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는 비, 이슬비 - 박완서 단편소설 전집 5 박완서 단편소설 전집 5
박완서 지음 / 문학동네 / 1999년 11월
평점 :
절판


예전에 내가 대학에 들어올 무렵 선문대에서 장학금, 유학 등 파격적인 입학조건으로 순결학과를 신입생을 모집한다고 해서 사회적 이슈가 된 적이 있었다. 순결학과의 설치는 전근대적인 발상의 산물이라는 이유도 있었지만 왜 순결학과는 여학생들만 대상으로 모집하냐는 것이 더 큰 쟁점이었던 것으로 기억된다. 박완서의 가는비 이슬비라는 소설을 읽으며 순결이라는 단어를 다시금 곱씹어보게 되었다.

우리에게 순결의 의미는 무엇인가? 왜 여성들에게만 강요하는 것인가? 그리고 순결의 정의는 무엇인가? 이러한 질문에 답을 찾으려 노력하면 할 수록 나에게 점점 가까이 다가서는 듯한 이상한 감정을 떨칠 수 없었다. 나도 순결이라는 단어에 완전히 자유롭지 못하고 있구나.

사실 남자들은 순결의 의미를 피라는 한 음절에 국한되어 생각하는 경향이 짙은 것 같다. 내 주변에서도 순결에 대한 이야기가 나오면 의례 여성이 의견의 중심 소재가 되어지고 그 끝은 대부분 첫날 밤의 피로 귀결지어지곤 한다.

이 소설 속의 남자도 순결의 의미를 피에 집중하고 있다. 어쩌면 당연한 것인지도 몰랐다. 원래 재판도 아무리 심증이 확실하더라도 물증이 없는 한 승리할 수 없는 법이니까. 첫날 밤의 피가 순결을 증명하는 하나의 물증이 되어주기 때문이 아닐까. 하지만 소설속의 주인공의 경우는 달랐다.

남자의 경우 여자가 순결하지 못하다고 판단해 버렸다. 하지만 여자의 경우 한 번도 잔 적이 없었다. 그런데 첫날밤 남자가 그렇게 찾던 그 피는 발견하지 못했다. 남자의 순결은 어떻게 증명하지? 난 난관에 봉착하게 되었다. 결론을 내릴 수 없었기 때무이다. 그렇다면 여자의 순결하느냐 하지 못하느냐의 결정도 단순한 피가 아닌 다른 방법을 마련해야 했다. 그게 무엇일까? 난 고민에 빠졌다. 소설은 잊어버린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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