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니 땐 굴뚝에 연기는 아르테 미스터리 19
아시자와 요 지음, 김은모 옮김 / arte(아르테) / 2021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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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고등학교 때 굿을 할 때 부르는 노래?를 배운 적이 있다. 실제로 제주도에서 종종 굿을 할 때 불리는 노래였다. 무속인들이 이렇게 노래를 만들어 부르는 이유에 국어선생님이 넌지시 알려준 문장이 있었다.

"무당이 자신이 모시는 신에 대해서 말을 하는 이유는 힘에 있다. 말은 힘을 가진다.

자신이 모시는 신에 대해 말하면 그 존재가 공고히 해져서 힘이 생긴다.

그래서 신을 모시는 노래가 이렇게 설화와 함께 남은 것이다."란 내용이었다.

나는 <아닌 땐 굴뚝에 연기는>도 어떤 존재에게 힘을 불어넣는 부름 같았다.


<아닌 땐 굴뚝에 연기는>가 처음에는 가족 간에 불화와 얽힌 괴담집이라고만 생각했다.

결혼에 대해서 의견 차가 있던 연인들, 서로에 대한 규율과 압박이 있던 부모와 자식들,

서로에 대한 신뢰가 부족했던 부부, 아내를 자신의 손아귀에 두려고 했던 남편의 집착, 

이미 떠나간 이에 대해서 미련을 가진 사람

얽히고 설힌 가족들의 인연이 부정적인 흐름을 끌여들어서 괴담이 만들어졌다고 생각했다.

마지막 소설인 <금기>에서 2명의 여자가 나오기 전까지는.

영능력사와 집에서 불타 죽은 여자였다. 그들이 이 이야기의 중심에 있었다.

연결점이 없어보이는 이야기는 어떻게든 이 2명의 여자와 연결이 되었다.

서로 연관성이 없어보이는 일도 연결된다는 점에서 나는 소름이 돋았다.

이는 연에 대한 말과도 연결이 된다.


소설 속에서 액막이를 하는 진나이씨가 한 말이 걸렸다.

어떤 혼과 관계를 맺고 싶지 않다면 말을 건네지 말라는 문장이었다.

길을 가다가 마우것도 모르는 이에게 애도를 해도 연이 맺어진다는 사실에 나는 기존과 같이 일상을 볼 수 없었다. 알게 모르게 애도를 해 왔기 때문이다.

해부 실험으로 죽은 실험용 쥐에게 애도를 보내고, 창문에 부딪혀 죽은 새에게 무덤을 만들어주었다. 산을 타다가 만난 불상에게 합장을 하고 지나갔다.

전자는 애도를 표하는게 예의라고 생각해서, 후자는 너무나도 말끔하게 섬겨져 있어서 그냥 지나칠 수가 없어서 합장을 했다.

내가 아무런 생각도 없이 한 합장이 무언가와 연을 맺어준다는 점에서 소름이 돋았다.

그런 적이 한 두 번이 아니기 때문이다. 아니 그래서 이 책을 만났는지도 모른다.

일상에서 너무나 많은 기이한 일들이 지나갔기 때문이다.


심심찮게 들리는 도깨비터와 무당에 대한 이야기, 간발의 차로 눈 앞에서 교통사고를 목격했던 2번의 순간과 차에 치여 죽을 뻔 했던 1번의 상황, 가족들이 연달아 나쁜 꿈을 꾸고 그 뒤에 안 좋은 일이 생겼던 고등학생 때

주변에서 괴담보다 약하지만 기이한 일이 많이 생겼던 만큼 나는 안심할 수 없었다.

나의 일상이 전과 같이 보이지 않았기 때문이다.


나는 이 책이 세상에 나와서는 안 된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름이 없다 할지라도 사람들 사이에서 소문이 생겨서 생긴 도깨비란 존재가 있듯이 이 책도 그리 되지 말란 법이 없기 때문이다.

수수깨끼의 영능력자와 그녀에게 한을 가진 여성의 혼은 픽션일지도 모른다.

작가조차 스스로가 픽션이라고 말할 지라도 그게 이름을 불리며 사람들 속에서 회자되는 순간이 이어져서 진실이 될 지도 모르는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결국 이 소설은 작가의 의도대로 일상에 꺼림칙함을 남겨주고 갔다.

일상 속에서 괴담을 더욱 잘 느끼도록 만든 작가에게 박수를 보내지만 영 찜찜하다.

이게 완전히 픽션이라는 확신이 없기 때문일지도. 하지만 의심을 그만한다.

이 책이 영능력자인 그녀가 보내는 메시지라면, 의심하지 않는 게 안전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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