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전거를 타고 기분 좋게 달려간다. 자전거 도로가 따로 없으니 보도로 달리는 수 밖에. 물론 사람들을 다치지 않도록 주의해야 한다. 보도는 역시 걷는 사람들 몫이니까.
바퀴 달린 물건을 타고 달릴 때는 사방을 경계하고 미리미리 방어운전 하는 것이 필수, 따라서 전방을 멀리까지 확인하는 것도 필수다.
엇! 그런데 저 앞이 심상치 않다.
한 술집 앞에 주차해 놓은 비싼 독일산 프리미엄 브랜드 자동차. 보도를 반쯤 차지하고 차를 세워 놓는 것은 우리나라에서야 흔한 일, 어쩌면 세계 어디서나 흔한 일일 수도 있다. 주차장의 부족이 큰 원인, 또 가끔은 피치 못할 사정이 있을 때도 있다. 잠깐 차를 세워놓는 정차의 경우라면 더더구나 문제되지 않을 듯. 그런데 이 독일차는 엊저녁부터 그 자리 그대로다.
한 블록 건너 횡한 공공주차장엔 듬성듬성 한 눈에 주차공간이 즐비하다. 그래도 무엇이 문제랴, 자동차 주인은 무섭게 부라린 자동차 눈알을 통해 이거 내 자동차고 여긴 내 가게야. 그러니 이 앞은 다 내 세상이야, 소리친다. 너희들 지날 수 있는 자린 특별히 내가 활짝 열어 놓았다. 그러니 고마운 줄 알아라. 그렇다 무엇이 문제이겠는가. 얼마든지 지날 수 있는 것을.
정작 문제는 그 자동차 옆으로 작은 트럭 한 대가 또 서 있는 거다. 그런대로 넓은 보도가 차로 꽉 막힌 듯 답답하다. 다가가며 자세히 보니 트럭 운전자는 보행자를 최대한 감안했다. 웬만큼 뚱뚱한 사람도 차에 닿지 않고 지날 수 있는 넓이를 허락했으니. 나란히 걷던 보행자들이 한 마디 불평도 없이 일렬종대로 헤쳐 모여 쏙쏙 잘도 빠져 나간다. 정말 따뜻하고 인정 어린, 보기 좋은 광경이다.
진짜 문제는 내 앞을 달려 가던 자전거다. 그것이 그만 길을 가로막고 말았다. 나는 이미 달려오면서 길고 긴 사십 년 세월 동안 절차탁마 갈고 닦은 눈짐작으로 차 사이 간격을 정밀 측정했고 자전거가 어느 쪽 차에도 닿지 않고 지날 수 있음을 확신했다. 그러나 내 앞 자전거 운전자는 초보임에 틀림없었다. 우왕좌왕 당황하는 움직임. 차 사이로 앞 바퀴를 넣은 상태로 후진이 자유롭지 않은 자전거를 돌리려고 휘청휘청 뒤뚱뒤뚱, 벌겋게 달아오른 얼굴로 고개를 돌려 나를 바라본다. 나는 경적을 울리며 재촉하는 몰인정을 뒤로 감추고 똑바로 가면 된다는 베테랑의 격려하는 눈짓을 보낸다.
그때 내 뒤로 몇 명의 보행자가 나타났다. 지나갈 수 있을까 슬쩍 고개를 빼 들고 확인하더니 곧장 차도로 내려서서 빙 둘러 걸어간다. 한가득 불쾌함을 무표정에 감추고 말 한 마디 없이 유순히 걷는 그들의 모습에서 또 한 차례 인정과 융통성의 감동을 느낄 수 있다. 나 역시 그들 뒤를 따라 차도로 내려가는 길을 놓고 잠깐 고민했지만 도로의 높은 턱을 감안하면 잠시 기다림의 여유를 갖는 편이 에너지와 시간의 측면에서 좀더 효율적이라 판단했다. 사실은 초보 운전자가 어떻게 지나갈 것인지, 초로에 접어든 그 남자가 소형 트럭 기사에게 한마디 하지 않을까 궁금하기도 했다.
한참 헤매다 드디어 없던 용기를 짜낸 것인지 혹 절망을 뛰어넘은 필사적 저항의 발로인지 자전거 초보 운전자가 과감하게 외제차와 허름한 소형 트럭 사이를 파고들었다. 이제 뒷바퀴만 빠져나가면 끝나는 상황, 고된 여정을 마치고 보람을 느끼고 싶었던 걸까, 몸을 틀어 뒤를 바라보는 남자의 얼굴에 삐질 삐질 구슬땀이 흘렀다. 그가 완전히 차 사이를 빠져 나가는 동안 작달막하지만 험상궂은 인상의 트럭 기사가 나타났다. 한 짐 갖다 놓고 다음 짐을 내리려는 모양. 자전거가 차 사이를 완전히 벗어났나 싶을 때 일상에 겨워 생기를 잃은 트럭 기사의 맹한 눈이 갑자기 반짝 빛을 되찾는다.
관심, 비난, 긴장, 갈등, 고소함 등등 실로 다양한 감정이 생생하게 섞이고 충돌하는 눈빛. 동시에 초보 운전자의 움직임에서도 수상한 변화가 떠오른다. 간신히 험로를 통과하고 너른 길에 이르렀으니 쌩하니 내달릴 법도 한데 그의 등이 자아내는 어색한 움찔거림.
사십 년 넘게 훈련된 눈으로 즉각 원인 규명에 나선 나는 단 일 초도 지나지 않아 독일산 자동차 옆구리의 신선한 생채기를 발견했다.
자전거 운전자의 눈길이 트럭 기사를 향했다. 두 사람의 시선이 마주쳤다.
"당신 때문이잖아!"
자전거 운전자의 눈이 원망을 말했다.
"뭐야 미친 놈 아냐!"
트럭 기사의 눈이 발뺌과 욕설을 내뱉었다. 찰나의 충돌 이후에 그들의 눈길은 급속히 화해 무드, 아니 정확히 말해 어물쩍 모드로 돌입했다. 넌 빨리 가고, 넌 빨리 트럭 치우고, 그럼 누가 알겠니. 어차피 있는 놈의 차다. 누가 보도에 불법주차 하라냐. 전격적인 합의에 이른 두 사람이 이쯤에 이르러 동시에 나를 쳐다보았다.
나는 얼른 그들의 예리한 시선을 피한다. 나는 아무 것도 보지 못했다. 나는 빨리 여기를 떠나 내 갈 길을 가련다. 비켜다오.
양 발로 자전거를 살금살금 움직여가며 능숙하게 외제차와 소형트럭 사이를 지나는 시범을 보여주고 싶었다. 자전거가 좁은 통로 안으로 반쯤 진입했을 때 번뜩 머리를 스치는 생각,
"아니, 이러다 덤터기 뒤집어 쓰는 경우가 있다!"
즉시 발을 통통 구르며 전진과 마찬가지로 능숙하게 후진 모드로 움직였다. 이제 남은 선택은 트럭이 움직이기를 기다리고 서 있거나 차도로 우회하는 방법. 그게 아니면? 법을 준수하는 훌륭한 시민답게
"잠시 주차 중 000-0000-0000"
차창에 예쁘게 붙은 전화번호 주인에게 피해 상황을 알려야 하는 걸까? 아니면 경찰을?
우리나라를 살아가는 인정 많은 사람으로선 할 도리가 아니다. 여러 가지 바삐 계산한 결과 쉽게 답이 나왔다. 우회, 그것이 최선이다. 안장에서 내려 자전거를 끌고 차도로 내려가서 트럭 옆을 지났다. 다시 자전거를 들고 보도로 올라왔을 때 초보 자전거 운전자는 이미 범행 장소를 벗어나 유유자적 저 앞 먼 발치를 달려 가고 있다. 트럭 운전자와 눈이 마주쳤다. 그 순간 난 무언가 큰 실망을 했다. 왠지 몰라도 큰 상처를 입은 느낌이다. 그의 눈에서 대체 무엇을 기대했길래?
그의 눈에서 발견하고 싶었던 게 한 터럭의 미안한 마음이었을까. 그로 인해 많은 사람이 불편을 감수했으니. 우선 내게도 적잖은 시간과 에너지를 잃게 만들었고, 거기에 양심을 팔아버린 듯 무참한 죄책감에 시달려야 하니. 사과의 말은 너무 황송해 바라지 못하더라도, 사느라 그래요, 미안한 눈빛 정도라도.
도로변에 트럭을 세웠더라면? 어차피 차가 많이 다니지 않는 시간, 도로변에 차를 세웠더라도 교통에 크게 방해가 되지는 않았을 게다. 또 보통은 그렇게 짐을 부리지 않는가. 백 번 양보해 인도에 차를 세운다고 해도 자동차와 어긋나게 주차해서 지나는 사람들을 조금이라도 배려할 수 있었을 텐데. 그런데 트럭 기사는 자기를 제외한 어떤 사람의 불편도 염두에 두지 않았다. 그의 효율을 위한 계산에 그런 데이터는 필요가 없었을 게다.
항상 그래왔을 게다. 보다 빠르고 보다 쉽게 짐을 내리기 위해 습관처럼 거기에 그렇게 트럭을 세웠을 게다. 그의 시간과 에너지를 절약하기 위해 가장 효율적인 방법. 보행자와 자전거 운전자들을 조금 불편하게 하고 시간과 에너지를 조금 낭비하게 만든다고 해도 자기 자신의 효율을 찾는 것이 가장 중요했으리라. 학교에서 그런 이론을 배운 적이 없었다고 해도 그런 이론을 신봉하는 사회 속에서 그는 자연스레 그것을 배웠고 그래서 전혀 미안하지 않았으리라.
무언가 문제가 있었는데 결과적으로 아무 문제도 없다. 사람들은 길을 지났고 자전거도 갈 길을 갔고 트럭은 짐을 내렸고 또 갈 길을 갔다. 문제라면 외제차의 가늘지만 선명한 2센티짜리 생채기. 보도를 차지하고 당당하게 서 있는 이 자동차의 주인은 신선한 생채기를 발견하고 무슨 생각을 할까? 없는 놈들은 양심도 없다, 개 같은 나라다, 이런 생각? 차를 주차장에 세웠다면 이런 일이 없었을 텐데, 후회를 할까? 혹시 나 때문에 지나는 사람들이 불편하지는 않았을까, 우리나라는 이런 생각이 필요 없는 인정 많은 나라다.
나는 어떻게 행동해야 했을까? 인정 많은 나라의 시민답게 행동한 것 같은데 맘 한 켠이 영 찜찜하다. 문제의 한 가운데 있다가 문제에서 벗어났는데 조금도 시원한 기분이 아니다. 외제차 주인을 만나면 미안할 것 같다. 하지만 아무 말도 하지 못한다. 무슨 말이라도 삐끗 잘못하면 난 인정 없는 놈일 뿐만 아니라, 융통성, 처세술도 없는 허접쓰레기가 된다. 초보 자전거 운전자를 만나면 어떤 표정을 지어야 할까? 나이 만큼 점잖음을 앞세우는 그의 얼굴이 이런 무례한 놈, 어디 어른 얼굴을 빤히 쳐다봐, 하면 난 무안하게 고개를 돌려야 한다. 트럭 운전자를 만나면 어떡해야 할까? 그렇게 차를 세우면 어떡합니까, 앞뒤 좀 더 생각하고 세우시면 좋을 텐데… 조심스런 항의라도 해봐야 할까? 벌써 살이 떨린다.
난 인정 많고 살기 좋은 대한민국 국민이다. 상식적으로, 통계적으로, 효율적으로 살아야 하는 대한민국 국민이다. 자기만의 상식, 자기만의 통계, 자기만의 효율이 아니라 타인과 전체를 위한 상식, 긴 시간을 위한 통계 그리고 인간을 위한 효율을 고려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건 잘못이다. 문제가 있으면 문제를 바로 잡아야 한다고 생각하고 그러기 위해 함께 고민하고 대화해야 한다는 생각은 큰 잘못이다.
난 문제가 있는 실업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