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을 읽고나서 내용이 기억나지 않거나 ‘내가 뭘 읽었지’하는 경험이 많아서.. 내가 책을 읽는 방법이 잘못되었나 싶어 읽게 되었다. 이 책을 읽는 당시에는 얼마나 많은 책을 읽는가 혹은 얼마나 빠르게 읽을 수 있는가가 중요하게 여겨지기도 했었는데 이 책을 읽고나서 (나는 책 읽는데 시간이 오래 걸리는 편이라) 많은 책을 읽을 필요도 없고 빠르게 읽을 필요도 없다는 사실에 대해 안심할 수 있었다. 원서 제목도 <책 읽는 법 슬로 리딩의 실천>이다. 일본식 계발서적 형식으로 명료하고 정리가 잘 되어서 가끔 잊혀질 만하면 찾아보곤 한다.
해부실의 기능 중 하나는 의사들에게 다른 사회적 상황에서는 적용되는사회 규범을 위반하는 법을 가르칠 수 있게 해 주는 것이다. 임상 실무에 필요한 기술이라는 이유로 말이다. 사체를 절단하는 일에 무심해진 의대생들은 훗날 임상의가 되어 환자들의 몸에 있는 다양한 구멍에 자신의 손과 의료, 기구를 집어넣을 수 있게 될 것이고, 환자들에게 가장 부끄러운 비밀을 털어 놓으라고, 가장 취약한 자세로 맨몸을 드러내라고 요구할 수 있게 될 것이다.
알듯말듯하면서도 내용이 잘 파악되지 않는다. 현재 시점에서 논의되는 건강에 대한 모든 주제를 다루고는 있지만 저자의 요점이 뭔지 잘 파악이 안 된다. 한번 .. 혹은 몇번 더 읽어봐야 명확해지려나. 번역의 문제인가 원문의 모호함 때문인가 ... 이 책을 쓴 당시의 저자 연령이 꽤 높은 것도 신경이 쓰인다.
무언가를 알기 위해서는 먼저 그것을 해체해야 한다. 다시 말해 해부와 현미경 관찰, 그리고 생체 조직을 세포보다 작은 조각으로 분류하는 기술을 이용하여 전체를 구성하는 각 부분을 연구해야 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새로운 패러다임―1960년대 반문화주의의 영향을 받았고, 에머슨 및 동양과 유럽의 많은 신비주의자들에서도 찾아볼 수 있는―에서는 각 부분들 간의 상호 연결, 그리고 ‘부분들의 합보다 크다’고 여겨지는 ‘전체’에 초점이 맞춰졌다. 우주 전체를 우리 각각을 포함하는, 혹은 최소한 우리의 마음과 영혼을 포함하는 단일 실체로 설명하는 경우도 있다. 이러한 관점은 따분한 수학 중심적 환원주의 과학보다 동양의 신비주의와 최근의 환각적 마약 문화와 더 잘 맞는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