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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픽 #02 - 멋진 신세계, 2021.1.2.3
문지혁 외 지음 / 다산북스 / 2021년 1월
평점 :
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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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픽#02>를 읽으면서 손에서 놓을 수가 없었다. 그게 디스토피아적 현실을 전하는 논픽션과 픽션 때문인지 아니면 글 속에 숨은 아버지란 존재 때문인지 모르겠다.
논픽션 글에도 아버지란 존재는 있었다. 어는 글을 봐도 남자는 있었다.
어느 순간 숨겨진 어머니와 존재감이 희미해진 여성의 존재에 거부감을 느꼈다.
물론 나의 사적인 의견이지만 의도했든 하지 않았든 특정한 관념이 살아숨쉬는 사실을 거부할 수는 없었다. 내가 <에픽#02>를 3시간 동안 본 이유도 여성이란 존재를 찾고 있는지 모르겠다. 이렇게 서평으로만 읽는다면 느낌을 잘 모를 것이다.
이 책이 얼마나 아버지란 존재를 파괴력 있게 그려내는지.
논픽션에서 본 아버지와 남성의 존재
예술 제본에 대한 글을 쓴 사람은 남성이다. 여성 노숙인에 대한 글을 쓰던 사람은 여자였다. 취재하던 노숙인도 여자였다. 밀리터리 덕후 글을 쓴 사람은 남성이다. 응급실에서 일하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쓴 사람도 남자이다. 이게 무슨 의미일까?
예술 제본을 한국에서 시작하고 이어온 사람은 여성이다. 하지만 이야기를 하는 사람은 남성이다. 담배를 피우고 술을 마신다는 노숙인과 작가는 여성이다. 밀리터리 덕후인 사람이 쓴 글에 군대와 은연 중에 남성의 이야기가 가득하다. 응급실에서 일하는 사람들은 여성이지만 글은 남성이 쓰고 있다. 우리가 인지하지 못하는 위계와 숨겨진 인물이 존재한다.
물론 글쓴이가 남성이니 그럴 수도 있다. 고정관념에 빠져서 작가의 성별을 잘못 생각했을 수도 있다.
그러나 깊게 배여든 아버지, 가부장적인 위계와 다양한 위계들이 있음을 무시할 수 없다.
엄격했던 아버지를 피해 가출한 소녀, 여성인 밀리터리 덕후의 존재 의문, 응급실에서조차 돌봄노동을 하는 여성이 의미하는 바는 무엇일까?
존재의 소멸이자 은폐라고 생각한다.
단순히 묘사만 보고 남자라고 생각한 점에서 개인의 존재는 사라지고 성별만 남아있다. 밀리터리 덕후 여성도 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런 말 한 마디도 없다. 응급실에서 돌봄노동을 하지만 무시당하고 고된 일을 함에도 존중받을 수 없는 여성은 여성이 아닌 다른 존재로 간주된다.
픽션에서 아버지와 남성
신으로서의 아버지, 개인을 넘어 집단의 정체성이 된 한 남성, 이야기의 중요한 인물로서 활약하는 남성들, 아버지 때문에 인생이 얼룩덜룩하게 바뀐 여성 가족들, 피해자인 주인공들을 악당으로 만들어버린 아이를 야단 친 이웃 아빠
불편하다 못해 대놓고 아버지의 존재를 광고하는 글들이다.
디스토피아와 아버지란 남성의 존재가 의미하는 바가 무엇일까?
일상 속에서 아버지란 남성의 존재로 개인의 인생이 어떻게 디스토피아로 바뀌는지 모여주고 있다. 즉 아버지는 일상 속 디스토피아를 여는 비유적 열쇠로서 픽션에서 존재한다.
재미는 있었지만 다 읽고 나면 떠오르는 아버지의 존재에 소름이 돋을 지경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