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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장 / 구운몽 ㅣ 문학과지성 소설 명작선 1
최인훈 지음 / 문학과지성사 / 1996년 11월
평점 :
구판절판
캘커타로 향하는 배안에 있는 이명준은 한국전쟁이 끝난 뒤 포로석방으로 풀려났다. 그리고 그가 선택한 대로 중립국으로 향하는 중이다.
북으로 도망간 아버지 때문에 경찰서에서 취조 받고 고문당하고 매 맞던 시절이 있었다. 6.25 전쟁이 터지고 북한의 고문관으로 남한에 내려와 은인의 아들이자 자신의 친구였던 태식이를 똑같이 대했던 적이 있었다. 남한에서 윤애를 사랑했고, 북한에서 은혜를 사랑했다. 윤애는 태식이의 아내가 되었고, 은혜는 소련에 발레리나로 행사에 참여했다가 전쟁 이후 낙동강 유역에 간호사로 자원근무하다 죽는다. 이명준은 포로가 되었고, 풀려놨으며, 북한과 남한의 설득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중립국"을 외쳤다. 중립국.
최인훈의 <광장>에는 여러 광장이 나온다. 경제적 광장, 정치적 광장, 문화적 광장. 그는 자기 자신이 나팔수가 되어 '밀실'에 갇혀있는 군중들을 광장으로 이끌어 낼 수 있을까? 라고 스스로에게 질문한 적이 있다. 그러나 그는 나팔수가 될 수 없다. 희망을 꿈꾸고, 이상을 꿈꾸지만, 그 자신이 밀실에 갇혀 광장으로 나오지 못하기 때문이다.
이명준은 남한에서도, 북한에서도 그가 원하는 광장을 찾지 못한다. 광장을 찾지 못했으니 자신이 도달할 광장이 없으며, 군중들을 밀실에서 끌어낼 광장 또한 없다. 그는 그때마다 자신만의 광장으로 찾아 들어갔고, 그곳에서 사랑하는 여인, 윤애와 은혜를 만났다. 이명준은 잃어버린 광장 대신에 나만의 광장, 즉 밀실 속에서 자신의 여자와 함께 했다. 그리고 그곳에서 안식처를 찾았다. 도피처를 찾았다. 밖에서 지고 안으로 들어와 쉴 곳을 찾았다. 밀실 속으로, 끝없이 안으로 안으로 들어와 그는 숨어버렸다. 그런 그가 어떻게 군중을 광장으로 이끄는 나팔수가 될 수 있었겠는가. 그는 남한과 북한 양쪽 모두를 비판한다. 남한이란 키에르케고르 선생식으로 말하면 실존하지 않는 사람들의 광장 아닌 광장이었으며 자유가 있지만 열정이 없고, 북녘에는 게으를 수 있는 자유까지도 없다. 그 어느 쪽도 내가 몸담을 곳은 아니다는 생각을 갖는다.
‘사람마다 다르게 마련된 몸의 길, 마음의 길, 무리의 길, 대일 언덕 없는 난파꾼은 항구를 잊어버리기로 하고 물결 따라 나선다. 환상의 술에 취해보지 못한 섬에 닿기를 바라며. 그리고 그 섬에서 환상 없는 삶을 살기 위해서. 무서운 것을 너무 빨리 본 탓으로 지쳐빠진 몸이 자연의 수명을 다하기를 기다리면서 쉬기 위해서 그렇게 해서 결정한 중립국 행이었다. ’고 이명준은 중립국행을 결정한 이유를 말한다.
중립국. 중립국. 중립국. 중립국... 그는 끊임없이 중립국을 희망한다. 그러나 결국 그가 원했던 것 또한 중립국은 아니었다. 나의 존재 자체를 부정함으로써 마지막 도피를 시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