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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어
김주영 지음 / 문이당 / 2002년 9월
평점 :
절판
‘너 얼마나 보고 싶었는지 알아? 너 내 맘 알기나 해? 너도 나처럼 그렇게 나 보고 싶었어?’ 그녀의 눈을 빤히 바라보고 있었다. 밖은 뜨거운 여름의 태양이 빛을 밝히고 있는데도 하얀 눈이 쌓인 평온한 들판을 상상케하는 투명한 눈은 흐를 듯 말 듯한 눈물을 머금었다. 그리고 병든 환자의 그것처럼 바싹 마른 입술을 열었다. 울음이 가득 섞여 들릴 듯 말 듯 낮고 가녀리면서도 화산 속에서 마그마를 분출해내듯 터져나오는 목소리로 내게 처음 건 낸 말이었다. 6개월이라는 짧은 기간에 지나지 않을지도 모르지만 세영 어머니의 6년 세월만큼이나 그녀의 기다림도 그렇게 쉬운 날들은 아니었던 것 같았다. 그녀는 그런 기다림에 무척이나 지쳐보였다. 내가 돌아오는 날에 동그라미를 그려놓고, 달력 위에서 하루하루 X표를 해나가는 일이 하루의 마지막 일과가 되었을 그녀의 모습이 떠올랐다.
내가 첫사랑인 그녀에게 나와 헤어져 보낸 6개월이라는 시간은 그리 짧은 기간이 아니었다. 나의 떠남의 공간은 외부와의 문을 굳게 닫아버린 채 바다 한가운데에서 살아야 하는 선상 생활이었다. 다름 아닌 승선실습이었다. 가끔씩 벌어지는 수 일간 목소리는 커녕 잘 지내고 있는지에 대한 소식조차도 알 수 없게 하는 상상할 수 없는 상황은 6개월이라는 시간을 더욱 길고 힘들게 만들었다. 시퍼런 칼날을 드리세우는 파도는 나의 목소리가 그녀에게 가지 못하게 막고 서 있었다.
세영 어머니의 기다림은 무엇이었을까? 그녀가 나에게 느꼈다는 그런 기다림과 같은 것일까? 마을 앞에는 소택지가 보이는 하얀 눈이 소복히 쌓인 시골 마을의 모습이 담긴 한 폭의 풍경화를 보듯 한 장 한 장 책장을 넘기고 있었다. 그러나 그 아름다움을 즐기지 못하고 머릿속은 온통 기다림의 의미 찾기에 붙들려 헤어나오지 못하고 있었다. 너무나 기다림에 초점을 맞추어 읽어 나가다보니 소설을 사뭇 잘못 이해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걱정도 되었다. 징검다리를 하나 하나 차근차근히 밟아가며 빠질세라 조심히 냇가를 건너는 여유 없이, 옷이야 젖건 말건 앞만 보면서 냇물을 가로질러 뛰어가는 우를 범하는 것은 아닌지. 난 기다림의 의미를 한시라도 빨리 찾고 싶었다. 마음속에서는 원작과는 다르게 소설을 재구성하여 내게 전해주고 있었다. 나의 그녀도 세영 어머니가 남편을 기다릴 때 느끼는 그런 기다림의 감정을 느끼고 있었던 것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