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아우슈비츠의 약사입니다
퍼트리샤 포즈너 지음, 김지연 옮김 / 북트리거 / 2020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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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아우슈비츠의 생존자들의 이야기는 많이 들었다.

그런데 아우슈비츠를 만들고 

아우슈비츠에 죽음을 가지고 온 사람에 대한 이야기는 들은 적이 없다.

왜 일까?

왜냐하면 사형을 받았거나 자결을 했거나

자연사했거나 덩덩거리면서 잘 살고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그렇다.

나치였거나 나치를 도운 사람들은 엘리트였고 전문 교육을 받은 인재들이었다.

악인이어도 인재였다.

그래서 패망 이후 독일이 아수라장이 되었을 때 그들이 필요했다.

악인이고 전범자였지만 우수한 인재들이기도 했기 때문이다.

물론 일개 약사인 빅토르 카페시우스에게 그런 길은 없었다.


빅토르 카페시우스


아이히만이나 요제프 엥겔러는 잘 알고 있어도

빅토르 카페시우스란 이름은 별로 들은 적이 없다.

사실 우리는 몇몇 전범자들의 이름만 알 뿐 나머지 수천 명에 달하는 전범자들은 모른다.

현실적으로 생각해보아도 

전범자들이 자신들이 저지른 범죄들을 떠벌리고 다니지는 않을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알아야 한다. 빅토르 카페시우스와 같은 사람들이 저지른 짓을.


빅토르 카페시우스는 마을 약사였다가 이게 파르벤이라고 하는 대규모 화학기업에 들어갔다.

전쟁이 터지자 약사로 병역을 받았고 아우슈비츠까지 갔다.

그는 거기서 많은 일을 했다.

수감자 중에 노동력 선발(오른쪽은 노동장, 왼쪽은 가스실)

의약품 조달 및 배포(고의적으로 수감자 약품을 자주 안 주었다.)

생체 실험 보조

가스실 약품 관리 및 사용 허가(시안화수소로 만든 독가스)

수감자 물품 검사(금품 갈취)

약사였지만 잔인한 악인이었다.

보석이나 귀중품 등도 중간에 빼돌렸으며

금 중에는 사람에게서 뽑은 금니도 있었다.

그가 금을 모은 이유는 간단했다.

전쟁이 끝난 후 다시 시작하기 위해서였다.


갈취한 금을 팔아 집을 살고 재판을 무사히 넘기고 건물을 사서 사업을 하고

가족들을 데려오고 최상류층과 사교 활동을 하고 마치 아무런 일도 없었다는 듯이 살았다.

물론 이후 전범 재판을 받게 된다.

그에게 금은 많았고 재력도 꽤 있었지만

나치와 아우슈비츠 그리고 파르벤이 남긴 문서도

그를 기억하는 생존자와 관계자들도 많았다.


끝이 그리 좋지 않았을 것이다.

또한 그가 죽은 이후도 별로 좋지 않을 것이다.

아우슈비츠의 생존자들은 남아 있으며

전범자들이 벌였던 범죄들은 되새김질을 끊임없이 반복하고 있으며

<나는 아우슈비츠의 약사입니다>를 통해 

나와 같이 타국의 사람도 그를 악인으로 기억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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