시작한 4차 산업혁명이 진행되어갈수록 더욱 높아질 것이다라고 말했는데 이제와 읽어보니 과연 그러했다. 비록 대학은 독어독문학과로 진학했지만 외국어를 배우면서 학업의 방향을 잡아가던 과정에서 생긴 고민의 주체가 이 책에 담겨있었다. 불과 2,3년 전의 나에게 이 책을 쥐어줬더라면 머리가 조금은 덜 아팠을지도 모른다.

 

작가는 지식의 시대를 지나 생각의 시대가 도래 했다고 주장한다. 이를 뒷받침하듯 책은 지식의 기원(1)’, ‘생각의 기원(2)’을 따라가다 다섯 가지 생각의 도구(3)’를 설명한다. 1부에서는 지식과 생각, 생각과 사고, 생각과 의식의 개념을 정리하면서 시작한다. 무엇보다 그는 언어가 사고에 미치는 영향력을 책 전체에 걸쳐 강조하며 인지신경과학자인 매리언 울프의 책 읽는 뇌의 일부분을 소개하기도 한다. 2부는 뇌는 하늘보다 넓어라로 시작하는 에밀리 디킨슨의 시를 인용하며 시작한다. 이 작품으로 인해 이야기(픽션)가 인지능력을 향상시킨다는 실험결과와 첫 번째 생각의 도구가 메타포라(은유)’인 점이 매우 설득력 있게 다가왔다. 3부의 생각의 도구에는 은유를 비롯해 아르케(원리)’, ‘로고스(문장)’, ‘아리스모스()’, ‘레토리케(수사)’가 있는데 크게 언어와 수에 해당하는 조합으로 보인다. 특히나 이 도구들로 인해 뇌가 변할 수 있다는 가능성을 강조하고 있다.

 

아리스모스()’를 설명한 장에서는 피타고라스 스타일의 수학에 대해 풀어놓은 부분이 있다. “수학을 오늘날과 같은 분과 학문이 아니라 다른 여러 학문, 예술들과 연결하여 하나의 통합 학문으로 만들었다.”, “요컨대 피타고라스는 수에 의미를 부여해 수학을 철학화했다. 그에게는 수학이 철학이고 철학이 곧 수학이다.” 사실 나는 언어를 공부하면서 수학을 복수전공으로 택했다. 수학이 과학의 또 다른 언어일 뿐이라 생각했으니까. 그가 언어와 사고의 상호작용과 수학의 진정한 가치에 대해 장장 500쪽이 넘게 기술한 페이지들을 넘기며 나는 나의 지난 대학생활도 함께 반추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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셰어하우스 플라주 블랙 앤 화이트 시리즈 90
혼다 데쓰야 지음, 권남희 옮김 / 비채 / 2020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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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어느 날 반쯤 불타 버린 집 때문에 빈털터리 신세가 된 다카오는 수소문 끝에 셰어하우스 플라주를 찾아간다. 그는 각성제 복용으로 현재 집행유예 상태니 플라주의 입주 조건에 맞는 셈이다. 셰어하우스 플라주의 이 도입부는 웹툰 원작의 드라마인 타인은 지옥이다를 떠올리게 한다. 새로 들어온 입주자인 다카오의 시점으로 플라주의 풍경과 이미 그곳을 삶의 터전으로 삼아 살아가는 인물들을 차례대로 보여줄 때 말이다. (플라주에는 전과자들만 입주가 가능하다지만 인물 묘사의 방식은 타인은 지옥이다가 훨씬 섬뜩하다.) 다카오가 이 이야기의 핵심 주인공인 것은 아니다. 이야기는 다카오를 비롯해 플라주 속 다른 입주자들의 시점으로 진행되기도 한다.

이 소설의 핵심은 제목에 들어간 플라주가 대변한다. “플라주는 프랑스어로 해변이라는 뜻이다. 바다와 육지의 경계. 그것은 항상 흔들리고 있다.”, “‘플라주는 프랑스어로 해변’. 바다와 육지의 경계선. 모호하게 계속 흔들리는 사람과 사람의 접점. 남과 여, 선과 악, 진실과 거짓, 사랑과 미움. 그리고 죄와 용서플라주를 설명한 두 문장이다. 그니까 플라주는 경계, 접점, 완충지대를 상징하는 셈이다. 이 곳의 주인인 준코는 전과자들이 죄 값을 치르고 다시 재출발할 수 있는 기회를 주고자 셰어하우스 플라주를 만들었다. 이 곳에서 같이 밥 먹고 문 대신 커튼으로 가린 채 생활한다. 일부러 그렇게 만들었다. 서로의 사연을 안타까워하기도, 사이코패스와 사랑에 빠지기도 한다. 플라주를 잠복취재하기 위해 가명으로 들어간 기자 하야미 요이치가 컴퓨터에 남긴 글에서 설명하듯 그녀는 성선설을 믿었던 사람인걸까? 플라주는 완충지대라고 하기엔 준코의 바람을 담은 판타지에 가까운 공간이 아니었을까..

사실 재소자들의 삶에 대해서 깊이 생각해 본적이 없다. 대개는 죄 값을 받아야 하는, 노골적으로 말하자면 정말 죽어 마땅한 인간들이 교묘히 법망을 피해가거나 법원이 가해자의 편을 드는 것과 다름없는 판례가 넘쳐나는 이 사회에서 범죄자들이 감옥만 들어가면 그 이후의 삶은 없어지는 게 마땅하다 여겼다. 지금도 잘 모르겠다. 물론 죄질에 따라 다를 것이다. ‘억울한 사연’, ‘순간 이성을 잃어서’, ‘인생에서 일어난 단 한 번의 치명적인 실수등의 표현은 과연 정당한 걸까. 인간은 이기적이고 불완전하지만 대개 범죄 행위를 저지르기 직전까지 가다 만다. 하지만 그들은 그 단계를 넘어선 거 아닌가. 용서란 도대체 무엇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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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려 물건 - 웬만하면 버리지 못하는 물건 애착 라이프
모호연 지음 / 지콜론북 / 2020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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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트위터에서 이런 내용의 글을 본적이 있다. “사물에 기억을 저장하는 사람들이 있다고.” 자신을 웬만하면 버리지 못하는 사람으로 칭한 작가 모호연의 반려 물건의 프롤로그에도 이런 문장이 있다. “가끔은 내가 바라보는 물건들의 상태가 지금 나의 상태가 아닌가 생각한다.” 두 이야기가 정확히 대응되는 건 아닐지 모르지만 물건을 수집하는 사람들의 사고방식을 엿볼 수 있는 대목이었다. 일단 내 손에 들어온 물건은 그 쓰임이 다해도 끈질긴 의미부여를 통해 끝내 손에서 떠나보내지 못하는 그런 사람들. 내 주위의 가까운 누군가가 떠오르기도 한다. 나도 물건 자체에 매료되는 물건애호가이지만 사는 만큼 잘 버리고 정리하기 때문에 물건을 쌓아놓고 사는 이들을 완전히 이해하기는 어렵다. 그나마 버리지 않고 모아두는 물건이 있다면 다 쓴 노트 정도다. 연습장처럼 다시는 볼 일 없는 그런 노트가 아닌 나의 지난 세월과 고민이 담겨 있는 무거운 노트들은 매우 소중하다. 그래서인지 이면지에 대한 이야기는 너무 귀여웠다. 한 쪽만 인쇄된 전단지를 모아서 연습장을 만들고 그런 모습이 어른들에게 알뜰하고 야무진 행실로 비춰 칭찬을 받고 기분이 묘하게 좋아지는 유년의 기억이 새삼 아름답게 느껴졌다. 방송언어를 익히기 위해 아나운서나 DJ들이 보던 원고를 가져와 방송과 비교하며 구어체를 연구한 공부법은 참신하면서 현명해보이기도 했다. 반려동물을 넘어 반려식물, 반려인형이라는 말까지 나오는 시대인데 반려인형은 반려물건에 포함될 수 있는 개념이겠다. 동물인형을 모으는 것을 입양에 비유한데에 크게 공감했다. “내게 인형은 쉽게 팔거나 버릴 수 있는 물건이 아니다. 인형에 투사하는 감정은 다른 물건보다 크고 깊다.” 평소에 물건을 쌓아두고 사는 사람이 한꺼번에 물건을 청산할 때는 엄청난 결단을 내린 결과일 수 있다는 걸 깨닫게 한 작가의 경험담을 읽으면서는 서늘함을 느꼈다. 물건이 인간의 결핍을 채우기도 하는 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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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트] 엄마라는 여자 + 아빠라는 남자 - 전2권 비채×마스다 미리 컬렉션
마스다 미리 지음, 홍은주 옮김 / 비채 / 2020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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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라는 여자, 아빠라는 남자는 마스다 미리의 몇 번째 책일까? 그리고 나에게는 몇 번째 독서일까? 대략 그녀의 전작들을 스무 권 가까이 읽어왔다. 한결같음이 그녀의 매력이라지만 이번 책은 유독 먹먹하게 다가온다. 가족이라는 테마를 마스다 미리 특유의 소탈하지만 솔직하고 예리한 시선으로 담아냈다. 두 책은 언뜻 보면 세트 같지만 묘하게 다르다. 아빠라는 남자는 아빠를 멀리서 지켜보는 관찰의 느낌이 강하다면 엄마라는 여자는 엄마와의 추억이 많이 실려 있다. 본질적으로 상반된 아빠와 엄마의 성격이 반영된 결과일 것이다. 게다가 딸과 엄마 사이는 숫한 이야깃거리와 감정을 불러일으키는 관계이니깐. 분량도 엄마라는 여자가 많다. 내용도 훨씬 세분화되어있다. ‘엄마와 패션’, ‘엄마와 여행’, ‘엄마의 사랑등 테마가 존재한다. 산문 사이사이에 들어간 엄마통신이라는 만화의 분량도 한 페이지를 넘어가는 경우가 많다.

가족에 대해 쓴다는 건 보통 일이 아닌 것 같다. 게다가 부모님이 아직 살아계실 때, 자신의 글을 아직 부모님이 읽을 수 있을 때 그들이 주인공인 책을 세상에 내놓는다는 건 엄청난 용기가 필요한일 일 것이다. 부모와 자식 사이는 일본도 한국과 크게 다르지 않은 것 같다. 특히 마스다 미리의 어머니가 그녀의 할머니를 병간호하는 모습은 부모의 노후를 자식 개인이 감당해야하는 사회에 살고 있다는 사실을 다시금 느끼게 했다. 분명 나의 부모와 마스다 미리의 엄마 아빠는 다르다. 하지만 그녀가 묘사한 엄마, 아빠라는 사람들이 대체적으로 갖고 있는 특성이 나의 부모에게도 조금씩 있기에 그녀의 이야기에 공감했다. 그 어쩔 수 없이 닮은 구석에 웃음이 나기도 했고 슬퍼지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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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간 생활 도구 - 좋은 물건을 위한 사려 깊은 안내서
김자영.이진주 지음 / 지콜론북 / 2020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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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간 생활 도구는 제품 카탈로그에서 시작된 책이라는 점이 매력적이다. 1월은 맛의 기쁨, 2월은 그리운 시절, 3월은 기록의 가치, 4월은 봄날의 향취, 5월은 초대하는 날, 6월은 생활의 별책 부록, 7월을 청량한 여름, 8월은 자연 예찬, 9월은 글 읽는 밤, 10월은 아끼는 밤, 11월은 정리의 기본, 12월은 간절한 바람이라는 테마를 정해 이에 어울리는 물건을 선별해서 소개하고 있다. 나만의 월간 생활 도구를 정한다면 나는 어떤 물건을 고를 수 있을까? 아마도 계절에 따른 날씨의 영향이 클 것이다. 여기서 소개된 물건 중 단연 문구류가 나의 책상의 지분을 가장 많이 차지하는데 최근에 들어 새롭게 관심을 가지게 된 오브제가 바로 문진이다. 4월의 테마인 봄날의 향취에 맞는 도구로 선택된 문진은 ‘Dandelion’이라는 근사한 이름을 가지고 있었다. 하포트 그레인지가 민들레로 만든 문진은 솜털처럼 가벼운 민들레 씨앗을 묵직한 문진으로 만들었다는 역설의 비화를 포함하고 있다. 영원함을 간직할 수 있는 또 다른 방법을 알게 되었다. 새로운 장으로 넘어갈 때마다 그 달의 테마를 소개하는 문구도 감각적이다. 헤르만 헤세의 검소한 삶과 르 코르뷔지에가 해변에서 보낸 시간을 떠올리고 보들레르의 악의 꽃의 한 구절을 인용한다. 섬세한 취향으로 꾸며놓은 공간에 함께 놓아두고 싶은 책. 텍스처 온 텍스처의 사진까지 너무 아름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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