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사람이 경험하는 스트레스의 양―스트레스 호르몬인 코르티솔의 혈중 농도로 측정된다―은 사회경제적 사다리의 아래쪽으로 내려갈수록 증가하며, 자신의 일에 대한 통제권이 가장 낮은 사람들에게서 최고치에 이르는 것으로 나타났다.
어쩌면 인간의 마음이란 게 원래 그런 것인지도 모르지만, 나쁜 일이 일어나거나 누군가가 죽었을 때 우리는 그에 대한 설명을 찾는다. 이때 우리는 의식적인 동인, 예를 들어 신이나 영혼, 악인이나 시기하는 지인, 심지어 희생자 본인을 부각시키는 설명을 선호한다. 우리는 세상이 부조리하다는 걸 알기 위해 추리 소설을 읽는 게 아니다. 충분한 정보만 주어진다면 모든 것이 이치에 들어맞는다는 걸 밝히기 위해 읽는 것이다.
그렇지만 아무리 많은 노력을 기울인다 해도 모든 것을 통제할 수는 없다. 우리의 몸과 마음도 마찬가지다. 이것이 내가 치명적 암을 확산시키는 심술궂은 대식세포에게서 배운 첫 번째 교훈이다. 몸, 좀더 최신 용어로 말하자면 ‘심신mindbody‘은 잘 돌아가는 기계가 아니 어서 그것을 이루는 각 부분들은 전체의 유익을 위해 순순히 제 역할 을 다하지 않는다. 심신은 아무리 좋게 말한다 해도 세포, 조직, 사고패턴 같은 부분들로 구성된 ‘연맹체‘일 뿐이고, 게다가 이 구성원들은 전체에 해가 되든 말든 자기 일만 먼저 챙기려고 할 뿐이다. 결국, 암도 전체 유기체에 대한 세포의 반란이 아니라면 무엇이란 말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