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명 가격표 - 각자 다른 생명의 값과 불공정성에 대하여
하워드 스티븐 프리드먼 지음, 연아람 옮김 / 민음사 / 2021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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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통 사고가 나면 사람의 직업에 따라 합의금이 달라진다. 가정의 재정을 책임지고 있는 사람이 입원하면 그 가정이 힘들어지니 합의금이 많아야겠다는 생각이 들기도 하지만 달리 생각하면 대기업이나 공기업같은 곳에서 월급받는 사람은 며칠 입원하면 급여도 받고 합의금도 받는다. 반면에 공식적인 월급이 적은 일용직 노동자는 사고가 나면 월급이 줄게 된다. 주부는 특히나 공식적인 수입이 없다는 이유로 합의금이 낮게 책정되는데, 주부들이 사고를 당하면 가정이 제대로 안 돌아가서 큰 어려움을 겪게 된다. 여러가지 상황을 고려해볼 때 굳이 월급에 따라 합의금이 달라진다는 것은 뭔가 불공평하게 느껴진다. 이런 나의 생각에 대해 좀 더 논리적으로 문제를 제기하고 설명해주는 책이 있다 바로 <생명가격표>. 책 표지를 보면 사람에게 가격표를 붙였다. 내게도 저런 가격표가 붙어 있다고 생각하니 왠지 물건 취급당하는 기분이 찝찝해진다.


너랑 나랑 다 똑같은 사람인데 왜 우리의 합의금이 달라야되나하는 생각을 했다가 나랑 삼성의 이재용회장이 나라에 끼치는 영향을 생각하니 달라야 할 것 같은 생각도 든다. 쇼윈도우에 나의 가격표와 이재용회장의 가격표가 붙어있다면 확실히 엄청난 차이가 날 것 같긴 하다. 그는 아마 나랑 다른 명품관에 배치되어 있지 않을까? 그럼 그가 정말 명품인가? 그건 아니라고 생각한다. 물론 내가 그를 개인적으로 알지 못하므로 뭐라 판단할 수는 없지만, 그는 감옥에 다녀왔고, 나는 아무 죄가 없다. 돈의 영향력을 제외하고 생각하면 누가 명품인지는 아무도 모르는 거다. 어쨌든 사람에게 붙은 가격표를 보니 이런 불편한 상상도 하게 되었다.


911 테러 사건때 많은 희생자들에 대한 보상 금액은 큰 이슈였다. 혼란을 최소화하기 위하여 명확한 보상금 책정 기준을 사람별로 만들었다. 그래서 탄생한 '생명가격표'. 피해자 보상금이 25만달러에서 700만달러로 큰 차이가 났다. 명확한 기준으로 보상금을 지급했다고 하지만 불만은 끊이지 않았다. 그 기준이 현 소득에 의한 것이었기 때문이었다. 은퇴했거나 노동을 하지 않거나 실직, 프리랜서들의 가치는 과소평가되었고, 그러다보니 여성과 노인의 보상금 총액은 훨씬 적었다. 오히려 평등한 보상금을 지급했더라면 혼란이 덜했을것이라고 보상금 지급 정책을 만든 이가 고백을 했을 정도였다.


모든 생명의 값은 같다라고 말하고 싶지만 어쩌면 이런 생각은 이상주의나 평등주의 철학일 수도 있다.현실에 있어서 생명가격표의 존재는 어느 정도 통념으로 받아들여진다. 문제는 생명가격표를 필요로 하는 사람들이 어떤 의도를 가졌느냐에 따라 그 가치가 달라질 수 있다는 것이다. 기업은 철저히 이익을 위해 존재하는 곳이다. 그렇다보니 그들은 자신의 자동차와 같은 물건이 출시될 때 안전을 유지하기 위해 투자해야 하는 비용과 사고로 인해 고소를 당해서 배상해야 할 비용을 저울질해본다. 소비자 입장에서는 당연히 안전을 추구했을 것이라 믿지만 그렇지 않을 때도 많다. 실제로 포드사는 새 자동차 출시 즈음에 규제가 바뀌려하자 자신들에게 유리하게 비용편익분석 제도를 조작하였다. 규제로 인해 발생하는 생산 비용을 과대평가하였고, 자기들에게 유리하게 조작된 생명가격표를 제시하였다. 데이터라는 것이 어떤 변수를 사용하는지 또는 어떤 설문 방식을 사용하는지에 따라 결과는 천차만별이다. 그들이 제시한 생명가격표에는 사람의 목숨값이 낮게 책정되어 있어 규제를 지연시키는데 큰 역할을 했다.


이 책의 저자 하워드 스티븐 프리드먼은 통계전문가라 상당히 구체적인 자료들을 예시로 설명을 했다. 그는 현실에서 생명가격표가 존재하는 곳과 생명 가격표를 만드는 방법에 대해 자세하게 알려주었고 이 방법이 가져온 결과와 한계점을 명시하였으며, 우리가 어떤 시각을 가져야 하는지에 대해 토론하고자 했다. 그는 공익 옹호 단체들과 소비자 감시 단체들이 비용편익분석의 상세 내용을 철저하게 감시해야 한다고 했다. 나도 이 책을 읽으며 이제껏 무조건적으로 믿어온 기업이나 사법부등의 목숨값에 관한 판단을 재고해보아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감시의 눈초리를 가진 시민이 많아져야 그것이 힘을 만들고 이익만을 쫓으려는 사람들에게 공정성과 인권을 보호받는 환경을 요구할수 있다.


책의 내용을 정리하는 마지막 장에서 그는 이렇게 말했다.

모든 생명은 소중하지만, 소중하다고 해서 가격이 매겨지지 않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생명에는 매일같이, 끊임없이 가격표가 부여된다. 생명가격표는 대개 불공정하다. 생명에 가격이 매겨질 때, 우리는 반드시 그 가격표가 공정하게 매겨지도록, 그래서 인권과 생명이 언제나 보호되도록 애써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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