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짓의 사람들 - 인간 악의 치료에 대한 희망 보고서, 개정판
M. 스콧 펙 지음, 윤종석 옮김 / 비전과리더십 / 2007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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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 다우트는 용호상박과도 같은 두 걸출한 배우, 메릴 스트립과 필립 세이모어 호프만의 열연으로 호평을 받은 작품이다.
 메릴 스트립이 분한 알로이시스 수녀 역에는 미묘하게 사람을 착취하고 괴롭히는, 에너지 뱀파이어라 불리는 사람들의 모습이 겹쳐 보이며 영화가 끝날 때까지 나의 분노 게이지를 가득 채워줬다.

 

 

<거짓의 사람들>

 

 스캇 펙 박사는 거짓의 사람들을 악한 사람들이라 정의한다. 악인 하면 히틀러, 범죄자를 떠올리기 쉽다. 범죄행위나 동기를 볼 때 치가 떨리도록 용서가 안 되는 악인이 물론 있지만 인간적으로 용인되는 범죄자도 많다. 그런가 하면 범죄자라는 낙인은커녕 기득권층으로 호위호식하며 사회적 명망까지 누리는 악인도 우리는 쉽게 찾아볼 수 있다.
저자는 이를 일컬어 "정직한 범인인 까닭에 잡혀 들어온 것, 진짜 악한 사람들은 언제나 감옥 바깥에 있는 법"이라고 말한다. 진정한 악인은 일상에서 쉽게 볼 수 있는 우리 곁의 평범한 사람일 수 있다는 것이 저자의 지적이다. 그럴 경우 그들의 범죄는 너무 미묘하고 가려져 있어서 주위로 하여금 악이나 범죄라고 쉽사리 느끼지 못하게 만든다. 그들이 은폐와 위장에 워낙 강하기 때문이다. 

 

 저자가 말하는 악한 사람을 가려내는 참 기준으로는 1)일관성이 있다. 하나같이 자신의 죄성을 인식하지 않으려 애쓴다. 자기 성찰의 불쾌감을 눈곱만큼도 견뎌 낼 마음이 없으며 자신은 깨끗한 존재라 믿는다.

2) 남에게 책임을 덮어씌운다. 악인들이 파괴적인 이유는 그들이 악을 퇴치하려고 마음을 먹는데 있다. 그들은 악의 소재지를 잘못 파악해 남에게 뒤집어씌움으로서 악을 처단한다. 3)그들은 선해지려는 의지는 없으면서 선해 보이려는 욕망은 불처럼 강하다. 우리가 종교 단체 안에서 꽉 막힌  데다가 인성이 파괴적인 위선자를 자주 볼 수 있는 이유가 여기 있다. 악한 사람들이 가장 흔히 발견되는 장소는 교회다. -p.100 

 

 위의 기준에 소름이 돋을 정도로 부합하는 알로이시스 수녀(메릴 스트립)를 살펴보자.  

교장 수녀인 알로이시스 수녀는 공포와 징벌로서 엄격하게 학생들을 지도한다. 학생이 수녀의 손끝만 스쳐도 불호령이 떨어지고 체벌이 행해진다. 그녀에게 플린 신부(필립 세이모어 호프만)는 눈엣가시 같은 존재인데 손톱을 길게 기르고 사탕을 좋아하며 진보적이고 학생들에게 친근히 대하는 등 자신의 교육방침에 완전히 어긋나기 때문이다. 그가 더욱 꼴 보기 싫은 이유는 자기보다 상관이라는 점이다. 그녀는 우연한 기회에 플린 신부에 대해 사소한 오해를 하고 증거도 없이 그것을 완전히 믿어버린다. 신부에게 면담을 청해 추궁을 하지만 신부는 사실이 아니라고 해명한다. 그러나 면담 과정에서 미묘한 모욕감을 느낀 수녀는 그를 나쁜 사람으로 아예 단정 지어 버린다. 그녀는 여기 저기 들쑤시고 다니며 신부가 나쁜 짓을 저질렀다는 증거를 모으기 위해 애쓴다. 아집으로 똘똘 뭉친 비뚤어진 사고는 끝을 모르고 치닫는데….

 

 

 

 

 

 저자가 예시를 드는 사례 속에는 강박증에 걸린 사내와 같이 딱한 경우도 있고, 알로이시스 수녀와 R씨 부부와 같이 미묘하고 교활한 수법으로 상대를 괴롭히는 끔찍한 악인도 있으며 주위에서 몇 번 본 듯 익숙한 사례도 있다. 거미 공포증을 앓는 빌리의 사례가 그렇다. 빌리의 어머니를 보노라면 새벽에 시도 때도 없이 전화하고 도를 넘는 친밀함을 갈구하며 남자친구를 수도 없이 바꾸는 친구가 겹쳐 보인다. 혹은 TV의 예능 프로에 나와 자기가 조금은 구속하는 경향이 있다며 깔깔대고 연애편력을 늘어놓는 어떤 인물이 보이기도 한다. 그만큼 일상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인물인 것이다.

 빌리의 어머니는 외로움을 심하게 타고 혼자 있는 것을 못 견디며 늘 두세 명의 외간 남자와 내통하는 여자다. 아버지는 평생을 은행에서 일한, 과묵하고 수줍은 성격의 사람이다. 어머니는 아버지를 정감 없는 성격이라 욕하며 자신의 외도를 합리화하고 빌리에게도 자신과 같은 삶을 부추긴다. 빌리가 커가며 자신의 문제를 심각하게 깨닫게 된 건 자신 또한 혼자라는 것을 못 견뎌하고 한 남자에게만 만족할 수 없으며 남자를 숨이 막히게 구속함에 따라 결국 남자들이 줄줄 떠나가며 그녀 또한 상처를 받았기 때문이었다.   

 

 그녀는 치료를 받으며 거미처럼 자신을 옭아매는 어머니로부터 독립을 했고 그 과정은 힘들었지만 잘 이겨나갔다. 그 과정에서 사실 아버지는 괜찮은 사람이라는 것도 깨닫게 되었다. 그녀는 어머니로부터 받은 상처에 대한 치료가 거의 끝나가고 있었지만 딱히 별 다른 차도가 보이지 않았는데 의사는 빌리가 받아들일만한 상태가 되었을 때 그녀 자신도 부분적으로 어머니처럼 거미라고 조심스레 말을 꺼낸다. 그녀는 그 말을 듣고 남은 시간 내내 흐느껴 울었다고 한다. 사실 본인이 더 잘 아는 것이다. 
 위의 사례처럼 악인의 영향력은 주로 가족에게 미치며 악인의 지배하에 놓이면 결국 자신이 죽어버리거나 악인을 죽이거나 같아지는 수 밖에 없다. 혹은 가장 최선의 방법은 독립하는 것인데 사실 이는 그리 쉬운 방법이 아니다. 특히 지배를 받으면서부터 병적인 공생관계로 서로를 끌어당기는 경우 그 사람은 악에 걸맞은 수용자가 되기 쉽다. 때리는 사람과, 맞고 사는 사람의 관계에서 맞는 사람은 충분히 기회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자발적으로 그에게서 떠나지 않는 경우를 흔히 볼 수 있지 않은가.   



  알로이시스 수녀는 영화에서 결국 승리했다. 플린 신부는 자청해 다른 곳으로 떠났다.
현실에서도 악인들은 살쾡이 같은 집념으로 승리하곤 한다. 플린 신부가 떠난 성당의 벤치에 앉아 알로이시스 수녀는 중립적인 제임스 수녀에게 자신이 과연 옳았다고 말한다. 비록 자신이 그를 쫓아내기 위해 거짓말을 하기도 했지만 여전히 옳다고 확신한다고 했다. 제임스 수녀는 증거도 없이 의심한데다 거짓말을 했다고 당당히 말하는 그녀를 보고 고개를 절레절레 저을 수 밖에 없었다. 나는 이제 거의 모니터를 째려보는 지경에 이르렀다.    
 그런데 돌연 알로이시스 수녀가 어린 애처럼 왈칵 눈물을 터뜨렸다.
“내 믿음에 의심이 들어요(Sister james, I have doubt. I have such a doubt.).”하며 우는 백발의 노인네를 보노라니 착잡해졌다. 누군들 동정심이 일지 않으리. 나도 영화를 보며 엉엉 울고 말았다. 그녀도 결국 나약한 인간일 뿐인 것을. 어찌 보면 딱하기 그지없다.

그리고 나약한 인간이라는 범주에서 나는 얼마나 자유로울 수 있으며, 어떤 사안에서는 아집으로 똘똘 뭉친 악인이 되지 않으리란 보장이 있을까?  

 

 

스캇펙 박사는 말한다.

 

인간의 악의 본질을 연구하다 보면, 우리가 얼마나 우리와 그들을 뚜렷하게 분리할 수 있을는지 회의가 찾아온다. 어쩌면 우리가 연구하려는 것은 바로 우리 자신의 본성일지도 모르는 까닭에서다.

-p. 291

 

 그렇기에 이 책은 악의 치료에 대한 희망 보고서이다. 악을 퇴치하거나 처단하자는 내용이 아니다. 저자는 400회나 면담했지만 끝내 실패한 구제불능의 악인에게도 최소한의 인간적인 선의는 유지하였다. 그리고 그녀를 끝내 돕지 못한 미안한 마음을 전했다. 그 모습이 사뭇 감동적이다.

 

 끝으로 악의 치유법은 과연 있는 것일까. 저자는 앞서 악인에게서 빠져 나오는 길은 본인이 죽거나 악인을 죽이거나 두 가지 길이 있으며 최선의 방법으로는 심리적인 독립을 선언하는 것이라 했다.

악의 치유, 그것이 과학적이든 아니든 모두가 오직 개인의 사랑을 통해서만 이루어질 수 있다. 거기엔 자발적 희생이 요구된다. 치유자 개인은 자신의 영혼이 전투장이 되도록 허락해야 한다. 그는 희생적으로 악을 흡수해야 한다. (중략)

 

"결코 배반하지 않는 사람이 자발적으로 피해자가 되어 배반자 대신 죽임을 당하게 되면,

법률은 효력을 잃고 죽음마저도 방향을 반대로 돌릴 것이다."  

-p. 359

 

 언뜻 신비롭게 느껴지는 위의 방법은 성경이나 전래동화에서 익히 본 듯하다. 큰 사랑을 실천할 능력을 바로 가질 순 없겠지만 선택의 기로에서 이렇게 자문해보고 싶다.

지금 이 순간, 사랑이라면 어떤 선택을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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