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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본소득을 넘어 보편적 기본서비스로!
안나 쿠트.앤드루 퍼시 지음, 김은경 옮김 / 클라우드나인 / 2021년 7월
평점 :
기본소득이 핫이슈로 대두되고 있는 이유는 소득 불균형의 심화 때문이다. 아마존과 같은 자본가는 그들의 자본을 이용하고, 새로운 AI를 이용하여 더 쉽게 그리고 더 많이 소득을 창출하고 있다. 제도가 아무리 보강되어도 가난한 사람들의 통장에 입금될 수 있는 소득과 비교되지 않을 정도의 엄청나게 많은 돈을 자본가들은 번다. AI가 사람들의 일을 점점 더 빼앗아가고, 그런 로봇을 소유하여 쉽게 이익을 창출하는 사람들은 그들의 부를 나누어야 한다는 생각이 기본 소득의 이론의 근원에 있고, 상당히 설득력 있다.
하지만, 현금을 주는 기본 소득보다 보편적 기본 서비스를 제공하는 것이 심화되는 불평등의 확대에 실질적 도움을 준다는 이론을 주장하는 사람이 있다. 현금보다 현물이 더 좋다는 주장은 상당히 흥미로운 주제라고 생각했고, 저자 안나쿠트와 앤드루 퍼시의 생각이 듣고 싶어서 책을 폈다.
먼저 그들이 주장하는 보편적 기본 서비스가 무엇일까? 책에 있는 정의는 이렇다. '사람들이 자신이 지불할 수 있는 능력이 있나 없나에 상관하지 않고 자신이 필요한 것을 충족시킬 수 있는 필수적인 서비스'. 가장 대표적인 것이 의료보험과 무상 교육이다. 우리나라나 영국, 캐나다 같은 나라는 국민이 아프면 큰돈 걱정 없이 병원에 다녀올 수 있다. 하지만 극자본주의인 미국은 의사를 한 번 보는 것만으로도 몇 십만 원의 돈이 들고, 맹장 수술 때문에 집이 파산할 수도 있다. 우리나라의 건강보험 수준의 직장 의료보험 혜택을 받는 사람이 많지 않을 뿐만 아니라 지역의료보험이 없으므로 해고가 된 상태에서 조금이라도 아프면 재정적 어려움이 큰 부담이 된다. 노년기 삶의 질을 떨어뜨리는 가장 큰 요인이 바로 질병인데, 아플 때 맘껏 병원을 갈 수 없는 삶을 살고 있는 가장 잘 사는 나라 미국은 어찌 보면 가장 모순적인 국가인지도 모른다.
미국인에게 기본 소득을 준다고 가정해보자. 그 돈으로 병원에서 치료받는 것은 불가능하다. 의료를 시장경제에 맡겨둔 채로 기본 소득을 주면, 오히려 의료 서비스의 수가만 올라가고 극빈자는 더 힘들어진다. 반면에 의료 서비스를 보편적 기본 서비스로 정착 시키는데 돈을 사용하면 소득이 적은 사람들이 진정으로 혜택을 받을 수 있다. 빈곤층이 의료나 교육과 같은 필수 서비스를 직접 구매할 때 소득의 3/4을 써야 하지만, 서비스로 제공되면 소득 불평등을 20% 이상 축소시킬 수 있다는 통계가 있다. 가본 서비스 제공은 사회의 위험과 취약성이 누적되지 않게 차단하는 효과가 있다. 그래서 이 책에서는 현금으로 지불되는 기본 소득보다 보편적 기본 서비스가 훨씬 더 혜택이 많다고 주장하는 것이다.
우리나라의 경우를 생각해 보면 의료보험과 교육은 누구에게나 열려있는 기회이고 권리다. 보편 서비스가 확대되어야 할 분야는 돌봄과 교통, 통신 분야다. 돌봄을 고려해보면 점점 늘어나는 고령층으로 인해 노인 돌봄이 확대되어야 할 것 같다. 현재 중년의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은 부모를 돌보아야 하고 동시에 자신의 길어진 수명으로 인한 삶도 준비해야 해서 삶이 고단하다. 노령층과 장애인들에 대한 돌봄 서비스가 더 확대된다면 몇 십만 원씩 뿌리는 듯한 선심성 현금보다 훨씬 의미 있을 것 같다. 노인 돌봄을 사회가 함께 연대하는 것은 궁극적으로 국민 개개인의 삶을 더 안락하게 해 줄 것이다.
교통이 보편적 기본 서비스가 된다면 지방에 사는 사람들에게 큰 도움이 될 것이다. 대중교통이 기본적으로 제공된다면 시골에 살아도 일자리를 찾는 것이 더 수월해져서 개인 소득이 증가될 가능성이 커진다. 그렇게 되면 지방 소멸의 두려움에 처해 있는 지금 상황에서 지방의 경기가 좀 더 활기차게 변하고 상업도 활성화될 것이다. 도시에 사는 노인에게만 지하철 혜택을 제공하는 것이 아니라 국민 모두에게 대중교통을 공짜로 탈 수 있게 해 준다면 삶의 질이 높아질 것 같고, 가난한 사람들에게도 도움이 될 것 같다.
농어촌 지역을 가보면 인터넷과 데이터로 불편한 적이 많다. 이름만 보편적 서비스인 인터넷 설치는 불가능한 지역이 의외로 많아서 몇 백만 원씩 설치비를 내고 인터넷을 사용해야 하는 사람들도 있다. 지금 같이 온라인이 대세가 되는 시대에 인터넷 사용이 불가하다는 것은 말이 안 된다. 그뿐만 아니라 한 가정에 통신비 지출이 엄청나다. 디지털 시대에 극빈자는 온라인에 더 노출되기 힘든 또 다른 불평등을 경험하고 있다. 국가가 보편적 기본 서비스를 통신 영역까지 확대해 준다면, 우리의 지출 중 매달 나가는 큰 지출이 없어지니 기분이 가벼워질 것 같다. 데이터를 아끼느라 싼 요금 찾기로 고생할 필요 없이 전국 어디에서나 데이터를 무료로 사용할 수 있는 사회가 된다면, 참으로 멋질 것 같다. 산골에 사는 조손 가정의 자녀도 자신이 배우고 싶은 것을 온라인을 통해 마음껏 배울 수 있는 사회가 될 수 있으니 확실히 현금 소득보다 더 큰 도움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나는 기본 소득에 긍정적인 견해를 가지고 있었다. 그런데 이 책의 주장을 보니 지금은 오히려 보편적 기본 서비스에 집중하는 것이 불평등을 경험하는 사람들에게 더 이익이 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보편적 기본 서비스는 장기적 프로젝트라 정치하는 사람들에게 빠른 결과를 가져다주지 않는다. 건강보험만 해도 오랜 기간 동안 수정되고 보완되었고 여전히 진화하고 있어서 정치인들의 업적으로 사용될 수가 없다. 반면에 기본 소득이나 현금 지원은 눈앞에 돈이 들어오는 경험을 하게 하여 그런 결정을 한 정치가를 선호하게 만드는 효과가 있다. 정치인들이 좀 더 장기적인 안목을 가지고 다양하고 폭넓은 리서치와 토론을 통해 보편적 서비스에 좀 더 눈을 돌리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