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좋아서 읽습니다, 그림책 - 어른을 위한 그림책 에세이
이현아 외 지음 / 카시오페아 / 2020년 12월
평점 :

많은 사람들이 그림책을 동화책으로만 생각한다. 어린 아이들을 위해서 교훈과 감동이 가득한 유치한 이야기 정도로만 치부하는 경우도 보았다. 사실은 훨씬 다양한 연령대의 다양한 사람들이 읽을 수 있는 책인데도 그렇게 과소평가를 당했다.
그림책과 헤어진 나도 과학책에만 파묻힌 때에는 그런 생각이 들곤 하였다.
도서관이 새로운 장소로 이사를 가면서 그림책은 영유아자료실에 동화책이란 이름으로 남게 되었다. 도서관이 이관된 당시에 이미 만 15세 이상이었던 나는 만 14세 이하가 이용할 수 있다는 문구에 위축이 되었다. 내가 아무리 성장해서도 그림책을 좋아해도 다가갈 수 없음을 의미했다.
그런 씁쓸한 그림책과의 이별이 끝난 뒤에 나는 과학책에 파묻혔다.
주변에서도 권장하는 분야였고 생기부를 채우기 위해서라도 관련 분야의 책만 읽었다.
그렇게 과학책만 읽다가 <첫사랑>이라는 한 뼘도 안 되는 그림책이 나에게 왔다.
그냥 표지에 남자아이 둘만 그려진 그림책이 일반자료실에 있다는 사실일 신기했다.
단순히 사서쌤의 실수라고 생각한 찰나 왜 이 책이 일반자료실에 있는지 알게 되었다.
내용은 같이 놀고 편지를 교환하는 평범한 일상이었으나 감정 교류의 대상이 동성이었다.
그래서 일반자료실에 그림책으로서 남았던 것이다.
그림책을 약 4년 만에 재회한 나는 한 뼘도 안 되는 <첫사랑>을 통해서 내가 주변의 남자에게 느낀 감정이 사랑이 아님을 깨달았다.
그림책 속 주인공들처럼 편지로 감정을 교류하거나 자꾸만 보고픈 마음이 나는 주변 남자들에게 가지고 있지 않았다. 미켈란젤로가 만든 다비드상에 심장이 두근거리고 가끔 가다 검색해서 보는 감정이 주변의 남자 아이들에게 들지 않았다.
친절하게 대해주었던 남자 선배들에게도 그런 감정은 들지 않았다.
나는 엄청 앏고 작은 <첫사랑>이란 책을 통해서 사랑의 감정을 알 수 있었다.
<좋아서 읽습니다, 그림책>도 나의 작은 경험처럼 그림책을 통해서 얻은 깨달음과 감정을 전하고 있다. 이들의 에세이를 읽다 보면 그림책이 넓은 세상임을 알 수 있다.
많은 이들이 그림책을 동화책에 한정하여 보는 경향이 있다.아이들을 위한 교훈과 감동을 주며 순화시킨 책이라는 인상이 강하다. 그러나 작가님들이 전하는 그림책은 이러한 생각을 깬다.
삶과 죽음, 삶과 노동, 자신으로 살아감, 사회 내의 시선과 자신, 시간과 육체, 외관과 내면이란 소재들은 아이를 넘어서 다양한 연령대의 사람에게 와닿는 소재이면서 강렬한 감정을 주기에 충분한 주제이다. 그림책은 단순히 아이들만을 위한 책이 아니다.
넓고 다양한 사람들을 위한 폭 넓은 책이다. 내가 <첫사랑>이란 그림책을 통해서 사랑의 감정을 알고 헤매이던 감정의 늪에서 벗어난 것처럼 작가님들도 그림책에서 마음을 치유받고 새로운 시각을 부여받으면서 마음의 늪을 헤져나갈 수 있었다.
또한 그림책은 작은 현실의 변화를 이끌어낸다. 이는 특히 육식을 다룬 부분에서 두드러진다.
영화 <옥자>와 <더 이상 아이를 먹을 수 없어!>라는 그림책의 연결은 개인의 해석에 따라 사회의 문제가 그림책에 녹아듦을 새로운 시각의 전환이라는 현상을 보여준다.
<옥자>를 보고도 삼겹살을 먹는 인간의 모습은 심사리 육식을 즐긴다라는 본성을 바꿀 수 없는 듯이 보이지만 그림책을 통한 채식주의와 탈육식이란 현실 문제와의 연결은 자그마한 변화를 이끔을 보여준다. 설령 작가 자신조차 육식을 하며 빠져있다 하더라도 개인의 인식 속에 피어난 새로운 흐름의 새싹은 변화라 할만 하다.
그림책은 단순한 동화책이 아니며, 사회 문제를 고발하고 비트는 풍자의 일종이면서 동시에 개인의 마음을 어루만지고 깨달음을 주는 치유와 같은 존재임을 이 책은 말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