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 밥꽃 내일을여는어린이 생각나눔 1
장영란 지음, 김휘승 그림 / 내일을여는책 / 2020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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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밥꽃 마중이라는 책을 출간하면서 우리 밥상에 매일같이 올라와 사람을 먹여 살리는 이 꽃들을 밥꽃이라고 이름 붙이고, 사람의 목숨꽃이라 여겼다는 작가. 무주에서 농사짓고 살면서 10여년 동안 관찰해서 사진을 찍고 글을 쓴 60여 가지 밥꽃 중 아이들에게 꼭 들려주고 싶은 밥꽃 7가지를 이 책에 썼다. 옥수수 꽃, 벼꽃, 콩꽃 오이꽃, 무꽃, 배추꽃, 시금치꽃이 그 7가지다.


내가 좋아하는 옥수수 꽃은 한 그루에서 수꽃과 암꽃이 같이 핀다. 위에는 수꽃, 아래는 암꽃이 피어 바람 불면 꽃가루를 아래로 뿌려준다. 옥수수수염이 암꽃이란다. 암꽃 하나에 한알의 옥수수 열매가 맺힌다고 하니 옥수수 수확할 때를 생각해봤다. 옥수수수염이 조금 있는 것은 옥수수가 몇 알 되지 않고 옥수수수염이 많은 것은 옥수수알이 많이 맺혀있었다.


벼꽃은 꽃잎 없이도 껍질이 벌어지면 수술이 나와 꽃가루를 날려 수정을 시키고 다시 껍질이 닫혀 벼꽃 한 송이가 쌀 한 톨이 된다. 벼꽃을 자세히 들여다보지는 않았으나 수술이 나온 모습을 보니 내가 알고 있는 상식의 꽃 종류와는 사뭇 다르다는 생각이 든다. 수정이 끝나면 껍질이 닫힌다니 자연의 섭리와 오묘함을 느낀다.


콩 꽃은 아름답다. 보라, 흰색으로 모양도 제법 커 우리 눈에 잘 띈다. 노랑콩은 메주도 쑤어 된장도 만드는데 원산지가 우리나라로 전 세계로 뻗어 나갔다고 한다. 우리 콩에 대한 자부심을 가져도 되지 않을까. 지난해 친정엄마가 거둬 주신 쥐눈이콩이 있어 주전자에 콩나물 기르기에 도전해 봤다. 쉽게 생각했는데 하루에 3~4번 물을 부어주고 따라 내는 것이 어려웠다. 싹이 나는가 싶더니 그 싹이 더 크지 못하고 조금씩 썩고 있었다. 조금씩 썩기 시작하니까 금방 다른 콩에도 번져 버릴수 밖에 없었다.


어느 해 땡볕에 오이를 따기 위해 산밭에 올라갔는데 어떤 꽃은 아기 오이를 달고 있고 어떤 꽃은 아기 오이가 없이 꽃만 피어 있었다. 아기 오이를 달고 있는 꽃은 가뭄에 콩나듯 하나씩 있었다. 암꽃과 수꽃이 한 줄기에서 피어 벌이나 나비가 꽃가루를 전해줘야 열매가 열린다. 내가 본 오이꽃은 토종 오이꽃이었다. 종자회사는 암꽃만 있어도 열매가 열리는 것을 이용해 암꽃만 피는 씨앗을 만들어 팔아 씨앗이 맺지 못한다. 그래야 다음 해에 다시 씨앗을 사기 때문이다. 시중에 나오는 대부분의 오이가 그렇게 재배된 오이라고 한다.


유채꽃과 가장 비슷한 배추꽃. 배추꽃을 보기 어려운 이유는 배추가 꽃을 피우고 씨앗을 맺을 때까지 놓아두지 않고 뽑아서 먹기 때문이다. 가끔 배추를 수확하고 남겨 놓은 경우가 있다. 초봄에 뽑아 겉절이라도 해 먹으면 좋은데, 그러지 못하고 남은 배추가 꽃이 피는 것을 봤는데 참 예뻤다.


시금치 씨앗은 봤는데 꽃은 눈여겨보지 못했다. 암시금치와 수시금치는 꽃이 따로 핀다. 이들은 서로 붙어 있어야 씨앗을 맺는다.


내가 어렸을 때는 종묘상에 가서 씨앗을 사오는 일이 드물었다. 올해 심어 갈무리하면서 씨앗을 받아 놓았다가 내년에 다시 심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지금은 상추, 배추, 시금치, , 옥수수, 마늘, 고구마 등 종묘상에 가서 씨앗이나 모종을 사다 심고 있다. 우리 씨앗이 점점 사라지고 있다. 친정엄마는 지금도 옥수수, , , 오이는 수확한 열매를 먹고, 씨앗을 남겨 놓았다 다음 해 다시 심는다. 이 책에서는 밥상에 올라오는 곡식의 꽃에 대해 알려주고 있으나, 이 꽃은 결국 씨를 맺게 한다. 우리 조상들이 우리 땅에서 가꾸고 거둬들여 우리 체질에 맞는 곡식이 되었을 거라 여겨진다. 그렇다면 그 토종씨앗도 우리가 보존해야 하지 않을까?


토종씨앗을 수집하고 보존하는 토종씨드림이라는 단체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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플레이머 에프 그래픽 컬렉션
마이크 큐라토 지음, 조고은 옮김 / F(에프) / 2022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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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플레이머>를 다 읽고 책을 덮으니 마음이 무겁다. 아직도 동성애를 남이 한다면 그럴 수 있겠다고 받아들이겠는데 내 일이라면 선뜻 받아들이기 어려울 것 같아 더 마음이 무겁다. 날이면 날마다 기분이 좋지 않은 아버지 때문에 숨소리마저 조심해야 하는 에이든 나바로. 엄마와는 대화를 많이 하고 격려를 받기도 하지만 엄마 아빠의 잦은 싸움으로 인해 마음 둘 곳이 없는 에이든은 보이스카우트 여름 캠프에 일주일 동안 참여하게 된다. 일주일 동안 보이스카우트 활동은 재밌었다. 여름 캠프를 좋아하는 이유는 맨날 싸우는 부모님을 떠나 휴식을 취할 수 있고 숲속은 정말 평화롭기 때문이다.’라고 한다.


유치원부터 중학교까지 다니면서 너무 작고, 너무 뚱뚱하고, 남자답지 못하고, 완전히 백인이지 못하고, 이성애자답지 못하다고 놀리고 괴롭힘을 당해 왔다. 보이스카우트 여름 캠프에서도 이와 비슷한 일들이 생기지만 주변 친구들의 격려와 그 격려에 힘입어 이겨내기도 한다. 그러다가도 다시 수렁에 빠지고 빠져 나왔다가 다시 또 빠진다. 에이든은 어디서도 결코 안전하지 못하다고 생각하고 죽음까지 생각한다. 하지만 주변에서 함께하는 이들이 있어 도와주고 도움을 받는다. 혼자가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된다.


사춘기를 질풍노도의 시기라고 한다. 정말 그랬던 것 같다. 아주 조그마한 일이었는데 붙잡고 힘들어하고 좌절하고, 모든 고민과 고난을 어깨에 메고 다니던 그 시절. 하지만 또 꿈과 희망으로 들뜬 나날을 보낸 적도 있었다. 에이든처럼 어려운 환경에서 청소년기를 보내지 않았다는 것만으로도 다행스럽고 행복하다는 생각이 든다.


수요일 코스 돌아보며 표지 챙겨오는 놀이를 하면서 사실 맞는북쪽은 없어. 전부 네가 가야 할 곳에 도달하는 방법을 찾기위해 필요한 것일 뿐이야. 무조건 앞으로 나가는 일만 중요한 게 아니야. 이 세상에서 네가 어느 위치에 있는지 파악하는 일이 먼저고, 그다음에 길을 찾기 위해 오류를 조정해야 해. 누구나 가끔은 길을 잃었다고 느끼게 마련이야. 네 나름의 속도로 너의 길을 찾게 될거야.‘(203)라고 교관이 조언과 위로를 해준다. 이런 것을 알고 실천한다면 청소년기에 방황할 일이 있을까?


매일 에이든을 괴롭히는 일이 꿈속에서도 일어나고, 마지막 날 부정한 행위를 한 자신과 자연의 뜻을 거스른 행동을 한 죄로 불에 타는 형벌을 내리는 꿈을 꾼다. 그 불꽃은 삶의 불꽃이다. 그리고 영혼이다. 삶에는 고통이 있고 너는 너 자체로 충분하다며 손을 잡는다.


불을 완전히 껐다고 생각한 순간마저도 그게 아닐 때가 있다. 내 삶은 엉망진창인 것만 같다. 어떻게 대해야 할지 도저히 알 수 없는 사람들도 여전히 남아 있고어떻게 같이 살아야 할지 알 수 없는 가족들과 나를 죽을 만큼 무섭게 만드는 내 안의 감정들도 있다. 하지만 오늘 나는 알게 되었다. 이 불은 아직 다 타지 않았다는 사실을.’---352~358쪽 에이든에게 희망의 작은 불씨를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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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에 나온 만화 작품 중 청소년이 읽으면 좋을 책을 골라 봤다.


1. 그해봄- 인혁당 8명 사형수 이야기

2. 토요일의 세계

3. 까대기

4. 준이 오빠

5. 너는 검정

6. 나는 누구입니까

7. 좁은방

8. 웬델

9. 학교에서 살아남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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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에서 살아남기
스베틀라나 치마코바 지음, 류이연 옮김 / 보물창고 / 2017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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웬델- 마음의 얼룩을 지워 주는 마법 같은 친구
브레나 섬러 지음, 임윤정 옮김 / 밝은미래 / 2020년 8월
15,000원 → 13,500원(10%할인) / 마일리지 750원(5% 적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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좁은 방- 내 빵 생활 이야기
김홍모 지음 / 보리 / 2018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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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누구입니까
리사 울림 셰블룸 지음, 이유진 옮김 / 산하 / 2018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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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양 당한 사람의 삶과 뿌리찾기.
입양시킨 자의 바람직한 자세는 무엇인가.
입양에 대한 우리 사회문화가 바람직한 흐름으로 가는 길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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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다운 페미니즘
코트니 서머스 외 지음, 켈리 젠슨 엮음, 박다솜 옮김 / 창비 / 2018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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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왜 그러는데?

이 책의 초반부는 읽어 내기가 어려웠다. 지금까지 살면서 수동적으로 받아들이고, 생각 없이 살아오지 않았나 하는 삶에 대한 회의감이 겹쳐 가슴이 답답했다. 우리나라 작가인 정세랑의 글에서 공감대가 형성됐다. 어린 시절 남자아이와 여자아이에 대한 차별이 내가 받았던 경험과 일치하면서 숨통이 조금씩 트이기 시작했다.

얼마 전 동생 식구들과 친정집에서 만날 기회가 있었다. 그곳에서 코로나 예방접종에 대한 이야기가 나왔는데 2차 접종이 더 아프다고 입을 모았다. 동생이 그런데 남자가 되 가지고 아프다면서 예방접종을 하지 않는다고 하더라니까.”라고 말하니까 조카가 엄마 그런 말 하면 안 돼.” 그러길래 내가 왜 그러는데?” 하고 물으니 남자가 그러면 안 돼, 여자가 그러면 안 돼 라는 말을 하면 모두 싫어하고 안된다고 그러던데?”라는 말을 했다. 나는 지금도 남성의 모습과 여성의 모습이 머릿속에 고정되어 있었는데, 요즘 젊은이들 사이에는 그 고정 관념이 깨지고 있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세상이 조금씩 조금씩 변해가고 있다는 생각에 고무적인 순간이었다.

 

2. 페미니즘과 페미니스트

이 책을 읽어 내기 힘든 것 중 하나는 어려운 단어도 한 몫을 차지했다. 그래서 페미니즘과 페미니스트는 정리하는 것이 좋을 것 같다. 페미니즘은 오래전부터 이어져 왔던 남성 중심의 이데올로기에 대항하며, 사회 각 분야에서 여성 권리와 주체성을 확장하고 강화해야 한다는 이론 및 운동을 가리킨다. 페미니즘은 19세기에 들어서 시작됐으며, 시대와 그 양상에 따라 크게 1세대, 2세대, 3세대 물결로 나뉜다. 1세대 페미니즘은 여성 인권 운동이었다. 2세대 페미니즘은 남성의 폭력성에 대한 고발 및 여성의 경제적 독립과 사회적 안정을 추구하는 운동이라 할 수 있다. 3세대 페미니즘은 다양한 성에 대한 수용과 성적 자기 선택권을 주장하고 있다.

페미니스트의 정의는 페미니즘을 따르거나 주장하는 사람을 말한다. 이 책을 읽기 전까지 페미니스트가 여자에게만 해당되는 단어인 줄 알았다. “페미니스트는 절대 남성 혐오주의자의 동의어가 아니다. 페미니스트는 레즈비언에게 붙는 이름표도 아니고, 이성애자만 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동성애자, 이성애자, 양성애자, 트랜스젠더, 퀴어, 그 밖에 젠더에 순응하지 않는 모든 사람이 페미니스트가 될 수 있다. 사상가도 행동파도, 노동자도 전문직도, 운동선수도 예술가도 극빈자도 대통령도 누구나 페미니스트가 될 수 있다. 학대받는 여성들의 문제는 아주 심각하므로 모두가 힘을 모아야만 해결할 수 있다.(169~170)”라고 미아 드프린스&미켈라 드프린스는 이렇게 말했다. 나의 페미니스트에 대한 편협한 지식을 넓혀준 대목이다.

 

3. 페미니즘은?

나다운 페미니즘을 읽으며 페미니즘과 관련된 글 중 내 가슴에 와닿는 메시지들을 모아봤다.

- 페미니즘은 어떻게 외모를 가꾸고 어떻게 행동해야 하는지에 관한 사회적 기대로부터 여성을 해방시킨다. --55

- 페미니즘은 신체 강박에서 벗어나겠다는 선언이다. 개인적인 게 곧 정치적이다. 자신의 몸에 강박을 느끼게 만들고 자신을 비판하고 억압하게 만드는 현상에 적극적으로 맞서 싸우는 것이다. --73

- 페미니즘이란 여성들에게 해를 입히는 고정 관념을 깨는 수단이기도 하다. --85

- 페미니즘은 여러 층위의 권력 구조를 무너뜨리는 것이다. 정신 질환을 대하는 우리 문화의 유해한 태도 또한 페미니즘이 무너뜨려야 할 대상이다. --86

- 진짜 페미니즘은 진정한 평등을 위한 것이고, 우리 모두의 안에 내재 된 인간성을 위한 것이다. --142

- 우리의 페미니즘은 분노와 혐오, 남자에 대한 두려움으로 빚어진 것이었다. 페미니즘은 아버지와 형제, 아들, 삼촌, 사촌들의 지지를 받는, 인간의 운동이어야 한다. --156

- 페미니즘은 인종과 종교, 장애 여부, 성적 지향과 관계없이 모든 여성에게 동등한 권리와 기회를 주자는 주장일 따름이다. --169

- 페미니즘은 행동이다. --178

- 페미니즘이란 스스로 선택하고 그대로 행동할 능력을 가지는 것이다. --226

- 페미니즘은 여러 생각과 믿음, 생활 방식과 열정의 집합체이다. 그 다양성이 페미니즘을 위대하게 만든다. --324

 

4. 다양한 나다운 페미니즘 이야기

제시카 루서가 쓴 페미니스트의 사랑은 평범하게 살아가는 삶 속에서 페미니즘을 실천하며 살고 있음인지 공감이 갔다.

여자들은 안정적인 결혼 생활이나 가족을 위해 자신의 행복을 희생하라는 요구를 받는다. 그러나 결혼의 또 다른 당사자에게는 같은 요구를 거의 하지 않는다. 여자들은 학대당하고 자아를 잃어 가면서도 침묵을 지켜야 칭찬받을 수 있다. 페미니스트의 사랑은 이런 메시지를 부정한다. 페미니즘적인 관계에서는 누구 한 사람의 감정과 필요와 욕구가 더 중요하지 않다. 모두 똑같이 존중받는다. 그게 페미니스트의 사랑이다.”---278

완전한 삶을 사는 사람에게 사랑은 그 자체로 결코 충분할 수 없다. 그냥 사랑만으로는 절대 충분하지 않다. 자기 자신을 사랑하는 게 필수다. 상대와 페미니스트의 사랑을 나누되, 자신을 사랑하는 것도 잊지 말자고 제시카 루서는 말한다.

2007년 우리나라를 떠들썩하게 했던 출판 문학계의 중심에 있었던 정세랑 작가의 글은 가슴이 먹먹했다. 추악했던 그 시절을 맞이한 사회 초년생 작가는 소설 속에서 그들을 복수한다.

편집자의 업무는 흥미로웠지만, 술자리의 꽃 취급을 당했던 것은 역겹고도 역겨운 경험이었다. 술자리 접대를 하기 위해 그렇게 열심히 공부한 것은 아니었다. 작가들은 편집자들을 험하게 대했고, 새벽에 전화를 걸어 왔고, 심한 경우 만지기도 했다. 최악의 경험은 모 원로 작가의 문하생들과 함께 있던 자리에서 겪었다. 방송국 피디라는 자가 나를 만지고 내 눈앞에서 돈 부채를 만들어 흔들며 말했던 것이다.
, 나랑 내 러시아인 여자 친구랑 따로 한번 만날래?”
몇 년 후, 나는 그자를 소설에서 추하게 그려 복수 했지만 그 자는 그때의 일을 기억도 못하리라 장담한다. 가해자들은 매번 기억하지 못한다. 그들에게는 일상이기 때문이다.”(45)

노바 렌 수마는 고등학교 졸업반에서 세계 인문 수업을 들었다. 수업 계획서를 보고 여자 작가가 없다는 것을 알고 왜 수업 계획서에 여자가 하나도 없죠?”라고 묻는다. 그에 대한 선생님의 대답은 그럴만한 가치가 있는 여자가 없어서란다. 이 말을 듣고 선생님이 틀렸다는 사실을 직접 증명하기로 했다. 그리고 여성 작가의 책만 읽겠다 결심하고 5년가량 여성작가의 책을 읽었다. 여성 작가들의 책만 읽게 되면서 금세 여성 작가들이 가치있다는 걸 깨닫게 되었고 여성이 주인공인 청소년 소설을 4권이나 쓸 수 있었다.

코트니 서머스는 소설의 세계는 호감의 규칙이 지배한다고 했다. 여성 인물은 다른 무엇보다도 호감이 가야 하고, 그러지 않으면 독자의 이상에서 어긋나니까. 하지만 그는 본인의 올 더 레이지라는 소설 속 여성 주인공을 까칠하게 그렸다. 자기 고통을 숨기지 않더라도, 남의 호감을 사려 노력하지 않아도, 모든 여성에게는 존재 가치를 인정받고 인생의 좋은 것들을 누릴 자격이 있다고 했다.

애슐리 호프 페레스착한 여자가 되기를 강요받고 있는 사회에서 이를 깨기위해 노력했다. 말대꾸하지 않는 착한 여자가 되는 게 아니라 어디까지나 공손하고, 사려 깊고, 상대의 말을 경청할 준비가 된 말대꾸를 하고, 누군가에게는 참견으로 보일 행동이 연대의 행위다고 했다. ‘착한 여자라는 다른 사람의 틀에 스스로 욱여넣고 매순간 남들이 바라는 대로 행동하지 않아도 된다면서 착한여자를 관두자고 했다.

 

5. 나다운 페미니즘

딸이 어느 날 엄마! 내가 친구들 만나고 나서 엄마한테 고마운 것이 있었어. 뭐냐면 오빠하고 나하고 차별하지 않고 키워서. 친구들 얘기 들어보니까 엄마 아빠가 오빠와 자신을 차별해 키웠다고 열을 내더라니까.”라는 얘기를 했다. 내가 자랄 때는 남동생과 차별을 많이 받고 자랐으나 내 아이를 키울 때는 의식적으로 아들과 딸을 구분해 키우지 않으려고 했다. 그리고 아들이나 딸이 주장하는 것은 될 수 있으면 들어주려고 노력했다. 5살이 된 딸아이가 치마를 입지 않겠다고 했을 때, 예쁜 치마를 입히고 싶은 나의 마음을 내려놓고 유치원도 반바지를 입는 곳으로 보냈던 기억이 있다. 딸이 얘기한 것처럼 아들딸을 차별하지 않고 키우고, 딸의 주장을 꺾지 않고 잘 들어 준 것 또한 나다운 페미니즘의 실천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이 책을 처음 접할 때 들었던 답답함과 회의감이 책을 다 읽고 나니 해소가 되었다. 그리고 이렇게 작은 것들이 몸에 체화되어 나도 모르게 나다운 페미니즘을 실천할 수 있었던 기저에는 내 아이들이 어렸을 때부터 활동했던 어린이도서연구회의 힘이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린이도서연구회의 정체성이 무엇인가? 내 아이만을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겨레의 아이들을 생각하지 않는가!

켈리 젠슨은 페미니즘은 그때나 지금이나 화려하지 않다. 내 강점은 듣기와 생각하기, 평가하기와 지지하기인데 이것들은 눈에 잘 보이고 귀에 잘 들리는 다른 페미니스트들의 강점만큼이나 중요하다. 나의 페미니즘도 변화를 일으킬 수 있다. 시끄러운 사람과 조용한 사람들이 함께 내딛는 한 걸음 한 걸음에서 변화가 일어난다. 나의 목소리에는 똑같은 무게가 있다. 그 목소리를 사용하는 한, 누구나 자기 나름의 독특한 마법을 부릴 수 있다. 당신의 마법이 중요한 건, 당신이 중요하기 때문이다. (374)”고 했다.

내가 내는 목소리가 보잘 것 없다 생각하지 않고, 할 수 있는 범위 내에서, 작은 것들이 모여 변화는 시작된다. 지금 내가 잘 할 수 있는 일을 행동으로 실천하는 것이 나다운 페미니즘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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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리기의 맛 창비청소년문학 80
누카가 미오 지음, 서은혜 옮김 / 창비 / 2017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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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들이 살아가면서 많은 고뇌와 번민을 한다. 그 고뇌와 번민이 가장 많았던 때를 떠올려봤다. 그 때는 인생의 전환점이 되었던 시기였다는 생각이 든다. 고등학교에서 대학교로 진학 할 때, 대학마치고 사회생활 할 때, 결혼 할 때인 것 같은데 이때는 뭔가를 결정을 해야 하는 시기이다. 충분히 고민하고 결정하지만 삶이라는 것이 정답이 없기 때문에, 미래라는 것을 장담할 수 없기 때문에, 걱정하는 것이며 두려웠던 것이다. 누구나가 다 인생을 살면서 경험하는 인생살이라는 것을 지금은 알고 있는데, 청소년기 때는 나에게만 닥치는 시련으로 느끼기도 했던 것 같다.

안정된 자세와 빠른 다리로 촉망받는 마라톤 에이스 마이에 소마는 오른쪽 무릎의 골절로 반년 간 달리기부를 이탈하게 된다. 소마는 자신이 더 이상 달리는 것에 희망이 없다는 것을 스스로 잘 알고 있다. 하지만 여전히 달리는 것에 대한 미련도 있고 지금의 상황을 어떻게 결정할지 모른다. 재활을 하는 도중 육상과 전혀 다른 요리에 눈을 뜬다. 단 한명의 요리부원 이사카 미야코. 미야코의 도움으로 동생 하루마와 아버지가 인정하는 맛있는 요리를 만든다. 부상 때문에 형제가 다투고 괴로움에 힙싸인 날에는 채소와 고기가 듬뿍 들어간 달콤한 카레, 모의고사 성적이 형편없어 절망적인 날엔 엄청나게 커다란 로스트비프로 자신들을 달랜다. 소마 자신도 놀라울 만큼 요리의 세계에 빠져드는데 요리를 하면서 마음 깊은 곳에서 외면하던 것들을 받아들인다.

동생을 생각하며 달리기를 해야 하는지 안해야 하는지 갈등을 일이키고 있는 소마에게 도망쳐도 된다고 생각해. 달리기로부터도, 동생에게 지는 것으로 부터도.’ 라고 말하는 미야코. 둘이는 음식을 만들며 더없는 기쁨을 느낀다. 또한 소마의 진로에 그렇게 정했으면 나는 이러쿵저러쿵 안 할게.’라고 말하는 담임선생님 미노루의 말은 어찌 생각하면 무심하다는 생각이 들기도 하지만 자신의 진로는 자신이 가장 많이 생각하고 정하는 것이라 여겨서 그랬을 거라는 생각이 든다. 시점이 현재에서 과거로 과거에서 현재로 이어져 헛갈리기도 하고 흐름이 끊기기도 했지만 힘차게 하나하나 이뤄나가며 성장해 가는 소마와 하루마 형제 그리고 미야코를 만나서 즐거웠다.

우리의 인생을 달리기에 비유하기도 한다. 너무 빨리 달리면 과부하가 걸리고, 느리게 달리면 목표지점에 도달하지 못할 수도 있다. 오르막이 있으면 내리막도 있다. 직진 코스만 있는 것도 아니며, 굴곡진 코스만 있는 것도 아니다. 온화한 날씨에만 달리는 것도 아니며, 험한 날씨에만 달리는 것도 아니다. 달리는 동안 무슨 일이 일어날지 모른다. 그리고 혼자만의 싸움이다.

제대로 달려라. 간단하지만 어려운 것이다. 제대로 달린다는 것은. 재대로 달리기를 계속한다는 것은. ---- 27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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