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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전히 미쳐 있는 - 실비아 플라스에서 리베카 솔닛까지, 미국 여성 작가들과 페미니즘의 상상력
샌드라 길버트.수전 구바 지음, 류경희 옮김 / 북하우스 / 2023년 7월
평점 :
<멈추지 않고 계속해나가기>
나는 여자로 태어나 사회적, 생물학적으로 갖가지 '부캐'를 가지고 있다. 딸, 누나, 언니, 아내, 며느리, 엄마.... 하지만 나는 "나"라는 본캐로만 살고 싶었나보다. 딸의 무게와 아들과의 차별은 불편했고, 누나나 언니가 주는 친근함 또는 무례함, 아내로 겪는 부당함과 불쾌한 취급, 며느리라며 '대리효도'를 은근히 강요받는 사회, 그리고 엄마니까 응당 겪어야하는 일들까지.... 딸-을 제외하면 내가 사회에 나와서 응당 겪어야 할 일이었고, 아내, 며느리, 엄마는 내가 '선택'한 부분이니 어디가서 말은 못하지만 그 삶이 "온전히 내가 하는 일"이 아닌 그것으로 엮인 사람들 때문에 상처를 받고 시련을 겪는것이 혼란스러웠다. 부캐가 무너지고 자존감이 바닥을 칠수록 내 본캐가 흔들리는게 가장 힘들었다. 처음으로 '여성이라 겪는 일'에 내가 휘말려서 얻은 것과 잃은 것을 곰곰히 되짚어봤다. 그러면서 자연스럽게 페미니즘의 문화와 역사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고, 때마침 좋은 기회로 [여전히 미쳐있는]을 읽게 되었다. 희대의 베스트 셀러이자, 고전에 가까운 명작인 [다락방의 미친 여자]로 잘 알려진 '샌드라 길버트, 수전 구바'의 최신작이라 끌린 것도 있지만, 직설적인 제목과 단순히 여성운동, 페미니즘에 대한 학문적이고 학술적인 부분 외에도 '글쓰기'까지 확장한 세계관이 마음에 들었다. 두께운 책 두께와 주제에 무색하게 단번에 읽었다. (다소 부담스럽다면 차례를 보고 본인이 관심있는 년대부터 나눠서 봐도 괜찮음.) 흔들리는 1950년대부터 후퇴와 부활의 21세기까지 어떻게 페미니즘문화와 역사, 그리고 여성의 권리와 해방을 위해 목소리를 낸 수 많은 사람들의 이야기를 담았다. 특히 놀라운 부분은 언어와 인종이 다르고 나는 공부는 커녕 시사에도 밝지 않은 한낱 촌부에 지나지 않는데도 불구하고 이 책에 공감을 많이 했다는 것이다. 이는 '여성이기에' 이 일련의 과정이 남일 같지 않았을 것이며, 페미니스트 철학자로서의 수전 손택이 단순한 페미니스트가 아니라 본인의 철학과 그 이상, 놀라운 글쓰기 기술이 있기에 가능하지 않았나 싶다. 어렵지 않고 굉장히 '진솔하고 신랄한, 하지만 대상자를 따스하게 보듬어 줄줄 아는' 책이니 누구라도 꼭 읽기를 권한다.
-인상깊은 구절
p.46 하지만 1950년대 이후 매 10년 동안 여성의 삶을 파고든 모순들이 ,세상이 요동칠 때 멈추지 않고 계속 나아가는데 필요한 전략을 학습하고 재학습해야 할 당위성을 자극했다는 우리의 주장만큼은 밝힐 수 있다.
/우리는 이제 함께 저 벽장에 쓰인 글귀를 읽을 수 있다. "그 빌어먹을 놈들한테 절대 짓밟히지 말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